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 오늘 우리에게, 1899 헤이그

by밤톨


2026년 6월의 초여름, 조용히 헤이그 중앙역을 빠져나와 덜컹거리는 트램을 타고 오래된 벽돌과 돌길 위를 걸었다. 1899년 여름, 숲 속의 궁전에서 보낸 72일간의 치열했던 흔적은 오늘날 이 차분한 도시 어디에 남아 있을까. 가장 선명한 자국은 녹음 짙은 광장 끝에 서 있는 '평화의 궁(Peace Palace)'에 닿아 있었다.


오늘날의 평화의 궁,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앞선 이야기에서 극심한 진통을 겪은 후 겨우 탄생한 제3위원회의 산물이었던 상설중재재판소(PCA)의 운영본부는 현재 이 곳 평화의 궁에 있다. 1899년 당시 재판소는 총칼 대신 법의 언어로 갈등을 다스리겠다는 인류 최초의 상설 사법 실험이었다. 이러한 국제 재판소의 계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상설국제사법재판소(PCIJ)를 거쳐, 다시 오늘날의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국제형사재판소(ICC)로 이어졌다. 강대국의 군사적 힘이 아닌 법리의 저울 위에서 국가 간 분쟁을 다루려는 이 시도는, 전 세계인들에게 헤이그를 명실상부한 '세계 국제법과 평화의 수도'로 각인시켰다.


전장의 참상을 법의 테두리 안에 묶어두려 했던 고뇌 역시 현대 국제인도법(IHL)의 단단한 뼈대로 남아있다. 제2위원회에서 성문화된 육전(陸戰) 협약과 비인도적 무기 사용 금지의 선언들은 1949년 제네바 협약으로 확장되며 오늘날 무력 충돌의 잔혹성을 제어하는 보편적 규범으로 진화했다.


외교의 형식과 문법에서도 헤이그는 혁명적인 실험의 장이었다. 이전의 베스트팔렌(1648)이나 비엔나(1815)에서 열렸던 국제회의가 전후 승전국 중심의 질서 재편과 영토 조정을 위한 자리였다면, 1899년 헤이그는 평화 시기에 동서양의 여러 국가들이 전쟁 예방과 분쟁 해결을 위한 규범을 모색한 최초의 다자 포럼이었다. 강대국의 밀실 외교를 넘어, 대소국이 1국 1표의 주권평등 원칙 아래 마주 앉아 조약문을 써 내려간 이 회의의 형식은 훗날 국제연맹과 오늘날 국제연합(UN)으로 이어지는 현대 다자주의 거버넌스의 원형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고요한 헤이그의 거리 위로 겹쳐지는 이 제도적 유산들은 결코 순탄한 합의나 완성된 이상의 산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1) 자국 우선주의와 국제적 연대, (2) 문명을 기준으로 한 배제와 포용, 그리고 (3) 공리주의와 도덕적 믿음, 이 각각의 대립 구도가 팽팽하게 충돌하며 빚어낸 위태로운 타협의 결과물이었다.


이 세 가지 질문들을 잠시 생각해 보자.

오늘날의 국제형사재판소(ICC),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국익이라는 현실의 닻을 내리면서도, 연대라는 규범의 돛을 올리는 일의 어려움


# 국익 vs 연대
국제정치의 장은 본질적으로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홉스적 '만인의 투쟁' 공간에 가깝다. 1899년 헤이그의 회의장을 감돌던 본능 역시 다르지 않았다. 군비 축소라는 숭고한 구호 이면에서 각국 대표들은 오직 자국의 군사적 우위와 안보적 손익계산서만을 응시했다. 무기를 내려놓는 것은 곧 국가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라 여겼고, 평화는 규범의 약속이 아닌 완벽한 무장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가 목도한 세계 역시 이 냉혹한 국가 이기주의의 귀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노골화된 자국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다자주의 협약과 동맹의 규범을 한낱 거래적 득실로 격하시켰고, 2022년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권과 국경의 불가침이라는 전후 국제법의 대원칙을 힘의 논리로 유린했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절대화할 때,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성벽이 얼마나 쉽게 균열하는지 세계는 다시금 확인했다.

그러나 1899년의 역사가 역설적으로 증명했듯, 국익의 맹목적인 추구만으로는 세계가 존속할 수 없다. 고립된 채 홀로 완벽한 안보를 누릴 수 있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전례 없는 속도로 결집한 국제슬롯의 대러 제재와 규범적 연대, 지정학적 대립의 한복판에서도 2023년 마침내 타결된 유엔 공해생물다양성협약(BBNJ),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기후 위기와 팬데믹 앞에서 작동한 글로벌 거버넌스는 연대가 단순한 이상주의자의 도덕적 수사가 아닌 '가장 현실적인 생존 방식'임을 보여준다.

이 팽팽한 긴장은 오늘날 대한민국 외교의 한복판을 날카롭게 관통한다.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갖춘 한국은 이제 '글로벌 중추국가(GPS)'를 표방하며 규칙 기반 질서의 수호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의 현실은 살얼음판과 같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안보의 축으로 삼으면서도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관리해야 하고, 우크라이나를 향한 인도적·규범적 연대를 표명하면서도 러시아와의 지정학적 관계와 한반도 평화 지형을 동시에 저울질해야 한다.


동유럽과 세계 시장을 파고드는 'K-방산'의 성취가 국제 안보 질서에 기여하는 실리적 국익인지, 혹은 갈등의 최전선에 서는 구조적 위험인지에 대한 질문도 마주한다. 국익이라는 현실의 닻을 내리면서도 연대라는 규범의 돛을 올리는 일, 1899년 헤이그의 외교관들이 마주했던 그 지난한 줄타기에 어쩌면 우리도 이미 올라타 있을지 모른다.



