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맞이한 온전한 나의 계절
넷플릭스를 지운 지 한 달이 지나간다. 사실 이 아이콘 하나를 삭제하기까지, 나는 몇 년에 걸친 긴 고민의 시간을 지나와야 했다. 시시각각 쏟아지는 화려한 오리지널 시리즈들과 한 번 발을 들이면 멈출 수 없는 흥미로운 서사들.
그 달콤한 세계를 등진다는 것은 단순히 앱 하나를 지우는 일 이상의, 유행하는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낙오될 것만 같은 상실감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지만, 그때마다 넷플릭스를 유독 좋아하던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나의 결심은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화면 속의 대사보다 우리의 눈맞춤이, 누군가의 연출된 서사보다 우리의 소소한 잔대화가 더 간절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설득 끝에 어렵사리 받아낸 아내의 동의는, 내 삶의 관성을 바꾸는 거대한 첫걸음이 되었다.
막상 앱을 지우고 나니 습관의 무게는 생각보다 육중했다. 일상의 틈새마다 고여있던 그 여백이 주는 공백감이 꽤나 컸다. 무엇보다 긴 출퇴근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채워주던 그 빛나는 세계가 사라지자, 비로소 시간의 무게를 현실적으로 체감하기 시작했다.
손바닥 안의 휴대폰으로만 향하던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헤매다 지하철 창밖의 풍경으로, 그리고 내 앞과 옆자리에 앉은 타인의 얼굴로 옮겨갔다. 해방된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낯설고도 다정한 생동감이 일렁였다.
무료함이 밀려올 때면 가방 속에 언제부터인가 부채감처럼 담아두었던 바카라을 꺼내 읽었다. 예전 같으면 도서관에서 빌려온 바카라을 앞부분만 겨우 읽거나 펼쳐보지도 못한 채 반납하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2주라는 대출 기간 안에 오롯이 완독을 하고 돌려주는 일이 가능해졌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마지막 바카라장을 덮는 그 짧은 고요의 순간, 나는 나 자신에게 작은 축하를 건넸다. 이 모든 변화가 고작 손가락 끝으로 앱 하나를 지워낸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아내와의 시간도 조금씩 결이 달라졌다. 대단하고 깊은 담론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를 수놓았던 자잘한 대화들이 잦아지니 저녁의 공기가 한층 풍성해졌다.
우리는 왜 그동안 이 따스한 인간애를 유보한 채 그 좁은 스크린 속으로 모든 감각을 던져 넣었던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고 곁에 있는 사람의 눈을 맞추는 일이 사실은 이토록 충만한 축제였는데 말이다.
얼마 전 해외 출장을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평소라면 태블릿에 콘텐츠를 가득 채우느라 분주했겠지만, 이번엔 가방 속에 바카라 서너 권만 챙겨 넣었다. 어둡고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바카라을 읽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고된 일이었으나, 독서 외엔 수면이라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자 삶은 더없이 단순해졌다.
고민할 여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실행이 빠르고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적막한 기내 조명 아래서 오직 문장에만 침잠하던 그 밤은,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했던 귀한 의식과도 같았다.
넷플릭스는 지금도 끊임없이 화려한 광고와 새로운 콘텐츠로 나를 유혹하며 돌아오라 손짓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일상의 여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무심코 시작했다가 백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미국의 시즌제 드라마보다, 내가 직접 써 내려가는 에세이 한 줄과 원고 뭉치가 나를 더 단단하게 채워주리라 믿는다. 이 기록들이 훗날의 나를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기억시켜 줄 것이다.
하나의 결정과 하나의 선택이 내 삶에 이토록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이제 화면 밖으로 나와, 비로소 진짜 나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