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_수작(酬酌)과 짐작(斟酌)

넘치지 않게 술 따르는 기술

by인사이트뱅크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해 저문 저녁, 마음이 통하는 이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각별합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예전보다 술자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찰랑이는 잔 속에는 여전히 평소 꺼내지 못한 속내와 미묘한 침묵, 설명하기 어려운 동질감과 연대감이 함께 출렁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수작’과 ‘짐작’이라는 말은 이처럼 잔이 오고 가는 술자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두 단어는 모두 ‘술 부을 작(酌)’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어떤 글자가 붙느냐에 따라 말의 뜻은 전혀 달라집니다.

수작(酬酌)의 ‘수(酬)’는 ‘갚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한 대가로 받는 돈이나 물품을 이르는 ‘보수(報酬)’에도 같은 한자가 쓰이지요. 그래서 본래 수작은 서로의 잔을 살피며 빈 술잔에 술을 따르는 지극히 평범한 술자리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작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수작 부리지 마라.

한마디로 수작은 ‘쓸데없는 말’이나 ‘음흉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상대에게 술을 권하고, 답례로 술을 따라 주는 정중한 주례(酒醴)를 의미하던 단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요?

그것은 술잔을 주고받는 찰나에 스며드는 인간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의 취기를 가늠하고, 예의라는 형식 뒤에 숨은 계산이 반복되면서 수작은 어느새 타인을 내 목적대로 움직이려는 ‘음흉한 행동’으로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상대방의 주량은 고려하지 않은 채 술을 권하고, 비워지지 않은 잔을 재촉하는 얄미운 상사를 떠올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술자리에서 이처럼 ‘수작’을 부리는 사람은 결코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물론 우리 슬롯에서 권위주의가 점차 옅어지면서 오늘날의 술자리 문화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습니다.

반면 짐작(斟酌)은 조금 다른 결을 보입니다. ‘짐(斟)’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한자어 중 유일하게 짐작에만 쓰일 정도로 어렵고 생소한 한자입니다. 작(酌)과 마찬가지로 술을 따른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속이 보이지 않는 잔에 조심스레 헤아리며 술을 따르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짐작은 섣부른 넘겨짚기가 아니라, 상대의 잔이 비어 있는지 혹은 가득 차 있는지를 살피는 배려의 태도입니다.

짐작은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 다른 이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래서 짐작만으로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뜻하지 않은 화를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술을 따를 일이 예전보다 확실히 줄었지만, 일상에서 ‘넘치지 않게 술 따르는 기술’은 품격 있는 어른들이 반드시 체득해야 할 삶의 요령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말로 진심을 가리고, 웃음 뒤에 다른 계산을 숨기는 풍경은 비단 술자리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닐 것입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한 번 더 헤아리는 마음이 짐작의 본뜻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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