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에 맞춘 원고를 보내면
몸은 허공에 뜨고
서재의 시간은 비로소 피정이다.
‘고요함으로 피하는 밤.’
밤의 고요함은 말 없음이 아니다.
들리는 말도, 내뱉는 말도 사라진 듯 여전하다.
나의 피정은 ‘무언의 세계로 내 몸을 밀어 넣는 나의 순응’이다.
어둠 속에서 바람만 살아 있다.
여린 비라도 내린다면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으리라.
그 보드라운 빗살을 벗 삼아 바카라숲을 산바카라하는 상상도 깊어진다.
짙어 가는 밤, 상상 속에서
어느 사이 삼색 슬리퍼 끌고,
우두커니 서 있는 장우산을 손에 든다.
짙어 가는 밤, 상상 속에서
어느 사이 삼색 슬리퍼 끌고,
활짝 퍼질 장우산을 챙겨 든다.
폭우와 함께 걷는다.
길에 빗물이 넘친다. 길과 비가 섞인다.
길은 사라졌다. 비만 남았다. 빗길이 되었다.
멀리 보지 못한다. 길에 사람이 없다. 알지 못한다.
발아래만 보며 숨죽여 걷는다.
상상은 현실의 가상이다.
현실의 있지 않음이 아니다.
어둠에도 빛은 꿈틀거리고,
하루 종일 조용하던
건너편 오래된 아파트에도
삶을 지탱하는 사람이 있다.
잡히지 않은 세계라도
나에겐
있지 않은 현실의 있음이다.
밤에는 언어가 길을 비켜 준다.
어둠 속으로 스스로 침잠하고,
그 틈에 피정이 깊게 스며든다.
상상 속에서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현실에서 바람으로 되돌아온다.
그 바람은 아침이 오기 전에 말없이
길을 바꿔 돌아나간다.
어둠 너머 창밖을 본다.
어디선가 현실처럼 검은 비구름이 몰려올 것이다.
바람에 실려 천천히 다가올 것이다.
그 비가 도착하면
숨어있는 푸른빛 세계가 열릴 것이다.
보이지 않는 구름은 고요하게 흐를 뿐이다.
구름 덕분인지 세계는 어둑해도 조금 더 고요하다.
구름 너머 세계가 아직 밤이다.
김태생의 『뼛조각』(파주: 보고사, 2022)을 읽는다.
글 속에 ‘말 없음’의 세계로 떠밀린 사람이 있다.
영구미환(永久未還)의 밤길로 내몰린 사람이 있다.
원하지 않는 밤으로 내몰린 바람처럼
정치적, 재난적 피정이
그들을 휘감는다.
누가 보지 않아도
숨죽이며 죽음의 계곡 같은 밤길을 걸어 내야 한다.
밤이 아니면 자기 삶을 보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새벽은 ‘있지 않음’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새벽은 반드시 와야 한다.
밤이 지나가기 전 바카라 끝에
사라지지 않은 기록을 남겨 둔다.
바카라을 덮는다. 밤은 절정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밤도 있지 않음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는다.
햇살에 잠시 가려졌을 뿐이다.
언제나 나의 삶은 정중동(靜中動)이었다.
아는 길이라도 밤길처럼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했다.
휘몰아치듯 역동하는 타인의 삶과 경계를 맞대며 걸어야 했다.
길은 보이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돌부리에 채였다.
경계가 어딘지도 모른 채 비틀거렸다.
나의 삶은 아닌 듯 고요하게 미동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사라지지 않는 나의 밤길엔
한 걸음 앞을 비춰 준
한결같은 빛이 있다.
빗속에서도 감춰지지 않는 달빛과 별빛,
‘영원의 빛’
돌아보면
나는 정중동 했으나
밤은 동중정이다.
나는 미약하게 움직였으나
그는 고요하게 역동했다.
동중정.
나는 말 없음의 세계를 휘돌며
햇-빗살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속을
느긋하게 유영해 왔다.
잠시 내다본 창밖, 어둠 끝에서
보이지 않는 먹구름이 역동하며 빠르게 밀려간다.
흰 구름은 여즉 느긋하게,
고요하게 서두르지 않고 밀려온다.
비가 멈추고,
바람이 불고
아침이 와도
밤부터 시작하는 이들은 있다.
그들에게
어둠마저도
영원의 빛이라는 여일한 진리가
햇살처럼 포근히 빛나길 기도하는
우리의 동틀 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