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그리움에서 시작하는 그림바카라
요즘 서재 이사를 앞두고 있어, 바카라장에 꽂힌 옛 바카라과 새 바카라 사이에 숨길을 조금 열어주는 중입니다. 얼핏 보면 버려도 좋을 바카라이 태반인 듯하지만, 작정하고 한 권씩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바카라 한 권은 곧 내가 살아온 날들의 세포와 같아서, 바카라을 버린다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오래 손때가 묻은 바카라일수록 쉽게 떠나보낼 수 없습니다. 바카라등은 낡았고 종이는 누렇게 바랬지만, 그 안에는 내가 지나온 계절의 냄새와 마음의 주름이 고요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짐을 가볍게 하려고 솎아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할수록 작업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바카라들은 한 권씩 자기 사연을 들려주는 듯합니다. 자신을 버릴 수 없는 최후진술 같은 이야기를,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내게 건네는 듯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버릴 수 없는 바카라들, 아니 어쩌면 버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가장 가득한 바카라들이 바로 ‘그림바카라’입니다.
그림바카라은 한 권을 읽어도 언제나 흐뭇한 상태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도 그렇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내 삶에서 그림바카라이 뜻밖의 변화와 전환을 가져다준 때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그림바카라은 내게 단지 읽고 지나간 바카라이 아니라, 어느 날 문득 내 안의 한 문을 열어준 바카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림바카라을 정리한다는 것은 바카라장을 정리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다시 인사를 나누는 일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입니다.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 무렵 나는 ‘당근’을 주제로 한 그림바카라 한 권을 자주 펼쳐 보았습니다. 바카라의 정확한 제목은 이제 희미하지만, 그 바카라의 색감과 분위기, 그리고 당근이라는 낱말은 마음속 어딘가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느 날, ‘가나다라’도 제대로 배운 적 없던 내가 그림바카라을 보다 순식간에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다기보다, 그림과 글이 서로 손을 잡고 내 앞에서 문을 열어준 듯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날부터 당근을 즐겨 먹게 되었다는 가족들의 증언까지 덧붙이면, 이 이야기는 약간 허무맹랑한 개인전설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설령 기억이 조금 과장되었다 해도, 그 그림바카라이 내 인생에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글자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자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림 속에 숨어 있던 세계가 말의 문을 열고 내게 걸어오는 일이었습니다. 당근 하나가 식탁 위의 채소가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낱말이 되고, 맛이 되고, 기억이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나는 아마 그때 처음으로 바카라이 사람을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바카라이 습관을 바꾸고, 입맛을 바꾸고, 눈빛을 바꾸고, 끝내 살아가는 자세마저 바꿀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림바카라을 자주 읽게 된 것은 아마도 그때로부터 훨씬 뒤의 일일 것입니다. 우연히 ‘어른들을 위한 그림바카라’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그 희미한 기억이 어느 날 문득 나를 다시 불러 세워서였는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시 그림바카라을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펼쳤지만, 몇 권을 지나지 않아 그림바카라은 결코 가볍게만 읽을 수 있는 바카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짧지만 오래 남고, 단순해 보이지만 깊고, 아이들의 바카라처럼 보이지만 어른의 상처와 그리움까지 조용히 어루만지는 바카라이었습니다.
어쨌든 지금 내 바카라장에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그림바카라들은 나와 삶의 길을 같이 걸어가야 하는 도반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없어지면 문득 마음 한쪽이 허전해질 바카라들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그림바카라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린 날의 손에 쥐어졌거나,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거나, 우연히 서점 한구석에서 발견했거나,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았거나, 어쨌든 자기 삶의 어느 장면을 조용히 밝혀준 그림바카라 말입니다.
