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와의 스킨십에 안녕을 고하다

byJOO

둘째 아이 규는 초등 5학년을 맞이하면서 고학년이라는 자부심이 뿜뿜인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집에선 막내이기에 그 모습마저 매우 귀엽다.


규는 아기 때부터 가슴에 폭 안기는 걸 좋아했다. 아기띠로 규를 안아주면 규도 편안한지 폭 하고 기댔고, 규가 사뿐히 볼을 갖다 대며 착 안기면 나도 편안하고 좋았다. 규는 한 유치원생 시절이었나 꽤 컸을 때까지도 차에서 자다 일어나면 안아 달라고 했다. 분명히 잠이 깬 것 같은데 아이는 걷기 귀찮고 안기고 싶으니 잠이 안 깬 척을 했었다. 엄마는 힘드니 힘센 아빠에게 안기도록 어릴 적부터 교육을 시켜서 "아빠, 안아!"가 입에 붙었다.

아빠한테 안긴 아기 규


나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로망 같은 게 있었는데, 큰아이는 아기 때부터 원체 독립적이어서 손을 잡고 걸어준 적이 없었다. 반면에 둘째는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길을 걸을 때면 항상 엄마나 아빠나 할머니 손을 꼭 붙잡는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싶다는 나의 로망을 규가 실현해 준 셈이다.


규는 어른 앞에 앉는 것도 좋아했다. 집에서 소파에 앉아 있으면 규가 어느새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내가 바닥에 앉아 있어도 규는 내 양반다리 사이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았다. 그럴 때면 무겁게 왜 여기 앉느냐고 볼멘소리를 했지만서도 "여기가 좋아!"라는 아이 말에 나도 "그랬쪄?"라며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형한테 딱 붙어서 낮잠 자던 규

규는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나랑 같이 잤다. 꼭 엉덩이든 다리든 어딘가를 나에게 밀착한 채로 자서 나는 잠을 깊이 자지 못했었다. 게다가 잠들기 전에는 '등 긁어줘, 등 만져줘, 다리 주물러줘' 같은 요구사항 때문에 번거로웠던 적도 잦았다. 번거롭고 피곤하긴 해도 규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잠자기 시작할 땐 규를 한껏 만져주고 그러다 내가 먼저 졸고, 그러면 아이가 졸지 말라고 나를 깨우곤 했다. 아이를 살살 달래서 재운 적도 있지만 "엄마도 잠 좀 자자!"며 사자후로 끝난 적도 있었다.


가끔 아이들이 할머니네서 잘 때가 있었는데, 규는 할머니가 옆에 있어야 잘 잤다. 자다가 할머니가 옆에 없으면 잠결에라도 할머니를 찾았다고.


규는 초등 2학년이 되어 형과 둘이 자다가 4학년부터는 각자의 방에서 따로 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 자는 게 기대되면서도 무서웠는지 나에게 옆에 좀 있어달라고 했다. 나는 규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규의 볼에 뽀뽀를 해주고 말랑한 볼도 만져주고 안아주다가 불을 꺼주었다. 그러다가 규와 나만의 자기 전 루틴이 생겼다. 더 정확히는 규가 만든 루틴이었다. 먼저 내가 규의 양볼에 뽀뽀를 쪽쪽 해준다. 그리고 코를 부비부비한 다음 볼끼리 부비부비. 그다음에 포옹을 하고 마지막으론 입에 쪽. 아이는 헤헤 웃으며 잠을 잤고 나도 사랑이 충만해진 기분으로 안방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이 루틴을 정확히 몇 달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1년 못 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스킨십을 이토록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새 연세가 들어, 아니 나이가 들어, 스킨십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규가 스킨십을 꺼린다고 느꼈던 어느 날, 규에게 볼에 한 번만 뽀뽀해도 되냐고 물었다. 대답은 역시나 "그건 좀..."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이맘때 그랬다. 나는 어릴 적에 동생 볼에 뽀뽀를 자주 했었는데 초등 5학년 때 친구가 이 모습을 보더니 징그럽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나도 징그러운 생각이 들어 동생에게 뽀뽀를 하지 않게 됐었다. 어쨌든 스킨십을 꺼리는 것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므로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님네에서 나오는 길에 그런 얘기가 나왔다. 어머님 왈, 규가 어릴 적엔 할미랑 착 붙어 있는 걸 좋아하더니 이젠 옆에 있는 것도 안 좋아한다고. 하지만 애들이 크면 원래 그런 거라고.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내가 괜스레 서운해져서 규에게 할머니를 한 번만 안아드리고 가자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절대 싫단다! 내키지 않아도 한 번 잠깐 안아드리면 되는데, 규는 고개를 격렬히 흔들며 완강히 저항했다.


집에 도착해서 규에게 옛날 얘기를 해주었다.

"네가 안아주고 뽀뽀해 주면 얼마나 좋아했는데."

"으으. 지금은 좀 그래."

"우리 작년에 자기 전에 루틴 했던 건 생각 나?"

"생각은 나는데 뭘 어떻게 했었는지는 생각 안 나."

"엄마는 아직 기억하는데. 볼 뽀뽀, 코랑 볼 부비부비랑..."

"으으. 끔찍해."


큰아이는 앞서 말했듯이 어릴 적부터 원체 독립적이었고 스킨십도 그다지 안 좋아했기 때문에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러나 스킨십을 좋아하던 둘째의 확연한 변화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우리 집 막내 귀염둥이건만...


그래도 길을 같이 걸을 땐 규가 아직 내 손을 잡는다. 살포시 팔을 둘러 안고 규의 등을 토닥이는 것 정도도 괜찮다. 나에게 허락된 스킨십에 감사하자. 손마저도 뿌리치는 날이 오면, 그땐, 그땐, 그땐 어쩌지? 의연하게 쿨한 척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땐 정말로 우리 집 막내와의 스킨십에 안녕을 고할 수밖에.


작년 봄, 규가 나 중국 여행 가기 전에 건네준 쪽지. 그러고 보니 이제 사랑한다고도 안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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