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遺産)이라는 이름의 지원사업
몇 달 전, 은퇴하신 아버지로부터 묵직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당신의 오랜 지인이 운영하는 어느 지방의 제조사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으니, 내려가서 그들의 숨통을 틔워줄 방법을 함께 고민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전화 통화를 끝내고 모니터 옆에 낯선 이름과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붙여두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지만, 선뜻 전화기가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아무리 비즈니스라 해도,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는 일은 매번 낯선 벽을 마주하는 것처럼 서먹하고 막막하다. 상대가 거칠고 치열한 제조업 바닥에서 뼈가 굵은 노년의 창업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떤 질문으로 문을 열어야 할지, 내 목소리가 그들의 오랜 고민에 너무 가볍게 얹히지는 않을지, 며칠을 망설인 끝에야 겨우 용기를 내어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리는 짧은 정적 속에서 침을 삼켰다. 전화를 받은 상대에게 최대한 조심스럽고 정중한 어조로 방문 목적과 사전 아젠다를 여쭈었다. 그러나 긴장 섞인 내 질문이 무색하게도,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쉰 목소리의 답은 툭 투박하리만치 단호했다.
"일단 한 번 내려오세요. 얼굴을 마주해야 진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젠다가 불명확한 미팅은 언제나 불안의 안개를 동반한다. 사전 합의된 주제 없이 일단 얼굴부터 보자는 옛 어른들의 거친 소통 방식이 낯설었지만,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마치 내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처럼 다가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 채, 내비게이션에 낯선 지방의 주소를 찍고 차를 몰았다. 왕복 5시간, 길 위에 흩뿌려진 시간 속에서 질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새벽부터 서둘렀음에도 목적지에 다다르니 볕이 정수리를 날카롭게 찌르는 한낮이었다. 회색빛으로 바랜 공장 건물 입구, 뙤약볕이 내리쬐는 현관 앞에 한 노신사가 미동도 없이 서 계셨다. 한눈에 보아도 내가 만나기로 한 창업주였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거친 손으로 내 손을 꼭 쥐며 2층 사무실로 안내하셨다.
그러나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는 노인의 뒷모습은 위태로운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한 계단, 또 한 계단이 삶의 마지막 고비인 듯 온 힘을 쥐어짜는 유약한 육신. 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밖에서 나를 기다렸을 그 고독한 시간을 가늠하자, 몇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으며 쌓인 피로 따위는 순식간에 송구함과 부끄러움으로 화했다.
사무실 벽면은 세월의 훈장 같은 빛바랜 인증서와 성적서들이 빼곡히 메우고 있어, 마치 오랜 세월의 궤적을 보관하는 박물관 같았다. 자리에 마주 앉아 들은 회사의 역사에는 보람의 불꽃과 후회의 재가 담담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가장 좋은 원료가 나는 터를 찾아 내려와, 젊은 부부가 피눈물 흘리며 전국을 누비며 제품 한 장을 알렸던 개척의 날들. 그리고 그 지독한 성실함이 남긴 잔인한 대가, 뇌경색. "이거 하나 세상에 제대로 내놓으려다 내 몸이 다 부서졌습니다." 떨리는 음성 사이로 툭툭 떨어지는 삶의 무게에 숨이 턱 막혀왔다.
함께 풍파를 견뎠을 배우자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노인은 유독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말을 아꼈다. 훗날 자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곁을 지키던 어머니는 2년 전 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가장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자 평생의 동반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마저 병든 육신만 남았으니, 그가 일궈온 이 찬란한 세월이 때로는 얼마나 원망스럽고 시렸을까.
노인은 자녀들에게 가업을 물려주며 "나 때문에 너희가 사서 고생을 한다"며 마른 입술로 미안함을 뱉어냈다. 당신의 건강과 인연을 모두 앗아간 사업이 이제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보며 짓는 허탈한 웃음 뒤로 쓸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하지만 부친이 자리를 비운 뒤, 홀로 남은 따님의 눈빛은 전혀 다른 빛을 품고 있었다. 부모님이 뼈를 깎아 만든 이 터전을 더 눈부시게 키웠어야 했는데, 자신의 역량이 부족해 거친 풍파를 맞는 것 같아 죄송할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침 동석했던 한 관계자가 "회사의 업력이 너무 오래되어 요즘 나오는 정부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게 참 안타깝다"며 현실적인 고충을 토로하던 순간이었다. 침묵하던 따님이 고개를 들며 단호하고도 맑은 목소리로 방 안의 공기를 갈랐다.
"아버지가 제게 이 회사를 믿고 물려주신 것 자체가, 제 인생 최고의 지원사업이에요."
외부의 얄팍한 혜택이나 유행을 좇기보다, 부모님이 목숨처럼 지켜온 제품의 본질과 가치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본업의 전부이며, 본질만 단단하다면 겉치레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선언이었다. 근래 만난 그 어떤 거창한 경영인보다 기개가 넘치는 대장부의 기상이 지령처럼 내려앉았다. 부모의 평생이 담긴 유산에 대한 진심 어린 경외와 사랑이 그 한마디에 압축되어 있었다.
비록 창업자의 육신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쇠약해졌을지언정, 자식 농사만큼은 그 어떤 제품보다 단단하고 아름답게 지어내셨구나, 뭉클한 확신이 차올랐다. 저토록 서슬 퍼런 의지와 애정이 있다면, 이 일터는 반드시 거친 파도를 넘어 다시 우뚝 설 것이라고.
냉정한 외부인의 가면을 벗고, 외부인으로서 도울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실질적인 방안을 고민했다. 아직 신뢰의 두께가 얇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큰 비용이 드는 마케팅을 제안하기보다, 리스크 없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수출 판로를 함께 개척해 보기로 했다. 부녀가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거룩한 진심을 목도한 이상, 이것은 더 이상 아버지의 부탁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이들의 서사에 한 줄의 보탬이 되고 싶다는 뜨거운 열망이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길, 벽면에 걸린 수많은 특허증 위로 늦은 오후의 붉은 역광이 스며들었다. 노경영인은 내일 병원 입원을 앞두고 계신다고 했다.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고독한 전쟁터로 들어가기 전, 당신이 남겨놓은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일정을 나와의 미팅으로 채우신 그 심정이 헤아려져 어깨가 묵직해졌다.
수십 년간 종잇장처럼 얇아질 때까지 결코 무르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왔던 그 고집스러운 진심. 그 단단한 유산이 차가운 시장에서 다시 한번 눈부시게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나의 미약한 걸음을 그들의 오랜 여정에 조용히 보태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