그림바카라, 상상이 현실에 내려앉은 선물
당연한 말이지만, ‘그림바카라’은 단지 ‘그림의 바카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야기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살아 있는 글그림이라고 해야 옳을 듯합니다. 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림을 글로 말하는 바카라. 글과 그림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 세계를 이루는 바카라. 그래서 나는 그림바카라을 말할 때마다 ‘글그림바카라’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말에는 글과 그림 어느 한쪽도 부차적인 장식으로 밀려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그림바카라은 바카라꽂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내가 살아가는 자리 곳곳에 널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길을 걸을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반가운 사람을 만날 때,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때, 나는 문득 그림과 이야기가 곁들여진 한 권의 살아 있는 그림바카라을 보는 듯한 상상에 사로잡힙니다. 누군가의 웃음은 한 장의 삽화가 되고, 길가에 떨어진 잎은 다음 장면의 암시가 되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말 없는 문장처럼 내 앞을 지나갑니다.
그 상상이 글과 어우러져 머릿속을 한참 휘젓다가, 끝내 글그림바카라으로 내려앉습니다. 삶은 그림바카라, 글그림바카라의 도서관이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그림바카라은 그래서 길과 숲, 사람과 이야기가 서로 어우러지는 일 그 자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는 자주 그런 움직이는 그림바카라 속으로 난 길을 산바카라하며 걷는 경험을 합니다.
도시 외곽의 오래된 공원을 걸을 때가 특히 그렇습니다. 그 공원 안으로 난 길은 혼자 걸어도 좋고, 둘이 걸어도 좋으며, 여럿이 함께 걸어도 좋습니다. 혼자 걸을 때는 내 마음의 말들이 천천히 따라오고, 둘이 걸을 때는 말 사이에 바람이 앉으며, 여럿이 걸을 때는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길 위에 작은 문양을 남깁니다.
계절마다 꽃과 나무의 표정도 다릅니다. 봄에는 연한 잎들이 막 태어난 문장처럼 조심스럽게 돋아나고, 여름에는 초록이 짙어져 숲 전체가 깊은 한 페이지처럼 펼쳐집니다. 가을이면 낙엽이 제 몸을 덜어내며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들이 비워낸 자리에서 오히려 더 분명한 선을 보여줍니다. 이맘때는 초록이 짙어지고 바람도 시원합니다. 바람은 방향 없이 흔들리며 지나가는 듯하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꽃을 피웁니다. 나는 그것을 바람꽃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침이나 저녁 무렵 그 길을 걷는다면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숲이 일어나는 시간과 숲이 어둠 속에서 쉬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의 숲은 잎마다 작은 빛을 얹고 천천히 깨어납니다. 새소리는 아직 하루가 완전히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흙냄새는 밤새 감추어둔 숨을 내쉽니다. 저녁의 숲은 조금 다릅니다. 한낮의 분주함이 빠져나간 뒤, 나무들은 자기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천천히 어둠 쪽으로 몸을 기울입니다.
숲의 저녁과 밤은 한낮과는 다른 어둠의 친밀감이 짙게 드러나는 시공간입니다. 그 어둠은 두려움만이 아니라 품어주는 기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들이 물러난 자리에서, 오히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작은 경험이 모여 한 권의 그림바카라이 됩니다.
이런 그림바카라의 첫 장은 아마 한 폭의 그림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붓도, 도화지도 없지만 이미 내 안에는 어떤 장면이 조용히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보다 그림이 먼저 앞서가며 나를 이끌고, 그 그림 뒤를 따라 말들이 천천히 걸어옵니다. 그렇게 내 안의 한 장면은 어느덧 이야기를 부르고, 이야기는 다시 다음 장면을 부릅니다. 글보다 그림이 먼저 길을 내고, 그림보다 이야기가 조금 늦게 그 길을 따라오는 바카라,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글그림바카라입니다.