우리의 눈에는 백여 년 전 절박했던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낯설고 생경한 타인만이 비치고 있는가.


# 포함 vs 배제
국제법과 제도는 늘 '보편'이라는 장엄한 기치를 내걸지만, 역사가 보여준 그 울타리의 경계는 언제나 중심부의 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그어졌다. 1899년의 회의장은 '만국(universal)'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었으나, 실상은 유럽 백인 기독교 열강의 배타적 카르텔에 가까웠다. 회의장에 발을 들인 비서구 국가들은 룰을 주도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저 서구의 문법을 수동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관찰자에 머물러야 했고, 제국주의의 희생양이었던 수많은 식민지와 약소 민족들은 궁전 문밖의 차가운 돌길로 철저히 밀려났다. '문명'이라는 자의적 기준은 누군가를 품기 위한 잣대가 아니라, 타자를 합법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거대한 성벽이었다.


오늘날의 국제정치 역시 세련된 외피를 두른 채 새로운 형태의 '포함과 배제'를 반복하고 있다. 보편적 다자주의의 상징인 유엔의 기능이 마비되자, 강대국들은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라는 이름 아래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만의 배타적 울타리를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쿼드(Quad), 오커스(AUKUS), 핵심 광물 안보 파트너십(MSP), 첨단 기술 및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등은 특정 국가를 체계적으로 차단하고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규칙 기반 질서'를 공유하는 자들만의 결속이 굳건해질수록, 그 성벽 바깥에 남겨진 세계와의 단절과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대한민국은 이 포함과 배제의 역사적 궤적 위에서 가장 극적인 위치 변화를 경험한 나라다. 1899년에는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존재가 지워졌고, 1907년에는 굳게 닫힌 회의장 문 앞에서 피를 토하며 문전박대를 당했던 변방의 약소국이었다. 그러나 백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G7 정상회의에 연이어 초청받고 글로벌 규범 형성을 주도하는 핵심 파트너로 당당히 호명되고 있다. 문밖에서 서성이던 처절한 방관자가 마침내 룰을 정하는 테이블의 안쪽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초대받는 자'의 위치에 섰다는 것은 곧 또 다른 차원의 윤리적·전략적 시험을 의미한다.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배타적 블록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진영 간 단절을 완화하고 소외된 세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것인가. 나아가 이 질문은 국가의 국경 안쪽으로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국내 이송 작전(미라클 작전)에서 보여주었듯, 우리는 국제슬롯의 바카라임 있는 일원으로서 인도주의적 포용의 저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몇 해 전인 2018년 제주에 도착한 예멘 난민들을 향해 쏟아졌던 매서운 경계와 배척의 시선, 그리고 일상의 이주민들을 마주할 때 드러나는 우리 안의 견고한 문턱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문밖에서 서성이며 배제의 상처를 겪었던 우리가, 이제 문 안쪽에서 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밀어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에 선 것이다. 지금 굳게 닫힌 문밖에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볼 때, 과연 우리의 눈에는 백여 년 전 절박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낯설고 생경한 타인만이 비치고 있는가.



끝내 살아남아 역사를 전진시킨 것은 ‘가치와 믿음’이었다.


# 공리주의 vs 가치와 믿음
1899년 헤이그 평화회의를 촉발한 것은 거룩한 인류애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닥난 국고와 군비 경쟁의 열세를 모면하려던 제정 러시아의 절박하고도 교활한 공리주의적 손익계산이었다. 군비 축소가 파산을 막아줄 것이라는 세속적 셈법이 회의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각국의 이기심으로 난도질당한 그 차가운 계산의 틈바구니에서 끝내 살아남아 역사를 전진시킨 것은 제국의 득실표가 아닌 ‘가치와 믿음’이었다. 센트랄 호텔의 응접실을 지키며 밀실의 외교관들을 감시했던 베르타 폰 주트너와 평화운동가들의 집요한 외침, 그리고 냉혹한 군사 대국의 심장부로 들어가 상설 법원의 뼈대를 끝끝내 지켜낸 앤드루 화이트와 프레더릭 홀스 같은 영미권의 이상주의자들의 분투는, 실리적 타협의 잿더미 위에서 피어난 신념의 도약이었다.

오늘날의 세계 역시 가치와 공리라는 거친 시험대 위에 다시 올라서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라는 보편적 규범을 내세우는 ‘가치 외교’의 수사는 화려하지만, 에너지 안보와 핵심 광물 공급망이라는 실리 앞에서는 권위주의 정권과의 타협과 침묵이 서슴없이 정당화된다. 철저한 손익계산에만 기댄 국제 질서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최고 권력자의 전쟁범죄 혐의에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전 세계 시민슬롯가 국경 너머의 비극에 연대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까닭은, 계산을 넘어선 '규범적 양심'이야말로 문명을 야만으로부터 지켜내는 최후의 방파제임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위태로운 이중주 속에서 대한민국 역시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보편적 인권과 규범 기반 질서를 표방하면서도, 강대국의 진영 논리와 자본의 셈법 앞에서는 침묵과 편승을 택하는 이중성을 반복한다. 인공지능(AI) 기반 자율살상무기와 무인 드론이 전장의 풍경을 바꾸는 첨단 군사기술의 각축전 속에서, 세계적인 방산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과 효율이 결코 넘어서는 안 될 인간 양심과 규범의 한계는 어디인가"라는 오늘날의 질문은 결국 1899년 헤이그의 회의장과 고스란히 맞닿아 있다.

계산된 이익을 좇으면서도 도덕적 가치와 제도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1899년의 고투는, 냉혹한 현실의 파도 속에서 원칙과 양심의 무게를 가늠해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교훈으로 남는다. 우리는 두 개의 저울 중 어느 쪽을 힘 있게 딛고 서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