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중인 사람의 화면을 옆에서 보면 이상한 삼단 구조가 보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한국어입니다. 그것을 영어로 바꿔 입력창에 넣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다시 한국어로 판단합니다. 좋다, 아니다, 뭔가 아쉽다. 이 왕복을 하루에 수십 번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영어로 쓰면 더 잘 나온다는 것이 경험으로 자리 잡았고, 경험이 된 것은 대개 질문의 대상에서 빠집니다.
영어로 쓰는 프롬포트
영어가 잘 먹히는 이유는 도구가 영어를 더 잘 이해해서가 아닙니다. 도구가 배운 세계가 영어로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를 학습시키려면 이미지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적힌 문장이 필요합니다. 그 문장들의 압도적 다수가 영어였습니다. 그러니 도구가 익힌 것은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 붙은 영어 설명문이고, 우리가 프롬프트를 쓴다는 것은 그 설명문의 어휘를 다시 부르는 일입니다. 영어 단어 하나에는 그 단어로 설명된 수백만 장이 매달려 있고, 한국어 단어 하나에는 그만큼이 없습니다. 언어의 우열이 아니라 매달린 것의 양 차이입니다.
여기서 조용한 일이 벌어집니다. 영어에 또렷한 이름이 있는 감각은 또렷하게 나오고, 영어에 이름이 없는 감각은 가장 가까운 이름으로 반올림됩니다. 담백하다고 쓰고 싶은 화면이 있습니다. 영어로 옮기면 대개 심플이나 미니멀 근처에 착지합니다. 그런데 담백함은 단순함이 아닙니다. 있을 것이 다 있는데 과하지 않은 상태에 가깝고, 덜어낸 상태와는 다릅니다. 은은하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프트로 옮기면 세기만 줄어들 뿐, 원래 그 말이 품고 있던 시간의 느낌은 떨어져 나갑니다. 무심하다는 말은 더합니다. 신경 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신경 쓴 흔적을 지웠다는 뜻인데, 옮기고 나면 앞의 뜻만 남습니다.
번역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번역은 됩니다. 또한 AI 모델의 업데이트에 따라 점점 나아집니다. 다만 여전히 옮겨지는 동안 무엇이 남고 무엇이 버려질지를 누군가 정합니다. 지금은 그 결정을 대부분 도구가 대신 내리고 있고, 우리는 결과만 받아 봅니다.
인쇄술이 표준어를 만들었듯이
이런 일에는 전례가 있습니다. 활자가 퍼지기 전 언어는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백 리를 가면 말이 달라졌고, 그 다름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것이었습니다. 인쇄가 산업이 되자 사정이 바뀝니다. 인쇄기는 하나의 철자법으로 찍고, 찍힌 것이 읽히고, 읽힌 것이 규범이 됩니다. 인쇄되지 못한 말들은 틀린 말이 되었다가 사라졌습니다.
표준어는 가장 좋은 말이어서 표준이 된 것이 아닙니다. 인쇄기에 걸린 말이어서 표준이 되었습니다. 기술은 대개 이런 식으로 문화를 정리합니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통과시킬 것과 통과시키지 않을 것을 나눕니다.
지금 미감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입력창을 통과하는 어휘가 있고 통과하지 못하는 어휘가 있습니다. 통과하는 것은 매일 수억 장으로 실현되고,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실현되지 않은 미감은 몇 해가 지나면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 됩니다.
욕망이 조정되기 시작한다
더 눈여겨볼 것은 그다음 단계입니다. 도구를 오래 쓴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습관이 생깁니다. 잘 나오는 방향으로 미리 생각하는 것.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프롬프트로 옮기려 애쓰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옮기기 쉬운 것을 원하게 됩니다. 어차피 그 단어는 안 먹히니까 처음부터 떠올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적응입니다. 그리고 적응이라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포기했다는 감각 없이 포기가 일어납니다. 도구가 미감을 바꾸는 방식은 명령이 아니라 이런 식의 마모입니다. 되는 쪽으로 조금씩.
몇 해 뒤에 화면들이 서로 닮아 있다면, 그것은 다들 같은 도구를 써서가 아니라 다들 같은 문턱을 통과한 어휘로만 상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번역되지 않는 목록
그래서 지금 해둘 만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어휘 중 번역되지 않는 것들의 목록을 만드는 것입니다. 프롬프트에 넣었더니 엉뚱하게 나온 단어들. 영어로 뭐라 해야 할지 몰라 결국 포기한 감각들. 대개 짜증스러운 실패로 기억되지만, 그 목록이야말로 자기 미감의 좌표입니다. 도구가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의 평균 어휘에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뜻이고, 비어 있는 자리는 아직 아무도 채우지 않은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단어들은 프롬프트로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다른 경로로만 실현됩니다. 여러 번 나눠 요청하고, 나온 것들을 이어 붙이고, 손으로 고치는 방식으로. 번거롭습니다. 번거로워서 대부분 하지 않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사람의 화면이 남습니다.
영어로 명령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다만 명령어가 곧 사고의 범위가 되지 않도록, 명령되지 않는 것들의 목록을 따로 갖고 있는 편이 낫습니다. 입력창에 들어가지 못한 말들이 그 사람에게 남은 마지막 모국어입니다.
번역(飜譯) 옮기는 일이 아니라, 옮겨지는 동안 무엇이 남고 무엇이 버려질지 정하는 일. 그 결정을 도구에 맡기면 통과하는 어휘만 실현되고, 통과하지 못한 어휘는 존재한 적 없는 것이 된다.
화면 속 감각들은 하나의 경계를 통과하며 더 단순하고 익숙한 형태로 변한다. 담백함, 은은함, 무심함처럼 한 언어 안에서는 분명했던 감각도 다른 언어와 AI의 문법을 거치며 가장 가까운 평균의 표현으로 번역된다. 의미는 건너가지만, 그 말에만 존재하던 미세한 온도와 질감은 경계에 남는다.
생성형 AI는 우리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빠르게 이미지로 만든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언어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번역되지 않고, 프롬프트로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 속에 한 사람만의 미감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번역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과정이다. 입력창을 끝내 통과하지 못한 말들이야말로 아직 평균으로 번역되지 않은 창작자의 마지막 모국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