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선한 밤의 통영, 강구안
유난히 힘들었던 여름을 지나 곧이어 찾아온 백로(白露)가 반갑기 그지없다.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산바카라하기에 제격인 날씨다. 저녁 요가를 끝내고 짧은 산바카라을 하러 강구안으로 나선다.
요 며칠은 바닷물이 가득 찬 만조라 한껏 둥그레진 달 아래 해안도로 밑까지 들어온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사람들도 날씨가 마음에 들었는지 저마다 조깅을 하거나, 강아지를 산바카라시키거나,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강구안 한 바퀴를 돌아 강구안브릿지의 계단을 오른다.
어둠이 잦아든 강구안브릿지 한가운데에 서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다.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머리칼을 곱게 넘겨주며 이내 포근하게 온몸을 감싼다. 발밑에 펼쳐진 강구안의 풍경. 바다 위로 제각각의 빛을 낸 건물의 불빛들이 물결을 따라 조각조각 부서지며 잔잔하게 흘렀다. 다채로운 빛은 수면 위로 퍼져나가 나를 홀렸다.
그때 뒤편에서 나지막이 배의 엔진 소리가 다가와 어둠을 깨뜨렸다. 작은 배 한 척이 물살을 가르자 바다 위에 조용한 파동이 일었다. 멀어지는 배를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는 물결은, 마치 한 무리의 새떼가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퍼지며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나는 조용한 다리 위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바다의 짭조름한 냄새는 더욱 짙어지고, 조용한 파도 소리는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눈을 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부드러운 바닷바람의 감촉일까. 저마다 빛을 내는 반짝이는 물결의 색감일까, 바람에 밀려오는 바다 향기와 잔잔한 파도의 소리일까. 아마 이 모든 게 모여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
강구안 산바카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여전히 바람이 선선하다. 그렇게 통영의 밤이 짙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