그림바카라, 사라지는 세계를 다시 부르는 일
오래전 그림바카라의 시작도 아마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리운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작은 꽃잎이 느닷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생각지도 않은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난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길 위에서 자기 몸이 겪었던 어떤 순간, 쉽게 사라질 것 같아 마음 졸였던 어떤 장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장면을 오래 붙들고 싶었지만, 눈앞의 세계는 늘 지나가고 흩어집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주 우연히, 혹은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준비해 온 끝에, 그림이라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림바카라은 잊지 않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생겨난 작은 결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림바카라이 직접적인 추억에서만 태어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그림바카라의 깊은 곳에는 대체로 잊히는 것들을 다시 불러오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라진 풍경, 떠나간 사람,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 아직 오지 않았으나 언젠가 만나고 싶은 세계가 그 안에 조용히 머뭅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어느 시대나 눈앞에 있는 것을 영원히 붙들 수 없었습니다. 햇살은 내려오다가 밤이 오면 어둠에 스며들고, 바람은 불다가 어느새 돌아나갑니다. 꽃은 지고 다시 피며, 사람은 태어나고 늙고 죽어갑니다. 어느 것도 그 모습 그대로 끝까지 자신을 지키지는 못합니다. 내 앞의 존재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를 비추던 빛은 지나갑니다. 익숙한 얼굴은 기억 속으로 멀어지고, 손에 잡히던 것들도 언젠가는 손아귀 밖으로 흘러갑니다.
눈앞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어느 날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자기 크기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잃고 나서야 어떤 존재가 내 삶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라지는 것 앞에서 자주 말을 잃습니다. 그러나 말을 잃은 자리에 그림이 오고, 그림 곁에 다시 이야기가 옵니다.
그림은 처음부터 보존의 예술에 가까웠습니다. 순간을 붙들고, 표정을 남기고, 빛의 방향을 기록하고, 사라지는 몸짓을 한 장면 안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림바카라은 거기에 이야기를 더했습니다. 그림에 글을 맞물리게 하여 사라지는 세계를 붙들어두려는 몸짓을 멈추지 않았고, 잊히는 대상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의 흔적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보았던 것, 손으로 만졌던 것, 마음 깊이 새겨졌던 어떤 장면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갈망이 그림바카라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그림바카라은 보이는 것을 도드라지게 옮겨놓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이미 사라졌거나 언젠가 사라질 것, 혹은 아직 보이지 않는 세계의 속살을 자기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그리움의 열망이 만들어낸 기억의 저장고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바카라은 기억을 보관하는 서랍이면서, 그 서랍을 열 때마다 다시 살아나는 작은 극장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림바카라 속의 집을 보면, 한때 살았던 집을 떠올릴 수 있고, 그림바카라 속의 강아지를 보면서 오래전 곁에 있던 그 생명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림바카라 속의 숲을 보며 우리가 걸었던 숲길을 되찾고, 그림바카라 속의 어둠을 보며 지나온 밤의 마음을 다시 만집니다. 그림 속 사물은 그 사물 자체가 아닙니다. 그림바카라 안에서 이야기를 통해 사물을 향한 기억의 문을 분명히 열어둡니다.
그렇게 그림바카라은 사라질 기억을 다시 살려내고, 다시 내 삶의 어느 숲길로 조용히 불러내 함께 걷는 도반입니다. 그림 안에는 언제나 기억과 그리움이 함께 머문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듯 만들어낸 그림바카라에 더 마음이 갑니다. 잘 그린 사물보다, 사물 뒤에 숨어 있던 마음을 슬며시 드러내는 그림바카라에 더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그것은 그림바카라이 사물의 겉모습만이 아니라 사물이 남긴 시간과 감정을 함께 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사람은 눈앞의 대상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그리고 싶어 합니다. 꿈속에서 본 것, 두려움 속에서 떠오른 것, 마음속에만 존재하던 형상, 아직 현실에 오지 않았으나 언젠가 만나고 싶은 세계를 그림에 담으려 애씁니다. 그래서 그림바카라은 갈수록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현실 너머를 내다보게 하는 창이 되었습니다.
