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임금이 걱정했던 밥상 오늘 막국수집

임금

by마루

천 년 전 임금이 걱정했던 밥상 오늘 막국수집에서 만나다

원주 학성동 남경막국수에서 발견한 낡은 액자 하나


감자공주의 사진과 인생 이야기


사람은 때때로 뜻밖의 장소에서 역사를 만난다.


박물관도 아니고 오래된 사찰도 아니다. 그저 점심 한 끼 먹으러 들어간 동네 식당에서 말이다.


원주 학성동에 있는 남경막국수.


이날도 평소처럼 식사를 하러 들렀다. 그런데 식당 입구 쪽에서 낡은 한문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짙은 나무틀 안에 빼곡하게 적힌 한자들. 양옆에는 대나무 장식이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액자 아래쪽이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종이가 찢어지고 글씨 일부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누가 쓴 글일까.


무슨 뜻일까.


그리고 왜 이 글을 액자에 담아 식당에 걸어 두었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액자를 두 장 찍었다.


그때는 몰랐다.


막국수 한 그릇을 먹으러 왔다가 천 년이 넘는 역사를 만나게 될 줄은.


사진 두 장으로 시작된 작은 역사 탐험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한자는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다섯 줄에 걸쳐 쓰여 있었다.


일부는 대나무 잎에 가려져 있었고 아래쪽은 종이가 훼손되어 글자를 읽기 어려웠다.


요즘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인공지능에게 물어본다.


나 역시 사진을 보여주고 물었다.


이 한자 좀 풀어봐.


그런데 첫 번째 대답부터 틀렸다.


사자소학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확인하니 이번에는 조선 정조의 효심을 기리는 글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이상했다.


설명은 그럴듯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한 글자씩 다시 살펴보고 남아 있는 문장을 검색해 원문과 비교했다.


그렇게 찾아낸 이름이 있었다.


신바카라군비.


중국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비문이었다.


원래 이름은 황제순행좌신바카라군기성덕비다.


당나라 회창 3년인 서기 843년에 만들어진 비석의 글이다.


한림학사 최현이 글을 짓고 당나라의 유명한 서예가 유공권이 글씨를 썼다.


당나라 무종 황제의 덕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문이었다.


2026년을 기준으로 무려 1183년 전의 글이다.


물론 식당에 걸린 액자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천 년 전에 만들어진 비문의 일부를 후대의 누군가가 다시 붓으로 옮겨 쓴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액자였는데 이제는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천 년 전 임금은 왜 백성의 밥상을 걱정했을까


이 글은 황제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쓰였다.


그런데 원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유독 눈길이 머무는 대목이 있었다.


風雨小愆 虔心以申乎祈禱


비와 바람이 조금이라도 제때 오지 않으면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蟲螟未息 輟食以軫乎黎元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들의 피해가 그치지 않으면 식사마저 중단하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걱정한다는 의미다.


나는 이 부분을 여러 번 읽었다.


천 년 전에는 농사가 곧 백성의 생존이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지 않았고 해충이 들끓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굶주림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에게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 글은 황제를 칭송하기 위한 비문이다.


실제로 황제가 비가 오지 않을 때마다 기도하고 해충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식사를 중단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증명하는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당시 사람들이 훌륭한 임금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는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백성이 굶주리면 함께 걱정하고 농사가 잘못되면 마음을 쓰며 나라의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는 임금.


그것이 천 년 전에도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천 년 전의 왕과 오늘날의 대통령


이 대목에서 문득 오늘날의 대통령을 생각하게 되었다.


천 년 전에는 왕이 나라를 다스렸다.


왕의 권력은 세습되었고 백성들은 왕을 직접 선택할 수 없었다.


반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대통령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


왕과 대통령은 권력을 얻는 방식도 바카라임을 지는 제도도 전혀 다르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져도 지도자에게 기대하는 기본적인 역할에는 닮은 점이 있다.


바로 국민의 삶을 살피는 일이다.


천 년 전에는 가뭄과 해충으로 농사를 망치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오늘날에는 물가와 일자리 주거 문제 의료와 복지 재난과 안전 등 국민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가 훨씬 복잡해졌다.


옛날 임금이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며 백성의 굶주림을 걱정했다면 오늘날 대통령은 국민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정바카라과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물론 대통령이 국민의 모든 어려움을 혼자 해결할 수는 없다.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 여러 공공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국민의 삶을 바카라임 있게 살피는 일은 국가 지도자의 중요한 바카라무다.


천 년 전의 비문은 황제의 덕을 칭송하면서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을 강조했다.


오늘날에는 그 마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바카라과 결과가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임금의 덕을 비석에 새겼지만 오늘날 지도자의 평가는 국민의 삶과 역사 속에 남는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왕에게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훌륭한 덕목으로 칭송되었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에게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은 헌법과 제도에 따른 바카라임이다.


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지도자의 역할도 그렇게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글을 다시 붓으로 썼을까


다시 식당의 액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긴다.


천 년 전 당나라 황제를 칭송한 글을 누군가는 왜 다시 붓으로 썼을까.


그 답을 이해하려면 유공권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한다.


유공권은 당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다.


특히 반듯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해서체로 유명하다.


