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대개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결말이 어땠는지,
반전이 있었는지,
감독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해석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야기가 아니라 소리 하나만 남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신작에서 에밀리 블런트가 내뱉는 외계어가 그랬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뜻을 찾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그 소리는 내 귀를 지나 몸 어딘가에 먼저 닿았다.
낯설었고,
불안했고,
설명할 수 없었다.
나중에 제작 비하인드를 보니 더 흥미로웠다.
감독은 외계인의 언어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문장을 써주지도 않았다.
단지 리듬만 말했다.
"모스부호처럼."
배우는 그 리듬을 몸으로 따라 했고,
후반 작업에서 약간의 효과를 더했을 뿐이다.
외계인은 컴퓨터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에서 태어났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에밀리 블런트가 외계어보다 한국어가 더 어려웠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들렸다.
뜻도 없는 외계어가
왜 실제 언어보다 어려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외계어에는 정답이 없다.
한국어에는 정답이 있다.
외계어는 만들어내면 된다.
한국어는 맞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언어를 뜻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뜻보다 먼저 소리를 배운다.
아기는 문법을 배우지 않는다.
엄마의 억양을 먼저 기억한다.
웃음소리를 기억하고,
목소리의 높낮이를 기억한다.
뜻은 그다음이다.
우리가 처음 듣는 어느 부족의 언어도 그렇다.
무슨 말인지는 모른다.
그런데도 기쁨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이상하게 먼저 느껴진다.
외계어도 마찬가지다.
뜻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소리의 질감이 먼저 우리를 흔든다.
나는 오래 사진을 찍었다.
사진도 비슷하다.
사진에는 설명이 없다.
빛과 그림자만 있다.
그런데 사람은 거기서 이야기를 만든다.
소리도 그렇다.
뜻이 없어도 사람은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예고편 나온 뒤에도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리만은
아직도 귀 안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