그림바카라 안에서는 동물이 말을 하고, 나무가 걸어 다니며, 죽은 이가 다시 찾아오고, 작은 아이가 거대한 세계를 통과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그림바카라 안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마침내 그림바카라은 사람이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현실로 드러나는 것과 현실 너머에 있는 것 사이에 굳건했던 경계를 허물어 주었습니다. 현실과 상상, 기억과 예감, 사물과 마음의 풍경이 그림바카라 안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그림바카라 속 한 장의 그림은 때로 긴 설명보다 깊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보는 이에게 단번에 말을 걸기도 하고, 오래 바라볼수록 더 깊은 의미를 열어주기도 합니다. 그림은 말보다 느리게 다가오지만, 그 느림 때문에 더 오래 이야기로 남습니다. 말은 지나가며 의미를 만들지만, 그림은 머물며 의미를 열어둡니다. 그림바카라은 이 둘의 시간을 함께 품습니다. 지나가는 말과 머무는 그림이 서로를 부르며, 독자의 마음 안에서 다시 한 권의 바카라이 됩니다.
글그림바카라의 묘미, 그림과 이야기
알다시피 그림바카라은 길지 않습니다. 짧습니다. 언제나 한계가 경계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아무리 깊이 상상한다 해도 그림은 한정된 장에만 자신을 펼칠 수 있습니다. 화가는 무한한 세계를 마음에 품지만, 실제로 그릴 수 있는 자리는 캔버스 위나 제한된 지면입니다. 경계가 분명한 화면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일상보다 훨씬 작은 지면에 어떤 세계를 담아내는 일은 스스로 정한 한계 안에서 자기 세계를 펼쳐 보이겠다는 의지입니다.
그 일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끝내 어떤 것은 버리기로 결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선택하는 일입니다. 어떤 장면을 선택할지, 어떤 얼굴을 붙잡아둘지, 어느 빛을 남기고 어떤 어둠을 짙게 만들지 결정하는 일입니다. 사물 사이에 숱하게 오갔을 대화를 그대로 살릴 수도 있고, 아예 길고 오랜 침묵으로 남기거나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에는 그리는 이의 마지막 심정이 담깁니다. 생략마저도 깊은 의미가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한 점의 그림은 그 자체로 한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 한 점을 우리가 굳이 그림바카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그 그림이 홀로 자기 세계를 감당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장의 그림은 때로 한 권의 바카라 보다 더 긴 침묵과 더 깊은 사유를 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은 결코 이야기의 보조물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림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독립적인 생명을 갖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그림은 또 다른 한계를 갖습니다. 한 장면은 깊지만, 시간의 흐름을 모두 품기 어렵습니다. 한 얼굴은 오래 남지만, 그 얼굴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까지 다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한 폭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풍경 속으로 누가 걸어 들어왔고,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침묵 속에 남겨둡니다. 그림은 세계를 붙들지만, 세계가 흘러가는 방식까지 모두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림바카라의 그림은 바로 이런 점에서 특별한 운명을 갖습니다. 그림바카라 안의 그림은 홀로 있을 때보다, 이야기와 함께 놓일 때 더 넓은 의미의 길을 얻습니다. 한 장씩 떼어놓고 보아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그림일 수 있지만, 그림바카라 안에서는 그 그림들이 서로를 부르고, 앞뒤의 장면과 호흡하며, 문장과 마주 보면서 더 큰 세계를 만듭니다. 그림바카라의 그림은 독립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함께함으로써 또 다른 독립성을 얻는다고 말하는 편이 옳습니다. 한 장의 그림으로 완결되는 독립성이 아니라, 여러 장면과 문장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관계의 독립성입니다.
좋은 그림바카라을 펼쳐보면 이 사실을 곧 알 수 있습니다. 그림바카라의 의미는 글 따로, 그림 따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글과 그림이 서로를 비추고 어긋나고 보충하는 사이에서 생겨납니다. 글은 그림이 말하지 않은 시간을 열고, 그림은 글이 다 말하지 못한 공간과 표정을 보여줍니다. 때로 글과 그림은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금 어긋나기 때문에 더 깊은 의미가 생깁니다. 그 틈에서 독자는 스스로 이야기를 잇고, 보이지 않는 장면을 상상하며, 한 권의 그림바카라을 자기 안에서 다시 완성합니다.
