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어디서 오는가

by임종민

프롬프트를 쓰다 보면 이상한 순간이 옵니다. 형용사를 골라야 하는 순간. 어떤 빛인가, 어떤 질감인가, 어떤 온도인가. 손이 저절로 몇 개의 단어를 고릅니다. 그런데 그 단어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자기도 모릅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금 뜻밖의 것이 나옵니다. 좋은 것을 많이 봐서 생긴 취향이라기보다, 무언가를 잃어본 자리에서 생긴 취향에 가깝습니다. 만드는 사람들에게 그 형용사의 출처를 되짚어보게 하면, 답은 놀랄 만큼 일치합니다. 실패입니다. 노출을 망친 필름에서 어둠이 화면을 먹는 방식을 배우고, 장비가 모자라 가로등 하나로 버틴 밤에서 단일 광원의 긴장을 배우고, 수없이 반려당한 문장들에서 자기가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취향은 성공의 컬렉션이 아니라 실패의 퇴적층입니다.


퇴적에는 압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퇴적에는 예외 없이 비용이 들어 있습니다. 필름 값, 밤샘, 반려, 재촬영. 좋은 것을 보는 일은 취향의 재료를 모으는 일이지만, 재료가 지층이 되려면 압력이 필요합니다. 아까움이라는 압력. 내 것을 걸었다가 잃어본 경험만이 감각을 눌러 지층으로 만듭니다. 훈련의 세계가 오래 알아온 상식이기도 합니다. 실력은 경험의 양이 아니라 피드백에서 오고, 피드백이란 결국 실패의 다른 이름이며, 뼈아픈 피드백일수록 깊이 새겨집니다.


공짜 실패의 시대

여기서 이 시대의 불편한 질문이 나옵니다. 생성의 시대에 실패의 비용은 거의 영입니다. 백 장을 뽑고 아흔아홉 장을 버려도 잃는 것이 없습니다. 비용 없는 실패도 퇴적이 되는가. 절반은 됩니다. 버린 아흔아홉 장에서도 눈은 배웁니다. 절반은 안 됩니다. 아프지 않은 실패는 이상하게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누구의 취향 목록에서든 가장 진한 항목들은 아까웠던 실패들입니다. 아무 감흥 없이 버리는 일만 반복하며 자란 사람은, 정작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까움이 사라진 시대에 아까움은 어디서 구해오는가. 설계입니다. 유효한 실패의 조건은 셋입니다. 걸린 것이 있을 것, 시간이든 이름이든. 판정이 따를 것, 스스로든 타인이든 시장이든. 기록될 것, 무엇이 왜 안 됐는지가 남을 것. 이 셋을 한 번에 복원하는 가장 간단한 장치가 마감을 걸고 공개하는 것입니다. 공개는 공짜 실패에 이름이라는 비용을 다시 붙여줍니다. 결핍이 저절로 주어지던 시대는 갔고, 이제 결핍은 스스로 설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횟수가 아니라 밀도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취향이 실패의 퇴적층이라면,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이 취향이 좋다는 뜻인가. 아닙니다.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겪어낸 방식이 지층을 만듭니다. 같은 실패도 대충 넘긴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프게 곱씹은 사람에게는 감각을 남깁니다. 남는 것은 실패의 횟수가 아니라 실패와 맺은 관계의 밀도입니다.


사진의 역사에는 이런 이야기가 드물지 않습니다. 필름을 잘못 현상해 색이 이상하게 빠졌는데, 버리려다 말고 들여다보니 그 빠진 색이 묘하게 좋았고, 그 실수를 의도적으로 재현하는 법을 익혀 자기 색으로 삼은 사진가들. 성공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아까워서 차마 버리지 못한 실패에서 자기 색을 발견한 것입니다. 버리지 못했다는 것, 오래 들여다봤다는 것, 그것이 밀도입니다. 취향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잃어본 자리에서, 아까워한 만큼만.


취향(趣向)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이 아니라 실패의 퇴적층. 재료는 감상에서 오지만, 지층은 아까움이라는 압력에서만 만들어진다.


취향.png취향 (Taste) AI Artwork by Lim Jongmin (임종민)



깨진 흔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이어 붙인 형태를 통해 취향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표현했다. 매끄러운 표면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깨진 자리, 오래 들여다본 흔적, 차마 버리지 못했던 선택은 사람마다 다르다. 작품을 잇는 선들은 결함을 지우기 위한 보수가 아니라, 시간이 남긴 감각의 층이다.


취향은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이 아니다. 무엇을 잃어봤고, 무엇을 끝내 버리지 못했는가가 만든 지형이다. 이 작품은 실패를 지워야 할 흔적이 아니라, 한 사람의 미감을 이루는 가장 깊은 기반으로 바라본다. 취향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오래 붙잡은 실패가 남긴 퇴적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