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의 드넓은 세계
중국 로맨스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들이 있다. 새해맞이와 불꽃놀이, 생일 챙기기, 그리고 생리 에피소드.
처음에 접하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여성이 매달 생리를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남자친구가 그 기간에 배려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굳이 드라마에서까지 다뤄야 하나 싶다. 그런데 중국 시청자들은 남주가 여주를 챙겨주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이 에피소드를 좋아한다고 한다. 나는 드라마 몇 편에서 이 이야기를 봐서 '또?'란 느낌은 있을지언정 처음의 당혹스러움은 많이 줄었다.
중국 드라마에서 그리는 생리 에피소드의 과정은 이러하다.
1. 여주(여자 주인공)가 갑자기 생리를 시작한다.
2. 직접적으로 말은 못 하고 배를 움켜쥐며 괴로워한다.
3. 남주(남자 주인공)가 "혹시...?"라고 물으면 여주가 "응, 그거야."라고 말한다.
4. 남주가 생리대와 진통제를 급히 사 와서 건네준다.
5. 여주는 자신을 잘 챙겨준 남주에게 감동한다.
누군가는 드라마는 그렇다 치고 글에서까지 '굳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굳이" 얘기해 보자면...
여주여! 준비하지 못할 때 생리가 시작되면 배를 움켜쥘 시간에 빨리 생리대부터 사러 가자. 막 시작했을 땐 갈 여유가 있으니.
게다가 마트에 가보면 생리대의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여 남주가 사 오기엔 버거운 세계란다. 게다가 남주가 이 세계에 능숙한 것도 의심할 만하지 않니?
사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주기를 알기에 대략적인 시작일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불규칙한 사람들도 있고 규칙적이던 사람도 상황에 따라 주기보다 일찍 혹은 늦게 시작하는 경우도 있기에 생리대를 미리 준비하지 못한 누군가를 탓하진 말자.
나 역시 비교적 규칙적인 주기임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다거나 몸이 안 좋으면 예상보다 훨씬 일찍 당겨질 때가 있었다.
해외에 나가서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정말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날'이 되었을 때는 마트나 편의점이나 pharmacy로 달려가자. (미국의 pharmacy는 약국 그 이상이다. 작은 마트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생리대는 영어로 'sanitary pad', 중국어로는 '웨이셩따이(卫生带)' 이다. 몇 번 사봐서 이제 까먹지도 않는다.
해외에 가서 생리대를 사면 새삼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된다. 크기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다. 한국도 그렇긴 한데 한국에선 보통 자기가 쓰는 상품이 있고 미리 사놓기 때문에 마트에서 자세하게 살펴볼 일이 없다.
그러나 해외에선 당장 닥쳐서 사야 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를 사야 할지 꼼꼼히 봐야 하고,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해야 해서 비싼 건 사기 싫고, 그러면서도 세월아 네월아 검토할 수 없이 빨리 사야 한다. 그렇기에! 중드에서 남주들이 생리대를 사 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미션이었는지 여주들은 알아야 한단 말이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 왜 이 따위인가 싶겠지만 사실 난 이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고 싶었고 얼마 전에 이 글을 쓸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다. 나는 지금 휴가차 미국에 와 있는데 갑자기 '그날'이 시작되어 pharmacy에서 생리대를 샀다. 다양한 상품 중에 크기와 가격이 적당해 보이는 걸로 사 왔다. mint 어쩌고 가 쓰여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쑥이 든 생리대가 있는 것처럼 미국에선 mint 성분을 넣었나 보다 했는데... 오마인! 착용해 보니 화 하다. 상쾌함과 얼얼함의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다. mint의 장점이 대체 뭘까? 건강에 좋은 거니 민트를 넣은 거겠지?
그보다 나는 이 상품을 참고 써야 하는지, 새 걸 사 와야 하는지의 기로에 서 있다. 이미 나의 마음은 새 걸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남편에게 사 오라고 시키고 싶지만, 남편은 드넓은 세계에서 길을 잃고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