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많이 해야 좋은 직업

난 오늘 그녀와 이별을 했다

by초록별쌤

집에 돌아오는 길이 뭔가 허전했다.

또 마음이 꼬물거렸다.(이렇게 자주? 요즘 그대 안 되겠어~~ㅠ)

난 오늘 그녀와 이별을 했다.

예상했었던 정해진 이별이었다.

난 환하게 웃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라고 얘기했고

그녀는 몇 번이나 '감사했어요~ 선생님' 하면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게 7년 전이었기에 그녀의 이야기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남편과 같이 부부상담을 예약했다.

힘이 없이 어깨에 걸쳐져 있는 단발머리의 그녀와 너무나 다른 모습의 남편이 있었다.

키는 크진 않았지만 다부진 근육과 곱슬머리, 의자를 뒤로 젖힌 체 앉아 있는 그와

예민하고 초조한 얼굴로 테이블에 최대한 가까이 앉아있는 그녀는 정말 대조적이었다.

남편은 말했다 '왜 그래~ OO아~오빠가 잘하면 되잖아~ 잘할게~ 됐지?'

그녀가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푹 숙이며 헛웃음을 내 보냈다.

'항상 이런 식이에요~ 내가 잠 한숨 못 자고 힘들었는데 이 사람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늘 뭉개버려요~'

그녀는 화가 올라와서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떨린 목소리를 꾹꾹 눌러가며 얘기했다.

문제의 발단은 그가 아주 아주 정성 어린 효자라는 것이다.

매일매일 점심시간에 어머님댁에 들러서 식사를 챙겨드리고 집안일을 한 다음에 회사로 돌아갔고

일주일에 1박 2일은 어머님댁에서 생활했다.

하지만 1박 2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은 아이들을 위해 밥도 지었고 청소도 했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어머님댁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출근한 상태에서 몰래 들렀다가 퇴근 시간에 늦지 않게 집에 들어갔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얄미웠다. 남편도 시모도..

'아내분 생각은 남편이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세요?'

"남편이 어머님께 평일엔 안 갔으면 좋겠어요~ 1박 2일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왜 우리 아이들과 나는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려지는지 그게 속상해요~"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우리 집에 어머님이 오셔서 주무시거든요.. 그런데도 저렇게 어머님께 매달리는 게

자꾸 배신감이 들어요~"

'평일에 남편분이 점심시간에 들르시니까 우리 집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싫으실까요?'

"우리를 버리는 것 같아서요~ 남편의 모든 마음은 어머님께만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랬다. 그녀는 성장배경을 보아도 늘 우선순위에 밀려있는 둘째였다.

언니는 큰 딸이어서 관심을 받았고 동생은 막내라서 관심을 받았다.

그녀는 그 사이에서 혼자 성장해야만 했다.

부모님이 힘드실까 봐 부모님의 필요한 것들을 쫓아다니며 늘 챙겼고 그분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갈수록 부모님은 그녀를 믿게 되었고

그녀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혼자서 잘할 거니까..

그녀의 욕구와 상관없이 그렇게 소외되어 갔고 성인이 되어 내게 관심 가져주고 우선순위에 늘 놓아줄 것 같은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의 마음은 오직 어머님께 가 있었기에 더 큰 불안이 찾아왔다.

'또 나는 혼자 살아야 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커져서 늘 다투었는데 남편은 그 다툼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내가 잘할게~ 당신을 위해서 뭐 해줄까? 엄마는 연로하셔서 아무것도 하실 수 없으니 내가 갈 수밖에 없어서 그래~" 남편은 건강했고 우리 집과 어머님집 일 양쪽을 씩씩하게 다 해냈다.

부부상담 5회기를 지나면서 나는 그녀와 개인상담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이었다. 자신은 어머님댁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 외에는 아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내가 상담을 통해 뭔가 결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녀의 개인상담이 진행되었고 그녀는 많이 울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바라봐 주지 않는 엄마아빠에 대한 서러움이 쏟아져 나왔다.

그 서러움은 분노가 되어 남편에게.. 시모에게 이어졌다.

내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은 남편이 미워서 남편의 좋은 점들을 바라볼 눈이 없었다.

남편을 자꾸 뺏어가는 듯한 시모에게 서운해서 시모가 얼마나 몸이 불편한 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몇 회기에 걸쳐서 서러움과 분노를 쏟아냈을 때 그녀에게 심리검사지를 주었다.


<Q: 남편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써보세요~>

그녀는 조금의 막힘도 없이 줄줄 써내려 갔다. 열 가지가 넘었다.

그는 타고난 건강으로 많은 일들을 빠른 시간에 해내고서 지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회사 일도 바카라임감 있게 꼼꼼히 해냈기에 회사 대표는 회사의 중요한 일들을 다 맡겼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어머님께 착한 아들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완벽에 가깝게 해내고 있었다.

또 얼굴 표정도 밝았다. (처음에 그녀는 남편의 밝은 표정 때문에 더 화가 난다고 했다-날 놀리는 건가? 싶고)

장점들을 가득 채운 검사지를 보면서 그녀는 부끄러운 듯 웃었다.

상담사가 남편을 칭찬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자신이 적고 나니까 조금은 부끄러웠었나 보다.


7년 내내 상담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가끔은 몇 달 만에 찾아온 적도 있다.

상담을 통해 여러 과정을 거쳤고 우울점수도 낮아지고 자존감은 올라갔다. 자녀들은 성장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막내만 아직 중학생이다.

지난번 상담을 하며 '이제 종결을 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기에

오늘 상담을 진행하며 종결을 준비했다.


<Q: 오늘은 상대의 입장으로 자신을 소개해보세요~>

부모, 형제, 남편, 자녀, 온라인 게임, 친구 등을 예시로 적어 두었다.

부모입장: 착한 딸, 잘 챙겨주지 못해서 늘 미안한 딸. 남은 챙기고 자신에게 아끼는 안쓰러운 딸

남편입장 :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며 도전정신과 용기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멋진 아내

자녀입장: 닮고 싶은 엄마, 나를 사랑하며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소중한 엄마

친구입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능력자


좋은 말들이 쏟아졌다.

사랑의 결핍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사랑을 잃을까 봐 불안해하던 그녀는 사라졌다.

어느새 자신의 자리에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멋진 중년이 되었다.

"모든 게 선생님 덕분이에요~ 제가 마음이 좋아지니까 남편도 느꼈는지 내 머리를 만지며

'이쁜 ㅇㅇ아~'라고 해요.

그리고 요즘은 남편이 2박 3일을 어머님께 가있어요~ 어머님이 작은 수술을 하셨거든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속상하지 않으세요?'

그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남편의 사랑을 믿으니까요~"

그녀의 미소를 보며 상담사도 덩달아 행복했다.


그리고...

우린 이별하기로 했다.

7년간의 긴 만남을 끝내기로 했다.

이별을 많이 해야 좋은 직업- 상담사

상담사라는 직업은 이별을 많이 해야 좋은 것이기에 견뎌야 한다.

힘든 고통에서 빠져나와 상처에 새살이 돋고 행복한 미소로 이별하는 날은 감사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서운하다.

그녀의 아픔과 동행했던 시간만큼 그녀의 삶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서운함을 덜어내고 그녀의 미래를 축복해야 한다.

'앞으로 당신이 만나는 날에는 더 많이 행복하세요~'

그녀가 떠나고 카톡과 선물이 도착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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