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의 빈칸을 채워가는 일
편집자님이 나에게 처음 제안한 건, 1부에 담을 에피소드들의 제목을 다시 뽑아보는 일이었다. 그때 내가 써둔 글은 1부조차 3분의 1쯤 채웠을 뿐이었다. 제목을 늘어놓고 보니, 비어 있는 자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앞으로 이 칸들을 하나씩 메워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걱정될 법도 했는데, 이상하게 그보다 시작하는 설렘이 앞섰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온라인카지노에 써둔 글에는 바카라에 어울리는 제목을 새로 달고,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는 그 자리를 제목으로 먼저 잡아두었다. 채워진 칸과 비어 있는 칸이 목차 위에 나란히 늘어섰다. 처음엔 일주일은 걸리겠거니 싶어, 죄송하지만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조심스레 요청해 두었다.
그런데 웬걸.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머리가 평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날만큼은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겨두고 글에만 매달렸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한시라도 빨리 회신을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 만에 목차를 완성해, 곧장 다시 메일을 보냈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한숨을 돌릴 틈도 잠시, 이번엔 그 제목 하나하나에 살을 붙이는 숙제가 매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부의 첫 에피소드를 제목에 맞게 다시 써내려 갔다. 처음 쓴 글이라 성급했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방귀 뀐 이야기를 얼른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처럼, 나는 도입부부터 본문의 문을 벌컥 열고 직진했다. 이야기의 소재는 있었다. 13년을 일했으니, 적어도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한 내용은 내 기억 속 장면들을 꺼내 채워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첫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처음 쓸 때 미처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 너 좋아한다.” 돌직구로 고백하면 되는 줄 알았다. 독자는 나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나는 이미 독자와 결혼해 백년해로 하는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다.
설명적으로 시작했던 부분은 편집자님의 섬세한 피드백을 거치며 조금씩 달라졌다. 좀 더 실감 나는 장면으로, 조금 더 풍부한 에피소드로 바뀌어 갔다.
핑퐁, 핑퐁.
내가 고치고 나면 편집자님이 다시 봐주셨고, 피드백이 오면 다시 고치기를 반복했다. 수정 과정이 많을 거라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투고 때 겪었던 아픔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식은 죽, 아니, 뜨거운 죽. 그것도 많이 뜨거운 죽을 후후 불어가며 떠먹는 정도는 되었다. 무엇보다 편집자님이 나의 첫 독자가 되어 글을 봐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다.
물론, 피드백이 돌아오는 날이면 밤에는 잠을 설쳤고, 낮에는 온통 ‘어떻게 고치지’만 생각하며 끙끙 앓았다는 건, 우리만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