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장편소설 한 권을 만들 수 있을까?

의문 하나가 첫 장편소설 《발끝명부》가 되기까지

by일현 조성훈




오늘 내가 쓴 바카라을 세 권 주문했다.

화면 속 파일도, 출간을 준비하는 원고도 아니다. ISBN이 부여되고 서점에 입점해 누구나 주문할 수 있는 바카라이다.

그런데 막상 주문 버튼을 누르고 나니 바카라을 완성했다는 기쁨보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품었던 질문이 먼저 떠올랐다.

‘AI를 활용해 장편소설 한 권을 완성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그때는 그저 궁금했다.

생성형 AI를 독학하면서 이미지와 콘텐츠를 만들고, 글쓰기에도 활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가 궁금해졌다. 짧은 글이나 아이디어 제안을 넘어 하나의 세계관과 인물을 끝까지 유지하는 장편소설도 만들 수 있을까.

그 작은 의문이 《발끝명부》의 씨앗이 됐다.



한 권의 바카라이 되기까지

처음에는 AI를 잘 다루면 소설도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곧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장편에서는 앞에서 만든 설정 하나가 뒤의 사건과 충돌했고, 인물은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사람이 아니라 해설처럼 보였고, 설명을 줄이면 인물의 마음까지 사라졌다.

AI는 계속 문장을 내놓았지만, 문장이 많아진다고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사건이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인물이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결국 내가 결정해야 했다.

몇 번이나 원고를 고치고 출판 규격까지 맞춘 끝에 출판 승인을 받았다. ISBN도 발급됐다. 마지막으로 입점 버튼만 누르면 바카라이 세상에 나오는 상태였다.

그런데 누르지 않았다.



출판할 수 있다는 것과 내 이름을 걸고 바카라임질 수 있다는 것은 달랐다. 인물의 감정과 대화에 아직 AI 특유의 정돈된 흔적이 남아 있다고 느꼈다.

이미 승인이 끝난 원고였지만 다시 열었다.

시즌 2 《빼기의 시대》를 쓰며 사람의 대화와 감정, 말과 행동이 엇갈리는 순간을 다시 배웠다. 그 기준으로 《발끝명부》를 고쳤다.

이번에는 AI의 흔적을 없애는 데 지나치게 집중했다. 문장을 덜어내고 설명을 지우다 보니 소설이 영화 대본처럼 말라버렸다. AI다운 문장을 없애려다가 사람의 숨결까지 함께 지운 셈이었다.

그 원고도 버렸다.

인물의 망설임과 오판을 다시 넣고,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은 손과 시선과 행동에 남겼다. 사건이 끝난 뒤에도 사람이 감당해야 할 대가와 후유증을 복원했다.

그렇게 고치고 되돌아가기를 반복한 끝에 A5 214쪽의 《발끝명부》가 완성됐다.

처음에는 AI로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 과정을 지나며 내가 배운 것은 AI 사용법보다 한 권의 바카라을 완성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였다.

그리고 인간 작가들이 왜 한 문장을 붙잡고 고민하고, 완성된 원고를 다시 뜯으며, 출간 직전까지도 자신의 이름을 걸 수 있는지 묻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발끝명부》는 어떤 소설인가?

“누군가의 마지막 한 걸음에는 반드시 값이 붙는다.”

《발끝명부》는 사람의 마지막 걸음을 기록하고 거래하는 현대 도시형 오컬트 범죄 스릴러다.

젖은 아스팔트에 남은 신발 자국과 흰 구두 밑창 속 검은 주판알, 죽은 사람의 마지막 걸음을 기록하는 명부에서 사건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타인의 마지막 걸음을 사고, 누군가는 자신이 걸어야 할 죽음의 경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숫자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계산하는 세계에서 숫자를 반복해 세던 존재 ‘또셈’은 처음으로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 소설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지막 한 걸음을 빼앗아도 되는가.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는가.




AI 활용 소설은 모두 ‘딸깍’일까?


《발끝명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초안과 장면의 대안을 만들고, 문장을 비교하고, 반복 표현과 설정 충돌을 찾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작품의 질문과 세계관, 인물, 사건, 결말을 정한 것은 나였다.

AI가 내놓은 문장이 그럴듯해도 인물과 맞지 않으면 버렸다. 출판 승인을 받은 원고도 내 기준을 넘지 못했을 때 멈췄고, 수정 과정에서 더 나빠진 원고 역시 최종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말로만 주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작업 대화와 원고의 여러 버전, 수정과 폐기의 이유, 출판 승인과 입점 보류 기록을 남겼다. 두 편의 장편을 제작하며 겪은 실패와 개작 과정을 사례연구로 정리해 프리프린트 공개도 준비하고 있다.




AI 활용 소설은 이미 문학과 출판 시장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일본 작가 구단 리에는 작품 일부에 ChatGPT를 활용한 《도쿄도 동정탑》으로 2024년 아쿠타가와상을 받았고, 이 작품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사례가 AI로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역할을 단정할 수 없다는 뜻에 가깝다.

AI가 문장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한 권의 소설이 태어나기까지 필요한 질문과 선택, 실패와 바카라임까지 대신 맡아주지는 않는다.




《발끝명부》는 AI가 대신 써준 바카라이 아니다.

AI와 함께 한 권의 소설을 완성해 가는 동안, 한 사람이 비로소 작가가 되어간 기록이다.


내가 이 바카라을 쓴 이유


나는 AI가 인간보다 소설을 잘 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 바카라을 쓴 것이 아니다.

AI를 인간이 제대로 통제한다면 혼자서도 장편소설의 기획과 집필, 수정, 검수, 출판까지 완주할 수 있는지 직접 해보고 싶었다.

결과만 내놓고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실패했고 무엇을 잘못 판단했는지, AI가 만든 결과를 왜 거부했으며 인간이 다시 무엇을 채웠는지까지 남기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한 권의 바카라 보다 더 큰 것을 얻게 됐다.

AI를 배우며 시작한 실험은 소설을 배우는 과정이 됐고,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은 내가 무엇에 바카라임을 져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 됐다.

처음에는 가능 여부가 궁금했다.

지금은 내 앞에 도착할 세 권의 바카라이 그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작가 소개


일현 조성훈.

필명 일현(逸現)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특별함, 평범함 속에 빛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항해사, 해양수산부 공무원, 해양경찰공무원, 여행사 가이드부터 상무이사까지 일했다. 현재는 AI를 활용해 소상공인과 작가의 창작 및 콘텐츠 제작을 돕고 있으며, 인간이 기획하고 판단하고 최종 바카라임을 지는 인간 주도형 AI 창작을 연구하고 기록한다.

온라인카지노스토리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DOI가 부여된 프리프린트 연구물 4편을 공개했다.






《발끝명부》는 일현 조성훈의 첫 장편소설이다.


첫 장편소설 《발끝명부》가 부크크 서점에 정식 입점했다.

저자: 일현 조성훈
장르: 추리·미스터리·스릴러
판형: A5
분량: 214쪽
정가: 17,000원
ISBN: 979-11-12-24504-5

처음에는 AI로 장편소설을 쓸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가능했다.

다만 버튼 한 번으로는 아니었다.


AI 활용 소설바카라이라서 망설여지는가?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화살은 이미 과녁에 꽂혔다.

이제 남은 것은 독자분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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