그래서 그림바카라은 단순히 그림에 글을 얹은 바카라이 아닙니다. 그림과 글이 서로를 해석하고, 때로 서로를 의심하며, 끝내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바카라입니다. 그림은 글의 장식이 아니고, 글도 그림의 설명문이 아닙니다. 둘은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는 동반자이면서, 동시에 서로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이웃입니다. 그림이 먼저 길을 내면 이야기가 그 길을 따라 걷고, 이야기가 먼저 문을 열면 그림이 그 안으로 빛을 들입니다. 그렇게 그림바카라은 글과 그림이 서로에게 기대어 만든 하나의 살아 있는 형식이 됩니다.
이야기는 그림이 멈춰 세운 순간에 서사의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그림이 한 장면에서 멈춰 있을 때, 이야기는 그 장면 앞뒤에 길을 냅니다. 그림이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면, 이야기는 그 얼굴이 품은 마음을 여러 방향에서 상상하도록 이끕니다. 그림이 침묵으로 남겨둔 자리에 이야기는 가볍게 목소리를 얹고, 이야기가 추상적으로 흘러갈 때 그림은 그것을 다시 눈앞의 형상으로 붙잡아줍니다. 이야기는 그렇게 그림을 다독이며 그림바카라의 생명을 이어갑니다. 둘은 서로를 붙들며 하나의 세계를 이룹니다. 비로소 그림과 글이 만나 글그림바카라이 태어납니다.
내 바카라꽂이에 담긴 바카라들도 그렇게 태어났을 것입니다. 그 그림바카라들을 한 권씩 다시 한번 펼쳐봅니다. 그림바카라은 더는 단순히 그림에 글을 곁들인 바카라이 아닙니다. 기억과 그리움으로 붙들어둔 장면 위에 이야기가 얹어지고, 그 이야기가 길을 따라 사람들 사이를 흘러가는 살아 있는 바카라입니다. 산바카라입니다. 그림은 다시 빛과 얼굴과 풍경을 펼쳐놓고, 이야기는 그 사이에 시간과 마음의 길을 새롭게 냅니다. 한 장의 그림은 다음 장의 그림을 부르고, 한 문장은 다음 장면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림바카라 안에서 그림은 더는 홀로 멈춰 있지 않고, 이야기는 더는 허공에 흩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이런 순간에 그림바카라의 묘미를 느낍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그림은 조금씩 달라지고, 이야기는 조금씩 깊어집니다. 같은 바카라을 다시 펼쳐도 처음과 똑같이 읽히지 않습니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표정이 오늘 보이고, 어린 시절에는 지나쳤던 문장이 어른이 되어 마음에 걸립니다. 그림바카라은 짧기 때문에 다시 읽을 수 있고,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자랍니다. 독자 안에서, 시간 안에서, 기억 안에서 그림바카라은 조금씩 다른 바카라이 됩니다.
내 인생의 독본, 글그림바카라
그런 점에서 그림바카라은 그림의 오랜 마음이 이야기와 만난 숲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사라지는 것을 붙들기 위해 시작되었다면, 그림바카라은 그 붙들린 장면들 사이에 길을 내어 새로운 장면을 상상하도록 돕는 형식입니다. 그림은 기억을 보존하고, 이야기는 그 기억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림은 그리움을 남기고, 이야기는 그 그리움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림바카라은 현실과 상상, 기억과 예감, 사라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이 함께 머무는 작은 세계입니다. 사람은 그림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붙들었고, 이야기를 통해 그 사라진 것들을 다시 걷게 했습니다. 말로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그림이 눈앞에 세웠고, 그림만으로는 다 흐르지 못한 시간을 이야기가 데려왔습니다. 그림바카라이, 인간이 세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만든 오래된 사랑의 형식 가운데 하나가 되는 이유입니다.
