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만 되면 유독 기력이 달리는 남편을 위해 보약을 하러 한의원으로 향했다. 작년에 모 방송국의 혼자 사는 프로그램에 나온 적도 있는 곳이라 괜히 믿음도 가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여서 단골을 저버리고 정한 곳이다.
평일 낮시간이라 우려했던 만큼 사람은 없었으나 주인을 기다리는 한약 박스는 제법 쌓여 있었다.
잠시 기다린 후,
원장실에서 만난 40대로 보이는 여의사는 TV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친절한 말투로 차근차근 설명도 잘해주었고 세심하게 남편의 상태를 묻고 체크하며 동시에 키보드를 치며 기록했다.
'키보드 치는 손'
나는 유독 그녀의 손에 눈길이 갔다. 보드랍고 가는 긴 손가락은 아름답게 피아노 건반을 치듯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는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평생 부엌 일 하며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어"라고 자조 섞인 말을 입에 달고 있었던 엄마가 생각났다. 같은 40대였을 때의 엄마의 손은 고질병이었던 주부습진으로 인해 멀쩡한 날이 별로 없었다.
반면, 원장실의 그녀의 손은 주부임에도 하루의 대부분을 필기도구와 바카라, 침과 부황, 키보드만을 터치할 것이다(그녀가 기혼이라는 것은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다). 물 묻힐 일이 별로 없었을 것 같은 손.
잠시 내 손을 내려다보다 슬쩍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친모에게 버려지고 이모에게 거둬져 어릴 적부터 결혼 전까지 이모네 부엌살림만 한 엄마는 결혼 후에도 부엌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던 사람이다.
세상에 대해 알지 못했고 해외여행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시대를 살다 떠났다. 그런 엄마의 사고 안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은 단정한 유니폼 입고 시원한 건물에 앉아 손님을 맞는 은행원이었다. 자신의 장녀가 은행원이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쩌면 엄마는 꼭 은행원이 아니라 단순히 내 두 손이 설거지통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의 손도 부엌일에서 예상보다 아주 이른 나이에 벗어날 수 있었다.
44의 나이에 부엌일을 비롯한 모든 일상을 갑작스레 탁! 놓고 홀연히 생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난 엄마의 바람대로 은행원이 되지도 않았다.(아니 은행원을 꿈꿔본 적도 없다)
대신에 엄마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다.
젊은 나이에 유학을 다녀오고 몇 개의 회사에 다니다 주부가 되었고, 언제든 마음이 동(動)할 땐 부엌일에서 벗어나 혼자 해외여행을 떠난다.
한의원 원장처럼 내 손도 곱디곱지는 않지만 가전제품의 발달, 집 근처에 있는 미슐랭 식당 버금가는 반찬가게, 신속한 배달의 대중화 시대에서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나도 여자이고 주부이기에 삶이 끝날 때까지 부엌일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엄마에게는 숙명이었던 부엌일이 나에게는 선택사항의 범주에 들어있다.
나중에 엄마를 다시 만난다면 자신이 바랐던 장녀의 모습이 아니라고 또는 자신처럼 부엌일에만 얽매여 있었다고 안타까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이다.
덧붙임.
다시 발행버튼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의 예상보다 너무도 일찍 찾아왔고 이럴 거면 뭐 하러 쉰다는 글을 올렸나 싶기도 합니다. 보름 남짓 되는 시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사이의 줄다리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댓글로 무조건 써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주셨고 아마도 진심이 담긴 그 댓글의 힘이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까지 머문 듯합니다. 글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뻔뻔함은 조금 는 것 같습니다. 격려와 응원을 주신 모든 글방 동료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