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소박한 숙소가 불편하지만 불평할 수 없었던 이유

깊게 베어든 여름의 환대

by조인후

한여름의 장마철, 거세게 쏟아붓다 스쳐 지나가는 빗줄기처럼 짧았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 여운만큼은 그 어떤 화려한 호텔이나 고급 리조트보다 깊게 가슴속으로 베어 들어왔다. 산자락 아래 한적하게 자리 잡은 노부부의 소박한 숙소. 칠팔 년 전, 수도권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내려와 평당 육십만 원이라는 땅에 터를 잡았지만, 경사지고 거친 돌밭을 다지느라 정작 땅값보다 더 많은 돈과 피땀을 쏟아부었다는 곳이다. 마당 한구석 자갈 하나, 통나무 모양의 외관, 풀 한 포기에도 노부부의 세월과 손때가 묵묵히 얹혀 있었다.


이곳은 첨단 시설을 갖춘 전문 숙박업소가 아니다. 인터넷 후기들을 훑어보면 간혹 아쉬운 목소리들이 눈에 띄곤 한다. "청소 상태가 깔끔하지 않다", "수건이나 기본 양념이 구비되어 있지 않다", "개미나 벌레가 보인다", 심지어 "온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거나 "정체모를 냄새가 난다"는 솔직한 지적들. 사실 그것들은 모두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보면 불편하고 서툴게 느껴질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우리 가족 역시 소소한 해프닝을 겪었다. 분명 숙소 정보에는 무선 인터넷(Wi-Fi)이 된다고 적혀 있었지만, 할아버지께 "와이파이"라 말씀드리면 낯설어하실 것 같아 "인터넷이 안 된다"고 여쭤보았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은 천진난만할 정도였다. "난 그런 거 몰라." 그 순박한 미소와 표정에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구나 싶어 더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의도치 않게 시작된 우리 가족의 '디지털 디톡스'. 스마트폰 화면을 끄자 비로소 주변의 풍경과 가족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만 조금 덜 왔더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빗소리와 계곡물 소리를 BGM 삼아 온전히 자연에 묻혀 보낸 그 시간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이었다.


불평 뒤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후기가 왜 하나같이 따뜻한지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불만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과 친절 덕분에 마음이 풀렸다", "고향 친척 집에 다녀온 것 같다"는 이야기들. 호텔의 매끄러운 응대 및 룸서비스는 없을지언정, 이곳에는 그 세련된 부재의 공간을 아늑하게 채우고도 남는 뭉클한 온기가 있었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손수 이불을 빠르고 마당을 쓸어내는 그 위태롭지만 정성스러운 손길을 알기에, 사람들은 불쾌함 대신 너그러운 미소를 품고 돌아가는 것이리라.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할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밭을 일구고 나무를 가꾸는 일이다. 정성껏 키운 호박과 상추, 복숭아, 청양고추, 토마토를 거두어 손님들에게 선뜻 쥐여주시고, "다음에 오면 옥수수도 따게 해주겠다"며 아이처럼 약속을 건네신다. 저녁에 바비큐를 하겠다고 하면 추가 비용은커녕 그릴과 석쇠, 토치, 부탄가스까지 무심한 듯 챙겨주신다. 심지어 "원하면 앞 냇가에 가서 성인 가슴까지 오는 깊은 물에 들어가는 물고기를 직접 잡아줄 수도 있다"며 허허 웃으시던 모습이란. 미흡한 소금이나 후추 조미료는 없을지언정, 세상 어느 5성급 호텔에서 이런 다정하고 눈물겨운 룸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을까.


그 소박한 풍요로움 뒤에는 더 깊고 아슬아슬한 서사가 숨어 있었다. 힘겨운 위암 투병을 묵묵히 견뎌내시고 불과 몇 달 전 드디어 5년 완치 판정을 받으셨다는 이야기였다. 대수술과 기나긴 회복의 시간을 버텨내고 다시 일군 밭이기에, 할아버지가 다듬는 나무 한 그루와 채소 한 포기는 단순한 소거리가 아니라 생명의 기쁨 그 자체였으리라. 그 기적 같은 세월을 견뎌낸 굳은살 박힌 손으로 건네주신 열매였기에 더욱 특별하고 감동적이었다.


머무는 동안 유독 가슴을 울린 장면이 있다. 서울에서 손주가 내려오기로 한 날, 할아버지는 몇 시간 전부터 연신 길가로 나와 앉아 계셨다. 정적만 흐르는 길목을 한참이나 내다보고 또 내다보시던 그 묵묵한 뒷모습. 길 끝에서 차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시던 눈빛 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정작 도착할 손주는 그 애타는 기다림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먼발치에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 가슴속에는, 어린 시절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주고 사랑해 주셨던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온기가 뜨겁게 되살아났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8월이면 매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도 있다고 했다. 연세가 많으신 일행이 있어 매년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며 오시지만, 올해도 다행히 건강이 허락해 다시 방문한다는 소식에 할머니는 아이처럼 기뻐하셨다. 또 어떤 젊은 손님에게는 "장가 빨리 가라"며 정겨운 잔소리를 건네고, 함께 밤늦도록 담소를 나누는 모습. 이렇게 손님 아닌 손님을 진심으로 대접하고 기다리는 노부부의 모습은, 모든 것이 효율과 상업성으로 계산되는 요즘 세상에서 참으로 희귀하고도 아련한 풍경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맏딸이 부모님에게 마지막 효도라 생각하고 맏딸이 선물한 집이라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계곡을 보자마자 홀린 듯 계약을 하고, 부모님과 형제들이 편안히 쉬어갈 공간으로 손수 지어 올린 집. 부모님의 고단한 일터가 아닌, 삶의 여한을 풀고 웃음을 되찾는 '행복한 놀이터'가 되기를 바라는 딸의 예쁜 마음이 담긴 공간이었던 것이다. 에어비앤비 예약과 서툰 안내를 뒤에서 묵묵히 관리하는 딸과, 현장에서 손님을 진심으로 맞아주는 노부부의 호흡 속에는 집안 전체를 감싸는 끈끈한 가족애가 흐르고 있었다.


사실 가까운 친척 집이라 해도 이렇게까지 조건 없는 환대를 받기는 쉽지 않다. 온수가 잘 나오지 않거나 Wi-Fi가 터지지 않아도 불평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서툽과 부족함을 뛰어넘는 진심이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우리를 위해 차가 떠날 때까지 마당 끝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두 분의 잔상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러 조인후


빗길을 헤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손수 쥐여준 농작물의 묵직한 감촉과 길 끝을 내다보시던 할아버지의 아련한 뒷모습이 자꾸만 눈앞을 가리운다. 딸의 효심으로 피어난 부모님의 놀이터에서, 완치라는 큰 산을 넘고 삶의 진짜 소중함을 나누어주신 두 분.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 어떤 고급 리조트보다 깊게 베어든 이 여름의 기억을 안고, 두 분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무병장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