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

byGoodmorning

"어머, 웬일이야. 여기서 다 만나고. 너무 오랜만이다. 아직도 00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 "


한때 친하게 지냈던 그녀와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거의 5년 만의 만남이라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어색함도 없이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짧은 커피타임을 가졌다.


"내가 점심시간이 끝나서 이제 들어가야 해. 방학하면 우리 꼭 다시 만나"


그녀는 현재 학교에서 방과 후 교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전화번호가 바뀌지는 않았는지 다시 확인한 후 꼭 보자는 다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오늘까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뒤돌아섰던 그녀로부터 전화는 없었다. 그리고 학교의 여름방학은 이번 주로 끝났다.

그녀의 제안이었기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줄곧 다시 만나자는 그녀의 말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해 지금은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황당하고 허무한 마음이 스치고는 한다. 그때 그녀가 보여 줬던 표정과 감정 묻은 말들이 선명히 떠오르며.


나는 빈말을 잘 못한다.

말한 것은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좀 있다. 그래서 내가 한 제안이 아닐지라도 상대가 한 말이 둘이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지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성격 탓에 얼마 전, 방송에서 이병헌 씨가 임시완 씨와 있었던 일화를 소개할 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내용은 이랬다. 임시완 씨와 영화촬영을 하며 친분이 좀 생겼고 집에 한번 놀러 오라고 했더니 며칠 후 정말 집 앞으로 와서 초인종을 눌렀다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도 약간 임시완 씨와 비슷한 성향이 있다. 누군가 "언제 한번 밥 먹자"라는 말을 하면 바로 스케줄을 체크해 보고 기다리고는 한다.


빈말을 구분할 줄 알고, 빈말로 한 제안은 세련된 슬롯인들이 하듯 스쳐 듣고 잊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어쩌면 빈말인지 진심 어린 제의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빈말을 하는 사람들의 연기력이 좋은 것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나는 빈말을 들으면 머리로는 들었던 제안이 잊히지 않고 마음은 항상 대기모드가 되니,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반갑지만은 않다.





대문그림;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