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부이자 사상가, 사업가, 과학자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수성가의 대명사다. 가난한 양초 제조업자의 열일곱 형제 중 열다섯 번째로 태어나 초등학교조차 중퇴했던 소년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된 비결은 그의 자서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시간표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청년 시절, 나는 그의 자서전을 탐독하며 그가 세운 13가지 덕목을 바카라상 앞에 붙여 두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그 단어들은 내 삶을 단련할 빛나는 방편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본 내 모습은 프랭클린의 철저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천력은 늘 마음보다 한 걸음 뒤처졌고, 치밀함보다는 적당한 타협이 익숙했다. 그 결과 나는 ‘인간 시간표’ 대신, 그저 그런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노인이 되어 버렸다.
우리 슬롯에는 여전히 프랭클린의 후예들이 많다. 목표를 향해 자신을 매질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이들이다. TV에 등장하는 소위 ‘얼짱’, ‘몸짱’, ‘실력짱’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후광을 뿜어낸다. 그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얼마나 지독한 절제와 훈련이 숨어 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비단 외형적인 성공뿐만이 아니다. 병마와 싸우며 몸을 회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단련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 역시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자기 관리라는 무기를 들고 고군분투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경외심과 함께 묘한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나에게는 오랜 세월 동행해 온 불청객이 있다. 바로 당뇨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면역력은 떨어졌고, 이런저런 합병증이 일상의 질을 갉아먹는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이 프랭클린식 성실함과 치밀함이다. 식단, 운동, 수면… 지켜야 할 수칙이 산더미다. 특히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기 위해 밀가루 음식, 그중에서도 짜장면은 반드시 피해야 할 ‘금기’의 상단에 놓여 있다.
지난 1월 21일 담낭 절제 수술을 받은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짜장면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런데 엊그제, 무르익은 봄의 기운이 온 세상을 짙푸르게 물들이기 시작하자 불현듯 짜장면 생각이 간절해졌다. 따스한 햇살이 나들이를 부추기는 날이었다. 참다못해 아내에게 슬그머니 제안했다.
“여보, 오늘 날씨도 좋은데 오랜만에 짜장면 한 번 먹으면 안 될까?”
아내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최애 음식’을 향한 갈망을 읽은 아내의 묵인이자 자비였다. “짜장면 먹고 바로 수목원 가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괜찮을 거예요.” 아내의 그 말이 면죄부처럼 들렸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봉면에 있는 ‘구구반점’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 모두의 단골집! 내가 인정하는 가성비 최고의 음식점! 아내는 우동을, 나는 짜장면을 시켰다. 두 그릇 합쳐 1만 1천 원.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미안할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지만, 그 맛과 양은 가히 독보적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짜장면을 비비며 나는 감탄했다. 역시 최고의 맛이었다. 몇 개월 만에 느껴보는 이 금기된 즐거움이라니! 아내와 나는 연신 면발을 넘기며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 이 맛 앞에서는, 이 봄날의 정취 앞에서는 도저히 거부할 재간이 없다는 고백이었다.
식사 후, 우리는 지근거리에 있는 경남수목원으로 향했다. 신록이 우거진 길을 걸으며 내 몸속에서 일어날 혈당의 요동을 애써 외면했다. 혈당 스파이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것은 생리적 현상이지 기도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잘 안다. 나는 한 끼 식사의 즐거움에 취해 내 건강을 지키려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그 순간에는 “어쩔 수 없다”라며 내 행위를 정당화하고 자기위안을 삼았지만, 산바카라길 끝에서 밀려오는 후회는 또 어쩔 수가 없었다. 프랭클린처럼 철저한 사람들은 이런 유혹 앞에서 얼마나 단호했을까. 고작 짜장면 한 그릇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병고를 자초하는 내 모습이 못내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인간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완벽한 시간표를 살아가는 초인(超人)은 아니더라도, 소소한 기쁨에 원칙을 양보하고 다시 후회하며 걷는 이 모습 말이다. 그것이 ‘그냥 그런 노인’인 내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