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더 사랑하고, 내일보단 덜 사랑해

et bien moins que demain.

by자크슈타인


"어제보다 더 사랑하고, 내일보다 덜 사랑해"


'오늘'의 사랑은 '어제'보다 많지만, 다가올 '내일'보다는 덜 사랑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내일이 되면 오늘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이므로 매일 사랑이 더 크게 자라난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데, 게임(리그 오브 레전드 라칸의 대사)이나 노래(요셉의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등 다양한 매체에서 애틋한 사랑 고백의 대사로 인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멋진 글귀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이 말의 출처와 기원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Car, vois-tu, chaque jour je t’aime davantage,

Aujourd’hui plus qu’hier et bien moins que demain.


“있잖아, 나는 날마다 당신을 더 사랑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그러나 내일보다는 훨씬 덜.”


이 구절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프랑스 극작가인 에드몽 로스땅(Edmond Rostand)의 아내, 로즈몽드 제라르(Louise-Rose-Étiennette Gérard, 1866~1953)가 1889년에 발표한 첫 시집 《Les Pipeaux》 의 연작 〈L’Éternelle chanson〉(영원한 노래) 가운데 제9편, 첫 구절을 따라 보통 〈Lorsque tu seras vieux〉(네가 늙었을 때)라고 불리는 시에 들어 있다.



로즈몽드 제라르 그녀 자신이 시인이자 극작가였고, 보통은 그녀가 남편인 로스땅에게 보낸 편지의 시구에서 처음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프랑스의 로스땅 관련 자료나 박물관·전시 자료 중에서도 이 시를 에드몽에게 바친 사랑의 선언으로 설명하는 자료가 있다고 한다. 로즈몽드와 에드몽이 실제 연인이었고 훗날 부부가 되었으니 충분히 그렇게 이해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반대 단서도 존재한다. 프랑스 누벨아키텐 지역의 공공 문화기관 ALCA가 Villa Arnaga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로즈몽드 제라르 소개에는 그녀 자신의 회고를 인용하면서 이런 사실이 적혀 있다고 한다.


로즈몽드는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썼으며,

“d’un cœur de seize ans que la vie émerveille : ‘Lorsque tu seras vieux et que je serai vieille…’”


즉 “삶에 경이로워하던 '열여섯 살'의 마음으로 ‘네가 늙고 내가 늙었을 때…’를 썼다”고 회상했다는 것.


로즈몽드는 1866년생이니, 열여섯이면 1882년 경이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그녀가 에드몽 로스땅을 처음 만난 것은 1885년, 열아홉 살 때로 나온다. 두 사람은 이후 연인이 되었고 1890년에 결혼하는데, 그러니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적어도 이 시의 최초의 구상은 에드몽 로스땅을 만나기 전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로즈몽드 제라르가 에드몽 로스땅에게 쓴 사랑의 시”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로즈몽드 제라르가 젊은 시절 쓴 사랑의 시로, 훗날 그녀와 에드몽 로스땅의 사랑과 결혼 때문에 자연스럽게 로스땅을 향한 사랑의 선언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작품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로즈몽드와 에드몽은 1890년에 결혼했다. ALCA 자료에서 결혼연도를 1890년으로 명시하고 있으니, 적어도 초판 출간 당시에는 “에드몽 로스땅의 아내가 남편에게 쓴 시”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당시에는 아직 부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약 그 시를 당시 에드몽에게 쓴 작품이라고 보더라도 정확한 표현은 “로즈몽드 제라르가 당시 연인 또는 약혼자였던 에드몽 로스땅에게 쓴 것으로 알려진 시”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시집 『피리들』은 1889년에 나왔고 결혼식은 이듬해 봄이었으니 이 시는 남편이 아니라 남편이 될 사람에게 바친 시이고, 부부의 시가 아니라 연인의 시다. 스물셋 여인이 아직 오지도 않은 늙음을 미리 살아보며, 네 금발이 백발이 되어도 이끼 낀 벤치에 다시 앉자고 약속하는 시.





프랑스의 연인들이 백 년 넘게 주고받는 메달이 하나 있다. Médaille d’Amour, 즉 ‘사랑의 메달’이다.

앞면에는 두 개의 기호와 두 개의 단어뿐이다.


