반지하 담벼락 아래
성남종합운동장 낡은 담장을 지나
모란시장 왁자지껄한 소란을 등 뒤로
어느덧 익숙해진 뒷골목 동네 길
작은 놀이터 앞 너의 집으로 향하네
그녀의 반지하 담벼락 아래 서면
갓 세수하고 나온 듯 너의 맑은 얼굴
잠옷 같은 원피스 아래 비친 그 가냘픈 팔이
유난히 시리게 마음을 파고들던 날
코끝을 스치는 제법 쌀쌀해진 가을바람
놀이터 가로등 불빛 아래 우린 멈췄지
세상의 소음은 저 멀리 희미해지고
오직 서로의 숨소리만 선명해지던 그때
한 시간이었을까, 두 시간이었을까
우린 뜨거운 첫 키스를 나누었지
지나가던 경찰 아저씨가 뭐라고 하시는지
귀에 들리지도 부끄러운지도 몰랐던 그날
주변의 시공간이 모두 정지한 듯
서로에게 멈춰 서 있던 그날의 우리
사랑이 전부였던 그날의 우리
이제는 레테의 강을 지나 다 채우지 못하네
기억은 지워져도 눈 감으면 선명한 가을밤 그 공기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을 데워
성남의 어느 골목, 반지하 담벼락 앞
쌀쌀한 가을밤이 오면 문득 또 생각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