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떠나는 동료의 퇴사 당일은, 바카라상을 정리하고 사원증과 회사 노트북을 반납하고 메일 계정을 닫으면서 그의 자취는 사라진다. 물론 그가 남긴 보고서와 코드, 회의록과 인수인계 문서는 회사에 남는다. 하지만 그 사람 특유의 판단 방식, 말투, 협업 습관, 일의 우선순위를 읽는 감각은 함께 사라졌다. 그것을 우리는 암묵지라고 부른다. 수 년을 일해온 퇴사한 동료가 남긴 문서와 파일들이 가득해도 그가 해오던 일과 프로젝트에 대한 담당자만 알던 내밀한 문제와 걸림돌, 한계,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가 없다. 즉,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어느 고객은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어떤 팀장은 어떤 표현을 싫어하는지 같은 암묵지는 쉽게 남지 않았다.
그런데 AI 기술의 발전은 이 오래된 상식을 흔들고 있다. 중국 개발자 titanwings가 깃허브에 공개한 colleague-skill 프로젝트에는 퇴사한 동료, 인턴, 멘토, 전임자가 남긴 메시지와 문서, 이메일, 스크린샷, 주관적 설명을 입력하면 그 사람처럼 작동하는 AI Skill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내 AI 쌍둥이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즉 특정 업무 매뉴얼을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의 업무 방식과 대화 방식을 호출해 그 사람처럼 일하는 그 사람 특유의 개성과 커뮤니케이션 방식, 습관을 모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ChatGPT든 Claude는 꾸준하게 진화해오고 있다. 특히 Codex, Code 등의 코딩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툴은 일반 텍스트 문서를 구조화된 서식인 마크다운이라는 AI가 잘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Skill을 정의해두면 이를 참고해서 AI가 작동되도록 해준다. 덕분에 단순한 데이터나 정보, 지식을 넘어 생각하는 구조와 업무를 대하는 태도,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리고 회사에서 일처리하는 절차와 업무 스타일을 Skill로 정리해서 AI가 이를 참고해서 실제 그 사람처럼 일처리를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중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산둥성의 한 게임미디어 회사는 퇴사한 HR 담당자의 동의를 받아 그가 제공한 아바타, 자기소개, 업무 문서 등을 AI에 넣고 사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분신을 실험했다. 퇴사한 동료로 만든 이 디지털 직원은 채용 문의 응답과 내부 규정 안내 및 간단한 PPT와 표 작성을 하고 정리하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회사 직원들은 실제 기존 HR 담당자를 대하듯이 이 AI에게 메일을 보내고 메시지를 주고 받긴 하지만 동료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 베이징의 한 대형 인터넷 기업은 엔지니어들에게 업무 경험을 재사용 가능한 Skill로 쪼개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매주 산출 지표를 설정했다고 한다. 중국 기술 업계에서는 ‘업무 경험의 AI 스킬화’로 직원들의 암묵지를 데이터화하여 직원 Agent를 만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숙련자의 퇴사 리스크를 낮추고 신입의 온보딩 시간을 줄이며 우수 직원의 업무 방식을 조직 전체에 확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는 숙련공의 노하우를 표준작업서로 남기고 콜센터에서는 우수 상담사의 대화 패턴을 스크립트로 만들고 개발조직에서는 시니어 엔지니어의 코드 리뷰 관점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업무력을 높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매뉴얼화를 통해 직원들의 일한 내역과 업무 정보들을 파일로 저장했지만 그것으로 실제 어떤 솔루션을 만들고 실질적 가치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일하는 방식과 내역이 데이터화가 되어 저장되어가면서 이를 AI Skill로 구성해 Agent가 이를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직원 입장에서는 이것을 반길리 없다. 회사에서 일하며 만든 보고서, 코드, 회의록을 포함한 모든 산출물은 대체로 회사의 자산이다. 그러나 직원의 말투, 판단 습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협업 상대를 다루는 감각, 실패를 통해 축적한 직관까지 같은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직원 개인이 회사 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축적한 문제 해결 감각과 직업적 숙련은 회사의 자산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회사의 자산 데이터와 개인의 암묵지와 비정형화된 지식들이 함께 섞여 Skill 파일로 변환되면, 어느 부분이 회사의 자산이고 어느 부분이 개인의 지적 재산인지 분리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사업 혁신의 관점과 일의 성과 측면에서 보면 AI Skill은 막아야 할 기술이 아니다. 제대로 설계하면 조직의 생산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고객 상담, 장애 대응, 코드 리뷰, 리서치, 제안서 작성, 신입 교육, 프로젝트 회고 같은 업무는 숙련자의 노하우가 Skill로 전환될 때 품질이 빠르게 상향 평준화될 수 있다. 문제는 기술 이전에 계약과 신뢰의 부재다. 직원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 대체될 것이라고 느끼는 조직에서는 Skill은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생존 위협이 된다. 반대로 직원이 자신의 노하우를 Skill로 만들수록 더 높은 역할과 보상, 더 많은 자율성, 더 나은 근무 조건을 얻는 구조라면 Skill은 조직 학습의 촉매가 된다.
문제는 “퇴사한 동료를 AI로 복제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핵심은 “회사는 어디까지 사람을 데이터로 바꿀 권리가 있는가”다. 한 사람이 일하며 쌓아온 판단의 방식, 질문의 습관, 사람을 대하는 태도, 위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감각까지 회사가 퇴사 후에도 호출할 수 있는지는 아직 슬롯가 합의하지 못한 영역이다. 이 경계를 먼저 정하는 기업이 AI 시대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반대로 이 경계를 무시하는 기업은 단기적으로는 지식을 모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직원들이 핵심 노하우를 숨기고 문서에는 껍데기만 남기며 조직 전체가 불신의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AI가 우리의 일을 돕는 도구인 것은 이미 벌어진 현실이지만, 앞으로는 우리의 일을 복제하는 것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기업이 고민해야 하는 것은 누가 더 많은 직원을 Skill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직원이 안심하고 자신의 지식을 조직과 나눌 수 있는 계약과 문화, 보상 구조를 만들었느냐이다. 퇴사한 동료의 AI 쌍둥이가 회사에 남는 시대에는 지식관리보다 먼저 인간에 대한 권리 관리가 필요하다. 기업의 AX는 사람을 증류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성장과 조직의 생산성을 함께 증폭하는 슬롯적 신뢰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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