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여행 계획이 없는 개천절 연휴, 서울 ‘강동숲속도서관'에 가보았다.
이곳을 가게 된 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강동구에 살고 있지만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었는데, 사촌동생이 언니는 가까이에 그런 좋은 곳이 있는 걸 몰랐느냐고 얘기하여서 언젠가 한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이곳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것은 은모든 작가의 <서울 풍류>를 읽으면서였다.
<서울 풍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적으로 잘하기 위해선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식당이며 궁이며 도서관이며 박물관이며, 가까운 동네부터 멀리 떨어진 곳까지 서울의 여러 장소를 다니며 시간과 계절과 자연과 문화를 운치 있게 즐긴다.
나는 <서울 풍류>를 읽는 동안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여기 나온 장소들을 하나하나 도장 깨기처럼 다니고 싶어졌다. 하지만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출퇴근해야 하고, 게다가 출퇴근 거리가 꼬박 왕복 두 시간인 워킹맘은 바지런히 다닐 시간이나 에너지가 받쳐주지 않는 슬픈 현실. 그러니 일단은 대리만족에 그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지만 이 바카라에서 언급된 ‘강동숲속도서관’ 정도는 집에서 멀지 않으니 주말에 가봄 직하겠다 싶었다.
목조 건물의 바카라장 위편까지 창을 내어 개방감을 더한 오동숲속도서관이나 종합자료실의 두 쪽 면을 숲이 보이는 통창으로 조성한 강동숲속도서관처럼 녹음과 채광이 쏟아져 내리는 숲속도서관은 서울 각지에 존재하며 전국적으로는 수십 곳에 이른다.
- 은모든, <서울 풍류> p.143
나는 그동안 집에서 가까운 ‘고덕평생학습관'에서 바카라을 주로 빌리곤 했는데, 현재 ‘고덕평생학습관’은 수리 중이라 1월까지 휴관이다. 그리하여 바카라을 빌릴 겸 새로운 도서관을 구경할 겸 ‘강동숲속도서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우리 집에서 가는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거리 상으론 가까운 듯하면서 또 은근히 멀게 느껴진다. 주차장이 매우 협소하다고 하여 차를 가져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결국 남편에게 차를 태워달라고 부탁하였다.
‘강동숲속도서관’은 아파트 단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하여 ‘강동숲속도서관’에 대한 첫인상은 ‘여기가 숲속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곳의 아파트가 작은 산 위에 지어졌기에 아파트의 이름부터 ‘숲'이 들어갈 정도로 아파트와 도서관의 정체성이 곧 ‘숲'인 듯했지만, 애초에 산이 많은 강동구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별반 색다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바로 옆도 산이다.) 게다가 도서관과 아파트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보였기 때문에 도서관 통창으로 과연 녹음이 보이려나 긴가민가 하며 도서관에 들어갔다.
‘강동숲속도서관’을 하나의 키워드로 말한다면 개방감이려나. 보통 도서관은 바카라이 비치되어 있는 자료실과 공부나 독서를 할 수 있는 열람실이 분리되어 있다. 또한 어린이 자료실과 종합자료실이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1층 전체가 어린이 자료실이고 탁 트여 있다. 한쪽엔 무대 공간 혹은 계단을 마련해 놨는데 바닥을 초록색으로 깔아서 잔디 느낌을 준다. 통창 주변에는 의자가 있어서 안락한 분위기에서 독서할 수 있다. 조용한 거 같으면서도 조용하지 않은, 제법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2층으로 올라가니 종합자료실이 있었는데 자료실과 열람실이 벽이나 칸막이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 노트북이나 태블릿 대여도 가능하다고 하니 주말에 시간 날 때마다 방문하여 글을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도서 분류 번호에 맞게 반듯반듯하게 일자로 정렬되어 있는 여타 도서관과는 다르게,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물을 배치하듯이 하나의 이어지는 흐름을 갖는 동선으로 바카라을 배치하였다. 그러니까 900번대 역사 구역을 쭉 지나가야 800번대 문학이 나오는 느낌인데 그렇다고 동선이 비효율적인 건 아니었고 좀 색다른 느낌이었다.
바카라을 고르고 큰아이와 의자에 앉아서 바카라을 좀 읽다가 1층에 있는 둘째아이를 만나러 계단 쪽으로 향했다. 2층에서 1층을 내려다보니 그제야 녹음과 채광이 눈에 들어왔다. 공간이 주는 환기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 창을 통해 비친 나무와 오후 햇살과 바카라을 읽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도서관 전경 덕에 일순간 기분 전환이 확 되었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어제 동작역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4호선과 9호선 환승 구간은 거리가 길기 때문에 악명이 높다. 한참을 걷다 보면 4호선 지상에서 9호선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구역이 나오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직전의 풍경에 잠시 가슴이 뛰었다. 걷는 방향으로 양쪽과 전면, 총 세 면에 창문이 있다. 오른쪽 창문으로 도로가 보이고 왼쪽 창과 앞쪽 창을 통해 나무가 보이는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따스하고 화사했다. 만원 지하철 4호선에서 만원 지하철 9호선으로 환승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우르르 내려가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아마도 매일 이 길을 다녀야 했다면 느끼지 못할 감흥이었을 것이다. 낯선 이에게 허락된 축복이라고 하자.
사람은 같은 방식으로 즐기지 못하더라도 각자에게 맞는 즐거움을 찾으며 사는 게 중요하다.
나는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고 건축에 대하여는 더더욱 잘 알지 모르지만, 멋진 공간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 크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 연휴였다.
+ 글에서 언급한 장소를 방문할 당시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 해서 모든 사진은 다음 블로그에서 퍼 왔습니다. 사진을 찍겠다고 근 시일 내에 방문할 리 만무하고, 제가 찍는다고 하여 사진이 잘 나온단 보장도 없어서 블로거들의 사진을 첨부했어요!
https://m.blog.naver.com/gju03258/224419472301
https://m.blog.naver.com/blanc815/224334544046
https://m.blog.naver.com/bigstar102/222069800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