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는 건가?

안온함과 안일함의 사이

byJOO

한 번씩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지, 싶다가도 회사 일이나 아이들을 챙기는 방면에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큰아이는 중2라 슬슬 고등학교에 대해서도 생각할 시점이다. 예체능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중학교부터 치열하게 예고를 준비하고 있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영재고나 특목고, 자사고 등을 준비한다. 물론 일반고를 지원하려는 아이들이 대다수겠지만.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할 과목이 워낙 많아서 중학교 때 미리 영어를 끝내놔야 한다, 고등학교 과학도 해놔야 한다, 수학은 무조건 2년 이상의 선행을 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중심을 잘 잡았다가도 한 번씩 흔들리게 된다. 아이를 공부를 좀 더 많이 시키는 학원에 보냈어야 하나?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남는 시간에 독서도 하고 진로 고민도 할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더 잘할 수 있는 아이를 너무 안일하게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나도 나름대로의 생각은 있었다. 아이의 학습 정서도 중요하기에, 어릴 때부터 아이를 과도한 경쟁 속에 던져놓거나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학습시키는 것은 내가 원치 않았다. 일찍부터 달리면 번아웃이 올 수 있다기에 천천히 가자는 생각도 있었고. 키가 작은 아이의 키 성장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숙제가 많기로 유명한 학원은 보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학원 숙제의 비중이 너무 높아지면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을 염려하기도 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수행평가 준비에 차질이 있다거나 하는.

그래서 나의 아이는 내가 키운 대로, 현재 주어진 조건에서 안 하는 것 없이 잘하며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더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이대로 고등학생이 되어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이제라도 이 동네 상위권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으로 옮겨줘야 하나, 옮긴다면 어느 시점에 옮겨야 하나 고민한다. 학원 외에 집에서도 추가로 공부를 더 시켜야 하나라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워킹맘인 나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더 솔직히 말해 아이의 공부보다 내 삶을 더 챙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심신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버겁고, 살 만해지는 시기가 와도 퇴근 후에 피아노를 친다거나 드라마를 본다거나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곤 하는 것이다.

너는 너의 할 일을 하거라, 엄마는 엄마의 할 일을 할 테니.

아이에 대한 믿음인지 무신경한 방치인지 나도 모른다.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지만 후자라고 보는 이가 있을 수도.

다행히도 큰아이는 중2지만 중2병이 오지 않았고, 나와 대화를 잘하고, 동생과도 여전히 사이가 좋다. 아이는 집에서 혼자 누워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지만,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거나 외출을 하자고 해도 거부하지 않는다.


며칠 전 주말에 우리 집 풍경이 참 웃겼다.

나는 요즘 전자피아노를 오르간 모드로 바꿔서 성가를 치곤 한다. 성당에서 새벽 미사 반주자를 구한다는 공지를 본 후부터 새벽 미사 반주하는 걸 상상했다. 물론 지금은 새벽 6시에 출근길에 나서기 때문에 6시 미사 반주를 할 방법이 없지만, 나중에 회사를 관둔 다음엔 가능하려나? 고백하자면 나의 피아노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혹시 연습하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성당에서 반주자용 성가바카라을 사 왔다. 막상 쳐보니 죄다 틀려서 단번에 메타인지가 발동되었다. 아, 내가 반주하면 미사가 엉망이 되겠구나. 새벽부터 여러 사람을 심란하게 만들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성당에서 반주하는 상상은 바로 정리됐지만 오르간 소리가 좋아서 연습하고 있다. (집에서 오르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주말에 오르간, 아니 전자 피아노를 치다가 초등학교 5학년인 작은아이에게 문득 물었다.
“우리 집에 아빠가 옛날에 배우려고 샀던 플루트 있는데 플루트 배워볼래?”
남편은 신혼 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플루트를 배우겠다고 악기를 사서 3개월인가 4개월 동안 배우고 관뒀다.

플루트를 꺼내오니 남편이 악기를 조립하더니 “오랜만에 한번 해보자.” 라며 음계를 불었다. (연주 아님 주의) 그는 그냥 손을 짚어 음계만 불었으나, 플루트 소리 내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며 소리를 잘 내는 것에 뿌듯해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너도 단소 불 수 있으면 플루트 불 수 있어. 연습하면 소리 날 거야.”라고 말해 주었다. 작은 아이는 아빠가 넘겨준 플루트를 불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잘 안 나다가 어느 순간 소리가 나길래 남편과 나는 감탄과 칭찬을 해주고 각자 할 일을 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 순간 소리를 굉장히 크게 잘 내는 것이다. “오 대단한데!”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이거 단소인데요.”라고 말하더니 단소로 현란하게 백도라지 연주를 하며 단소 실력을 아낌없이 자랑했다.

그 모습을 본 큰아이가 “저도 오랜만에 클라리넷을 불어야겠어요.” 하며 클라리넷을 불기 시작했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각각 클라리넷과 단소를 불었다. 남편이 바쁘지만 않았다면 기타를 치며 연주회에 동참했을 텐데 남편은 할 일이 많아서 연주회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 소음 속에 일을 하다니!)

서로를 신경 쓰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하는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무해하다. 자유롭고 편안하다.

그래, 아이가 공부를 좀 덜 해도 가정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취미를 즐길 수 있다면 잘 살고 있는 거 아닐까? 오늘도 불안감을 한켠에 접어두고 안온함에 - 또는 안일함에 -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