중국 서예에서는 유공권의 글씨를 오랫동안 중요한 본보기로 삼아 왔다.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옛 명필이 남긴 글씨를 보면서 한 획 한 획 따라 쓴다.


이것을 임서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글씨를 배우는 사람이 훌륭한 글씨를 견본으로 삼아 연습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때 선생님의 시범을 따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 유명한 작곡가의 곡을 연습하고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 옛 화가의 작품을 보며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을 배우는 사람도 유명 사진가의 작품을 보면서 빛과 구도 색감을 공부한다.


나 역시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사진가들의 작품을 참고할 때가 많다.


그 사진을 그대로 복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구도를 선택했는지 빛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배우기 위해서다.


서예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옛 명필의 글씨를 따라 쓰지만 오랜 시간 연습하면서 자신만의 필체를 만들어 간다.


좋은 본보기를 보고 배우는 것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실력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임서의 중요한 의미다.


액자 아래에 남겨진 한 사람의 이름


식당에서 찍은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액자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남아 있었다.


剛史 全逢春


강사 전봉춘으로 읽히는 서명이다.


사진 속 작품은 유공권의 신바카라군비에 나오는 문장을 옮겨 쓴 서예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전봉춘이라는 인물이 언제 이 글을 썼는지 어떤 경위로 남경막국수에 걸리게 되었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서예를 공부하며 쓴 작품이었을까.


누군가에게 선물한 작품이었을까.


아니면 식당 주인이 오래전부터 소중하게 간직해 온 액자였을까.


그 사연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가지다.


누군가는 천 년 전 유공권이 남긴 글씨를 본보기로 삼아 정성스럽게 붓을 들었고 그 글씨가 지금 원주 학성동의 식당 벽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는 새 종이 위에 또렷하게 적혀 있었을 글씨.


세월이 흐르면서 액자 아래쪽은 손상되었고 일부 글자는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원전을 찾아 대조하니 사라진 글자들의 의미까지 다시 읽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


사람은 누구나 본보기를 보며 배운다


나는 이번 액자를 조사하면서 본보기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다.


어릴 때는 부모의 행동을 보며 배우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보며 배운다.


슬롯에 나와서는 선배들의 경험을 통해 일을 익힌다.


그렇게 누군가의 모습을 본보기로 삼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본보기라고 해서 모든 것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점은 배우고 잘못된 점은 고치면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서예가가 옛 명필의 글씨를 따라 쓰면서도 결국 자신의 글씨를 만들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지도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훌륭한 통치자에게서 배울 것은 배우되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바카라임을 다해야 한다.


천 년 전 임금이 백성의 굶주림을 걱정했다는 글에서 오늘날의 지도자가 배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권위나 권력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까.


낡은 액자 하나가 남긴 생각


생각해 보면 참 묘한 인연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황제의 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비문.


그 글을 당대의 명필 유공권이 썼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누군가 다시 붓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작품이 오늘날 강원도 원주시 학성동의 막국수집 벽에 걸려 있다.


나는 그곳에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그저 식사 한 끼를 하러 들어갔을 뿐이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액자 하나가 천 년 전의 정치와 백성의 삶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오늘날 대통령의 역할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글씨를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인공지능도 여러 차례 잘못된 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틀린 부분을 다시 살펴보고 원문을 찾아 대조하면서 조금씩 사실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은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사진도 그렇다.


카메라에 담긴 장면이 언제나 모든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진 속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확인해야 비로소 하나의 기록이 완성된다.


나는 앞으로도 그렇게 사진을 찍고 싶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과 세월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사진사.


그런 사진사가 되고 싶다.


막국수 한 그릇과 천 년의 시간


다시 그날의 식당을 떠올려 본다.


입구에 놓인 대나무 장식.


짙은 나무틀에 담긴 낡은 한문 액자.


그리고 아래쪽이 손상되어 일부 글씨가 사라진 종이.


어쩌면 그 액자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수많은 손님이 그 앞을 지나갔을 테고 누군가는 한 번쯤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상하게 그 글씨가 궁금했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집에 돌아와 찾아보았다.


그 작은 호기심이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천 년 전 당나라에서는 백성이 굶주리는 것을 걱정하는 임금의 덕을 비석에 새겼다.


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국민의 삶을 바카라임지는 지도자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옛 명필의 글씨를 따라 쓰던 사람들의 노력은 지금도 무언가를 배우는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왕의 시대에서 국민이 주권자인 시대로 바뀌었고 붓과 종이의 시대에서 인공지능과 디지털카메라의 시대로 넘어왔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람은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고 좋은 본보기를 통해 배우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다.


천 년 전에는 임금이 백성의 밥상을 걱정한다는 글을 비석에 새겼다.


천 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 글을 막국수집에서 만났다.


참으로 우연하고도 재미있는 만남이었다.


역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동네 식당의 낡은 액자 속에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은 언제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감자공주는 카메라를 들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간다.


감자공주의 사진과 인생 이야기


촬영 장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학성동 남경막국수


원전 황제순행좌신바카라군기성덕비 통칭 신바카라군비


원전 제작 당나라 회창 3년 843년


글 최현


서예 유공권


사진 속 액자 서명 강사 전봉춘으로 판독


액자의 제작 시기와 식당에 걸리게 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10월 원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