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에게 배우는 문제 정의와 사용자 경험(UX)의 본질
글쓰기 강의를 찾아다니고 논문 초록을 쓰느라 밤을 새우는 이들에게 답은 이미 600년 전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 다 나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소름 돋을 만큼 날카로운 '비즈니스 피치(Pitch)'이기도 하다.
일하다 보면 시스템이 사용자를 배신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세종의 시대도 그랬다.
“國之語音(국지어음)이 異乎中國(이호중국)하여 與文字(여문자)로 不相流通(불상유통)할새”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여서)
이 문장은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다. 글로벌 표준인 한자가 우리 로컬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플랫폼 불일치'를 정확히 짚어낸 냉철한 진단이다. 낡은 시스템을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사는 비효율. 여기서 혁신은 시작된다.
위대한 기획은 보고서 수치가 아니라 사람의 한숨에서 나온다.
“故(고)로 愚民(우민)이 有所欲言(유소욕언)하여도 而終不得伸其情者(이종부득신기정자)가 多矣(다의)라”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세종은 사용자가 겪는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심장으로 읽었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건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도구의 부재로 소외된 자들을 향한 기획자의 깊은 공감이다. 뜻을 펴지 못하는 답답함. 그 고통의 지점을 정확히 타격했기에 해결바카라도 명확할 수밖에 없다.
해결바카라은 비대할 필요가 없다. 본질에 가까울수록 간결하다.
“予(여)가 爲此憫然(위차민연)하여 新制二十八字(신제이십팔자)하노니” (내가 이를 가엽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구구절절한 변명은 없다. '가엽게 여김'이라는 명확한 동기(Value)가 '28자'라는 극강의 미니멀리즘을 탄생시킨 엔진이 됐다. 핵심은 시스템을 보수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 설계하는 파괴적 혁신이었다.
마지막은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지다.
“欲使人人(욕사인인)으로 易習(이습)하여 便於日用耳(편어일용이)니라”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거창한 명분이나 권위의 과시가 아니다. '쉬운 습득'과 '일상의 편의성'이라는 압도적인 실용 가치만이 남았다. 최고의 UX(사용자 경험)는 사용자를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스며드는 것이다.
600년 전의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 중언부언하는 수천 장의 기획서보다 훨씬 더 무겁고 날카롭게 본질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