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흘리며 마음을 비우는 일
유독 더운 여름이었다. 덥다는 말 말고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까지 통영의 여름은 8월이 넘어가는 일주일 정도만 버티면 그래도 살만했지만 그해는 달랐다. 6월부터 심상치 않더니 7월부터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연일 뉴스에서는 열사병 환자 소식이 들려오는, 어쩌면 동남아보다 더 뜨거운 여름이었다.
나는 솔직히 여름엔 걸어서 출근할 계획이 없었다. 얌전히 차 타고 출퇴근하고 최대한 햇빛을 피해서 하얀 피부를 유지하리라는 목표를 안고 일주일가량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늘 동료들과 잠시 산바카라을 했지만 소중한 피부를 위해 산바카라도 잠시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에어컨과 함께 여름을 느끼고 있으니 좋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 답답한 마음이 차올랐다.
'... 그래 어쩔 수 없어. 역시 난 걸어야 해..'
자차를 타고 다니니 하루에 걸음수가 고작해야 3000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다른 친구들은 어떨까 궁금해 슬쩍 물어봤다. 특히 사무직 친구들은 평소에도 거의 걸음수가 많지 않다고 했다. 답답하지 않냐라고 물었더니 왜 답답하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와 잠시 당황했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혹여나 내 말이 친구에게는 잔소리처럼 들릴까 급하게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넘겨버렸다.
다시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가려니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한 무장을 시작했다. 평소 출근 때는 핸드백을 들던 핸드백은 땀나고 더우면 혹시 내동댕이쳐버릴까 봐 귀여운 패턴의 가벼운 백팩으로 바꾸고, 피부를 지켜줄 팔토시를 끼고 동그란 챙이 있는 모자를 썼다. '이 정도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겠지?'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길가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산바카라하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지혜를 깊이 공감했다. 양산을 들면 다른 준비물을 생략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양산을 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오히려 팔과 어깨가 불편할 것 같아 나름대로 재고 따지며 길을 나섰다.
나의 출근길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동네 골목부터 서서히 시작해 큰 시내로 나갔다가, 높은 고개를 거쳐 정상을 찍으면, 마침내 나무그늘이 있는 내리막을 내려와 건물 안 시원한 에어컨밑으로 골인하는 코스다. 절정의 고개를 오를 때는 늘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걸 알면서도 '아, 정상까지 대체 언제 도착하지'라는 생각을 늘 한다. 결론은 항상 '뭐 어쩔 거야 그래도 가야지'로 끝나니 다행이긴 하나, 언제쯤 자연스럽게 이 오르막을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이 있다. 이성의 끈을 다잡으며 요가수련도 절정이 있고 나의 인생의 순간순간에도 절정이 있으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려 하지만 막상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객관적인 마음을 유지하기란 참 힘들다.
그럴 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생각은 '그래도 해야지', '왔으니 가야지', '그냥 하는 거야'하는 마음들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하면 당장 손에 잡히는 건 없을지라도 진짜로 무언가를 한 기분이다. 그 무언가가 쌓이고 쌓이면 나의 단단한 뿌리가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김을 이제는 안다. 나를 세우는 기초를 잘 다져놓는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땀 흘리며 그냥 걷는다. 계속되는 인생에서 파도가 치더라도, 비록 호들갑은 떨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은 담담히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나 자신이 고요해질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