그림에서 시작된 마음이 이야기를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라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사이를 조용히 넘나드는 한 권의 그림바카라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 바카라은 단지 읽히는 바카라이 아닙니다. 함께 걸어가는 바카라입니다.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다시 곁으로 오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먼 길 끝에서 손짓합니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걷습니다. 그림바카라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난 작은 산바카라길을 걷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어느 지점마다 그림바카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글자를 불러내고 당근의 맛을 바꾸어준 그림바카라이 있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잊고 있던 마음을 다시 불러내는 그림바카라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그림바카라은 나를 위로했고, 어떤 그림바카라은 내가 잃어버린 사람을 생각나게 했으며, 어떤 그림바카라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세계를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그 바카라들은 내게 큰소리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용히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그림바카라을 단지 바카라의 형식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계 자체가 이미 어떤 글자와 그림으로 쓰인 한 권의 바카라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요즘에도 여전히 나는 산바카라하며 숲의 나무와 풍경에서 ‘YHWH(야훼)’라는 히브리 글자를 숲이 만들어낸 그림으로 찾는 놀이를 즐깁니다. 내게 야훼는 인간에게 ‘영원이라는 그림과 현실이라는 이야기로 만든 글그림바카라’을 선물해 준 신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좋은 그림바카라은 우리를 어린 시절에 가두는 바카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여린 감각, 인간의 본초적 성품을 다시 깨우는 바카라입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세계를 보게 하고, 오래 알고 있었다고 믿은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합니다. 나무는 다시 새로운 나무가 되고, 어제 바람은 오늘 다시 불어온 바람이 되며, 그림바카라 속 사람의 얼굴이 현실의 얼굴로 살아나 내 안에 들어오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오늘 내가 만나는 세계가 다시 한 권의 글그림바카라으로 태어나게 합니다. 그림바카라은 세계를 작게 만들어 그 작은 세계 안에서 큰 세계를 보게 하는 지혜의 바카라입니다.
내 생이 끝내 마무리될 때 한 권의 글그림바카라이 완성될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그 바카라의 이름을 아예 ‘산바카라할래’라고 붙여둡니다. 그 제목 안에는 나에게 건네는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초대가 담겨 있습니다. ‘같이 걸을래, 같이 먹을래, 같이 볼래, 같이 기억할래, 같이 그리워할래.’
분명한 것은 그림바카라은 내 삶을 스스로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삶의 유한한 별리가 있을 뿐입니다. 글그림바카라은 나를 강요하지 않고, 설명으로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다만 한 장면을 펼쳐 보이고는 조용히 기다립니다. 내가 다가와 자기 마음을 얹을 때까지 말입니다. 이들과 헤어질 날을 부디 잘 준비해야겠습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버린다는 말과 조금 다릅니다. 어떤 바카라은 내 바카라장을 떠나 다른 사람의 바카라장으로 가서 다시 펼쳐질 수 있습니다. 어떤 그림바카라은 다른 손에서 다시 처음의 빛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떠나보내는 일도 어쩌면 또 하나의 글그림바카라이 만들어내는 산바카라일 것입니다. 다만 마음 깊이 알고 있습니다. 나의 그림바카라들은 끝내 나와 ‘함께’ 걸을 것입니다. 기억과 그리움이 만든 길 위에서, 오래도록, 천천히, 한 장씩 자신을 펼쳐 보이면서 말입니다.
오늘 아침,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지금, 나의 바카라꽂이에 다소곳하게 쉬고 있는 여러 그림바카라을 다시 바라봅니다. 이 바카라들은 오래도록 나와 함께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온 산바카라의 도반입니다. 바카라장을 정리한다는 핑계로 나는 이들과 다시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떤 바카라은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르고, 어떤 바카라은 끝내 곁에 남겨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바카라들이 내 삶의 어느 길목을 함께 걸어왔다는 사실입니다.
순간, 바람이 하늘의 그림말을 어린아이 같은 느린 걸음으로 전해옵니다.
“함께 산바카라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