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정식

나의 위대한 구독자

by재인

“아, 오늘도 너무 힘들었어! 엄마, 그런데 아까 전화는 왜 이렇게 안 받았어?”


차 문을 열자마자 쏟아지는 투정.

훈련과 학업으로 촘촘하게 짜인 일상을 보내는 둘째 딸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일주일 내내 고대하던 귀한 만남이지만,

어렵게 마주한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뾰족한 가시부터 세우곤 한다.


“**(친구)이는 학원 다니는데 나도 다니면 안 돼? 걔가 나보다 공부 더 잘해질 것 같단 말이야.”

“엄마는 나에 대해 착각하는 게 너무 많아. 엄마는 나 잘 모르면서….”


평소 애교 많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왜 이토록 날카로운지....

하지만 아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그 뾰족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진다.

학교로 향하는 길,

아이는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모습으로 내 손을 잡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눈다.

그 극적인 변화가 신기하고도 아쉬워 나는 넌지시 물었다.


“이렇게 예쁘게 말할 수 있으면서, 아까는 왜 그렇게 짜증을 냈어?”


아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지극히 당연한 자신의 ‘사랑 이론’을 펼쳐 보였다.


“아, 그게 있잖아. 막상 나오면 엄마랑 시간이 아주 많은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게 돼. 그런데 이제 들어갈 때가 되면 헤어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엄마가 너무 소중해지면서 잘하고 싶어지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의 짜증 속에 숨겨진 진짜 마음이 보였다.

그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나를 향한 전적인 신뢰였다.


엄격한 규율과 긴장 속에 살아가던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팽팽하게 조여져 있던 끈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아직은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마음과

사춘기 아이처럼 시크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가장 안전한 울타리인 나에게 가장 뾰족한 방식으로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어쩌면 아이의 투정은

“엄마, 나 좀 봐줘. 나 지금 조금 힘들고, 무엇보다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해”

라고 말하는 서툰 고백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할 시간이 아주 길게 남았다는 무의식적인 안도감이 있었기에,

나를 투정조차 다 받아줄 수 있는 세상 유일한 안식처로 여겼던 것이다.

그걸 미처 몰라주고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니?”라며 덩달아 가시 돋친 말을 내뱉던 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그 사랑스러운 이론을 듣고 나니,

이제 아이의 투정이 귀엽고도 대견하게 느껴진다.

다음에 아이가 다시 날카로운 말로 차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나는 이제 웃으며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래, 우리 딸. 엄마랑 시간이 아주 많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놓이는구나. 마음껏 어리광 부리렴. 이 투정이 잦아들 무렵, 네가 나에게 건넬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인사를 나는 이미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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