+ qu’hier

− que demain


어제보다 +

내일보다는 −


더하기와 빼기 기호로 사랑의 시간을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수학 기호로 축약된 사랑의 문장은 1907년 리옹의 보석상 알퐁스 오지스(Alphonse Augis)가 처음 새긴 이래 백만 개가 넘게 팔렸고, 지금도 팔리고 있다고 한다.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에 같은 문장이 걸려 있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어제보다 더, 내일보단 덜"이라는 짧은 표현은 이렇게 1907년에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알퐁스 오지스가 로즈몽드의 시구를 수학기호 같은 레부스(rebus)로 바꾼 디자인으로 보석 메달에 옮기면서 폭발적으로 유명해졌고, 세계적인 성공을 했다는 것.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이 문구가 목걸이, 반지, 팔찌 등에 쓰이며 영원히 커져가는 사랑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고 하는데, 이 시구를 새긴 메달이 '연인들의 메달'로 알려지며 메달과 반지로 제작되어 대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그녀는 이 보석에 자신의 시구가 쓰이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저작권료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가 나올 무렵 더 유명한 문인은 로즈몽드 제라르, 그녀 쪽이었다. 시집 『Les Pipeaux』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아르숑-데스페루즈 상을 받았고, 그녀는 훗날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페미나상 심사위원 경력까지 갖게 된다.

그러나 1897년, 남편이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쓰면서 순서가 뒤집혔고, 그녀는 스스로를 지우는 쪽을 택했다고 한다. 무대에 오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엄청난 성공을 했고, 에드몽 로스땅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연극사의 한복판에 새겨진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녀가 ‘시인 로즈몽드 제라르’보다 ‘에드몽 로스땅의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기 시작한 것은. 훗날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겸손하고 열정적인 조력자'였다고.


처음에 난 이것이 영화에 종종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당시의 시대상에서 어쩔 수 없었던 여자 쪽의 억울한 이야기로 읽혔다. 문장은 살아남고 그 문장을 쓴 이름은 지워진 이야기 말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것은 사랑의 문장이 맞이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결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을 위해 쓴 문장이 작가의 이름을 벗어나고, 국경을 넘고,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에 걸려 저마다의 소중한 한 사람을 향하게 되는 것. 시는 시인의 것이지만, 사랑의 문장은 결국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되기에 말이다. 로즈몽드가 메달을 만든 보석상에게 저작권료를 청구하지 않은 것은 체념이 아니라,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그녀가 쓴 시처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끝나지는 못했다.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고,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노라' 말했던, 두 사람의 실제 삶은 시처럼 가지 못한 것이다.



에드몽과 로즈몽드의 결혼생활에는 균열이 생겼다. 프랑스 아카데미의 기록에도 로스땅 부부의 관계가 흔들렸으며, 에드몽이 여배우들을 좋아했던 탓에 로즈몽드가 결국 자신의 자유를 되찾았다는 회고가 남아 있다. 생의 마지막 몇 해, 에드몽은 자신보다 스물일곱 살 어린 배우 메리 마르케와 깊은 관계를 맺었고 그 관계는 1918년 에드몽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로즈몽드 역시 이후 작곡가 티아르코 리슈팽과 관계를 맺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시구로 연결된 두 사람은 결국 평생 서로만 바라보며 늙어가지는 못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회자되는 저 문장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처음에는 아름다웠는데, 어느새 쓸쓸해진다. 하지만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걸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영원을 믿게 만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어찌 보면 참 이상한 문장이다. 오늘의 사랑을 말하면서 오늘을 작게 만든다. 오늘은 어제의 최대치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내일의 최소치가 된다. 사랑을 완료형으로 두지 않고 영원한 진행형으로 두는 것이다. 어리디 어린 스물셋의 나이에 그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1890년대는 고전 물리학의 성과가 절정에 달했으나, 흑체 복사나 광전효과 등 고전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발견되며 양자역학의 토대가 마련되던 시기이다.

파동과 입자의 논쟁이 거셌던 양자역학의 시기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기도 전에 그녀는 사랑의 크기가 재는 순간의 값이 아니라 매일매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방향성 그 자체라는 것을 시(詩)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건 '사랑'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리움'도 그러하다.


어제보다 더, 그러나 내일보다는 덜.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도 깊어만 지겠지..





*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 에드몽 로스탕이 쓴 5막 운문의 희곡 작품. 17세기의 역사적 인물을 극화한 것으로, 주인공인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생을 보여주고 있다. 청순·협기(狹氣)의 로맨틱한 무대와 함께 일반 대중에게도 이해되기 쉽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897년 파리의 폴드 상마르탕 극장에서 초연되어 대호평을 받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손우성 역으로 '국립극단'(1958. 6), '실험극장'(1971. 1), '여행자극장'(2024. 8) 등에서 상연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