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려놓은 궤적 안에서
생이 빠르게 때론 천천히 바퀴를 굴린다.
요즘은 삶에 대한 설계도가 거의 없다.
한때 계획에 사로잡혀 살았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
내가 계획한 인생 설계도 대로 이룬 일이 얼마나 있었나.
어이없게 그 수가 턱없이 적어 헛웃음이 나온다.
그렇다고 막살기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테니,
뭔가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일을 계획 삼아 적어본다.
서너 가지 늘어놓고 보면 자꾸 살이 붙어
그 가짓수는 처음보다 열 배 정도 늘어나 있다.
그중에 복권 당첨은 꼭 끼여 있더라. 뭐 어떤가.
생각만 해도 행복하면 그게 행복이지.
일부는 기부에 쓰인다니 당첨되지 않아도 행복하다.
생각 없이 비우고 사는 지금의 삶이 내 생애 가장 행복한 것 같다.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이 글쓰기를 하고 있으면,
그래서 오히려 부유해지고 고귀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어 행복하다.
어쩌지 못할 슬픔과 고통 다 끌어안고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을 용기가 부족해 글을 쓴다.
뭐 먹고사냐, 혹자는 묻는다. 그럼 나도 되묻는다.
그러는 당신은 뭐 먹고사냐고.
사람들은 먹는 것에 진심이다.
당장 점심메뉴 뭐 먹을까부터 고민하니 말이다.
나는 다른 관점으로 질문을 바꾸고 싶다.
뭘 먹느냐 보다 어떻게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
생각해 보니 나는,
번갯불에 콩 볶듯 허겁지겁 먹는 밥과 술이 싫어
지금 이렇게 살고 있나 싶다.
정해진 시간에 우르르 몰려가
정해진 시간 내에
정해진 누군가와 먹는 쫓기는 듯한 식사.
오로지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며 먹는 밥이
가장 맛있고 소화가 잘 되는 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갈팡질팡하기 시작했고
세상이 정해주고 바라는 궤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집시 같은 사람이었다.
낡고 허름해도 숨 쉴 구멍 많은 삶이 더 편하고 가벼운 사람.
정해진 목표 지점의 무언가를 쫓지 않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보며 땅에 디딘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
그래도 아예 다 풀어놓고 막살고 싶진 않다.
다만 자기 주도적인 삶을 지향하고,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당장 내일 코 앞에 삶이 계속 이어질지
혹은 어쩌다가 툭 끊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세계에
순차적으로 정해진 대로 착착 실행되는 프로그램처럼
인생의 결과값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만 있다면,
덜 초조하고 불안할 텐데
지금으로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냥 덜 불안했으면, 덜 갈팡질팡했으면 해서
꽉 움켜쥔 욕망의 손아귀를 풀고
하나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려 한다.
내가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위해서 해야 할 것들.
정말 사랑한다면 그냥 주기만 하기.
지나치게 바라지 말고 기대하지 말기.
쓸데없는 것에 욕심내지 말기.
남과 나를 비교하는 마음 버리기.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걸 욕망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가지고 싶은 걸 최소한으로만 소유하기.
나는 갈팡질팡한 삶 끝에 도달한
지금이 바로
야구 경기 8회 말 투아웃 카운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