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앙스가 먼저 바뀐다

by임종민

“뽑아볼게요"라는 말이 회의를 끝낸다

예전에는 회의가 길어지면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일단 정리해서 다음에 봅시다." 요즘은 다릅니다. "제가 몇 개 뽑아볼게요."


같은 기능인데 느낌이 다릅니다. 앞의 말은 미룬다는 뜻이 분명해서 다들 조금 찝찝했는데, 뒤의 말은 뭔가 진전이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실제로는 똑같이 결정을 미룬 것인데, 미뤘다는 감각 없이 미뤄집니다. 가장 편리한 도피처가 생긴 셈입니다. 그리고 이 도피는 성실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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