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가끔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지만, 솔직히 누구보다 재밌고 알콩달콩하게 산다.
요즘 두 분의 최애 낙은 국내 기차 패키지여행이다.
나이 들수록 운전해서 멀리 가는 것도 귀찮은데,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패키지가 그렇게 편하단다.
아침 7시까지 역에만 도착하면 그때부턴 신경 쓸 것도 하나 없고,
맛있는 점심까지 챙겨주니 가성비와 가심비를 모두 잡은 최고의 데이트 코스라는 것이다.
문제는 늘 그렇듯 ‘여행의 끝’에서 터졌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들은 지난 주말의 후일담은 한 편의 시트콤이었다.
아빠가 억울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니네 엄마가 날 버렸다."
"네? 무슨 소리예요?"
"아니, 일요일에 기차 여행 끝나고 용산역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타려던 참이었어. 늬엄마 성격 알잖냐. 막 성급하게 앞서 걷는 거. 빨리빨리 오라면서 사람 치여 가며 걸어가는데, 사람이 워낙 많아야지. 순간 놓쳐버렸지 뭐냐."
"그래서요?"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아니 글쎄 전철을 그냥 타버렸지 뭐야!"
옆에서 가만히 듣던 엄마가 기가 막히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반격에 나섰다.
"아이고, 참나! 내가 언제 버렸어요? 세월아 네월아 사람들 구경 다 하면서 오시길래 빨리 타라고 눈치를 줬지. 전철오길래 '빨리 타요!' 소리치고 난 겨우 올라탔는데, 문이 닫히더니 그냥 출발해 버리더라고. 내가 아무리 문 두드리면서 열어달라고 손을 흔들어도 열차가 냉정하게 떠나버렸어. 나도 당황했다 뭐!"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더 웃긴 건 뭔 줄 알아?"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내가 다음 역에서 내려서 다음 기차를 탔지. 근데 아빠가 어디 칸에 타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아니 아빠, 전철 칸마다 문 옆에 번호 붙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래서 아빠한테 전화해서 그 번호 좀 보라고 했지. 근데 아빠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안 찾는 건지 못 찾는 건지.."
"그래서 아빠를 어떻게 찾았는데요?"
"어떻게 하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가면서 아빠를 찾아 헤맸잖아! 그렇게 땀 흘리며 끝과 끝을 다 뒤져서 아빠를 드디어 찾아냈지 뭐야."
엄마는 혀를 쯧쯧 차면서도 은근히 웃음을 못 참았고, 아빠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넓은 전철 안을 묵묵히 걸어서 자신을 찾아낸 엄마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세상에, 결혼한 지 50년이 되었는데도 이 부부는 아직도 서로에게 이토록 다이내믹한 모험을 선물한다.
각자 스마트폰을 쥐고도 서로를 잃어버리고,
전철 안을 종횡무진 탐험해야 하는 이 노년의 해프닝.
비록 발품은 팔았을지라도,
끝에서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묘하게 피어올랐을 그 반가움과 풋풋한 안도감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나이 들어가도 이렇게 서로를 웃기고 울리며(?) 살 수 있다면, 그게 진짜 재밌는 인생 아닐까.
"다음부터는 손 좀 잡고 다니세요!"
"야~~"
그렇게 아침 풍경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