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인한 골드러시가 가져온 대전환의 시대

제2의 한강의 기적

byOOJOO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에 금융지원을 요청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 경제는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기업은 쓰러졌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어졌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 새로운 산업의 씨앗도 자랐다. 1995년부터 시작된 국가 초고속정보통신망 사업과 1997년 8월 제정된 벤처기업육성 특별법 덕분에 IT 산업이 싹틀 수 있는 마중물이 만들어졌다. 특히, 1999년 정부는 ‘사이버 코리아 21’을 발표하며 1999~2002년 정보 인프라와 지식기반경제 구축에 총 28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민간자본은 17조3000억원으로 바카라정됐다. 덕분에 통신사업자의 설비 경쟁이 뒤따랐고 특히 한국은 아파트 중심의 주거 구조로 인해 전 세계 유례없는 초고속인터넷 확산이 추진되었다. 2001년 말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17.2회선이었고 2위안 캐나다는 8.8회선이었다. 한국이 두 배 가까이 앞선 세계 1위였다. 이렇게 인터넷 수요가 뒷받침되니 벤처기업도 급증했다. 벤처확인기업은 1998년 2,042개에서 2001년에는 1만1,392개에 달했다. 3년 만에 5.6배가 된 것이다. 삼성SDS 출신의 이해진과 김범수처럼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인재도 창업에 나섰고 이들이 만든 네이버와 한게임은 이후 한국 인터넷산업의 중심이 됐다.


약 25년이 지나 한국에는 그때의 IMF와 같은 위기가 찾아왔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와 12월 14일 탄핵소추, 그리고 이듬해 4월4일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인용하면서 6월 3일 조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이처럼 정치와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세계적으로 AI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2025년 국내 AI 모델·인프라 분야 벤처투자는 약 1조3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분류한 12대 신산업 가운데 가장 큰 투자 규모다. 세계적인 자본 쏠림은 더 강했다. 스탠퍼드대의 ‘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2025년 AI 민간투자는 전년보다 127.5% 증가했다. 생성형 AI 투자는 200% 넘게 늘었다. 전체 AI 민간투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새로 투자를 받은 AI 기업 수도 71% 증가했다.


1990년대 후반의 과거와 2025년의 지금의 공통점은 위기가 기존 질서를 흔들었다는 점과 기술이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자본과 인재가 기회를 찾아 이동했다. 단,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도 있다. 바로 회사를 만드는 최소 단위다. 인터넷 초기 당시에는 창업을 위해 여러 직원, 부서가 필요했다. 서버와 네트워크 개발자, 소프트웨어와 홈페이지 개발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기획자와 영업, 고객상담 인력 등 다양한 인력들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 사람이 AI를 이용해 조사와 기획을 수행할 수 있다. 문서를 작성하고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다. Agent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고객 문의에도 대응할 수도 있다. 생성형 AI의 보급 확산되기 시작한 2023년 기준으로 창업 7년 이내 기업은 490만2천개이며 종사자는 833만명이다. 기업당 평균 종사자는 1.7명에 불과하다. 기술기반 창업기업도 평균 2.6명이다.(중소벤처기업부 창업기업실태조사) 1년 후인 2024년 신생기업은 92만2천개였고 이들 기업 내 종사자는 125만7천명이다. 기업당 약 1.36명으로 더 줄었다. 신생기업의 91.1%에 해당하는 84만개가 종사자 1인 기업이었다.(2024년 기업생멸행정통계) 물론 이 숫자를 AI로 인한 결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위 창업 기업에는 AI와 무관한 음식점과 소매업, 부동산업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AI가 기업의 소형화, 1인기업의 창업을 가속할 가능성은 큰 것이 사실이다.


두번째로 지금의 AI 창업이 과거와 다른 점은 비용 구조다. 기존 IT 스타트업에서는 사용자가 한 명 늘어도 추가 원가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AI 서비스는 다르다. 질문과 답변, 추론과 검색이 발생할 때마다 비용이 붙어 사용자가 늘면서 원가도 늘어가는 구조다. AI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거나, 사업 추진 과정에 AI를 이용할 경우 AI 모델 기업이나 인프라 기업에 지불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러한 비용을 토큰비라고 하는데 최근 AI 모델을 서비스하는 기업들은 정액제가 아닌 종량제로 사용한 양만큼 과금도 하고 있는데다 Agent를 이용할 경우에는 더욱 비용이 커진다. 심지어 더 좋은 모델의 토큰 단가가 비싸서 AI 기술을 좋아질수록 비용도 함께 늘어간다. 투자사 Bessemer가 2025년 ‘Shooting Stars’로 분류한 고성장 AI 기업 표본은 첫 매출 발생 후 약 1년 내 약 300만달러 ARR과 평균 약 60%의 매출총이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전통적 고마진 SaaS와 비교하면 원가 구조의 부담이 더 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일부는 매출이 늘수록 손실도 커진데다, AI 사용료가 모두 모델 기업의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도 학습과 추론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다만 애플리케이션 기업이 고객가치를 입증하기 전부터 모델과 클라우드, 검색 사업자는 매출을 얻는다. 한마디로 FM을 개발하거나 클라우드와 AI 인프라 사업을 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얻지만 작은 스타트업은 자칫 밑지는 장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사업 복제의 위험도 늘 경계해야 한다. 모델 공급자들은 애플리케이션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하려 한다. 다른 AI 코딩 도구에 모델을 공급하던 Anthropic은 파일 검색과 코드 편집, 테스트 실행까지 수행하는 Claude Code를 직접 출시했다. 또한, 문서와 각종 홈페이지 및 디자인 작업을 하는 Claude Design까지도 직접 출시했다. Google도 복합 질문과 후속 질문을 처리하는 AI Mode를 기존 검색에 넣었다. 검색과 코딩, 문서 작성처럼 범용성이 높은 기능은 플랫폼의 기본 기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해당 사업을 하던 스타트업은 금방 위기에 노출된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AI 스타트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Menlo Ventures는 2025년 기업용 AI 애플리케이션 매출의 63%를 스타트업이 차지한 것으로 추산했다. 2024년 36%보다 높아졌다. 결국 고객의 현장 데이터와 업무 흐름을 장악해 고객 접점을 마련해 지속적으로 고객을 확보한 기업만일 생존할 수 있다. 특정 산업의 규제와 바카라임 구조를 이해하고 고객 신뢰와 유통망을 확보한 스타트업의 사업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25년 전 한국은 위기를 인터넷 산업의 기회로 바꿨다. 그 성공은 벤처기업 수가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통신망과 인재, 자본과 시장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AI는 혼자 회사를 시작하게 해준다. 그러나 회사를 지속시켜 주지는 않는다.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경쟁 차별화한 기술력이나 고객 접점을 기반으로 수익구조를 마련해 투자자와 고객에게 주는 신뢰에서 비롯된다. AI 골드러시의 기회의 문은 과거보다 넓지만 생존의 문은 더 좁다. 이 두 현실을 함께 보는 창업가와 기업만이 대전환의 시기에 승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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