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_영감(令監)과 망구(望九)

사람을 높이던 말, 세월을 높이던 말

by인사이트뱅크
우리말 속에 섞여있는 한자어는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오랫동안 쌓이고 다듬어진 생각의 구조이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단어의 뿌리를 이해하는 순간, 사고는 정제되고 말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아이고, 저 영감 또 고집을 부리네.
할망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런 말들이 마치 한물간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영감’과 ‘할망구’라는 표현이 이제는 일상에서 좀처럼 쓰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나마 ‘영감’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라, 뒤에 ‘님’이라는 존칭 어미를 붙이면 제법 격식을 갖춘 호칭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영감(令監)은 조선 시대 정삼품에서 종이품에 이르는 벼슬아치를 가리키던 존칭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관직과 무관하게 나이 많은 남성을 이르는 말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오늘날 아무에게나 붙이는 ‘사장님’이라는 호칭과 결이 비슷하지만, 여전히 ‘검사 영감’, ‘군수 영감’과 같이 고위 공무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바랄 망(望)’과 ‘아홉 구(九)’로 이루어진 망구는 글자 그대로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여든한 살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 팔십 줄에 들어서자마자 구순을 내다보며 장수를 기원했던 옛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자어 ‘망구(望九)’와 고유어 ‘망구’를 별도의 표제어로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유어 ‘망구’에는 ‘=할망구’라는 부연과 함께 ‘늙은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가 붙어 있습니다. 짐작하건대 ‘망구’나 ‘할망구’라는 말은 본래 장수를 기원하던 ‘망구(望九)’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지만, 세월을 거치며 뉘앙스가 전혀 다른 별도의 단어로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영감과 망구는 모두 존칭에서 시작되었지만 누가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애정 어린 호칭이 되기도 하고, 타박과 빈정거림의 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서로를 ‘영감’, ‘망구’라 부르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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