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끝자락에 세워질 돌비석 하나를 상상해 본다. 그 위에 새겨질 문장은 한 사람의 생애를 관통하는 철학이자, 남겨진 이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편지이기도 하다. 유명인들의 묘비명은 대개 삶에 대한 통찰과 죽음을 대하는 위트를 담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조지 버나드 쇼의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냉소적인 유머는 이미 고전이 되었고, 최근 접한 희극인 전유성의 묘비명 후보 "웃지 마, 너도 곧 와"는 그다운 여유와 해학이 넘쳐나 무릎을 치게 만든다.
흔히 묘비명은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이들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쉽다. 평범한 내가 무슨 묘비명씩이나 준비하느냐고 손사래를 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손님이며, 내 삶의 매듭을 짓는 문장 하나를 미리 준비하는 것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경건한 작업이다.
내가 이 '미리 쓰는 묘비명'을 고민하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아니 어쩌면 “너무‘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내 가족들 때문이다. 요즘 우리 가족들은 저마다 중년이라는 가파른 고개를 넘느라 숨이 턱에 차 있다. 아들은 기업에서 부장 진급에 매진하고 있고, 사무관인 사위는 서기관 진급이라는 높은 벽을 오르기 위해 온 마음을 쏟고 있다. 딸과 며느리는 다자녀를 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한 치의 부족함도 없는 '완벽'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한다.
특히 대전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마음이 짠하다. 딸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텐데,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기술사 자격으로 용역을 수행하며 대학 강의까지 나간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일정이다. 그러니 건강이 온전할 리 없다. 늘 속이 더부룩하고 기력이 떨어져 감기 몸살을 달고 산다. 병원 검진에서도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은 분명 '마음의 병'이자 과도한 바카라임감이 만들어낸 '영혼의 몸살'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내가 대전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돌보고 딸의 숨통을 틔워주면 신기하게도 증세가 호전된다. 결국 범인은 '업무 과다'와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딸의 모습에서 나는 젊은 시절의 나를 본다. 나 역시 무언가 끊임없이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스스로를 보채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향해 달렸다.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조바심,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 삶의 엔진이었으나, 그 엔진은 결국 내 몸을 망가뜨렸다. 평생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지금의 내 처지와 저하된 삶의 질을 돌아보며, 나는 내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뼈아프게 고백한다. 딸이 나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부디 나처럼 아픈 뒤에야 멈추는 법을 배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나를 펜을 들게 했다.
이런 간절함 끝에 만난 문장이 바로 시인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이다. 낮에는 우체국 일용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술과 함께 글을 썼던 그 거친 인생의 주인공이 남긴 말은 단 두 마디였다. "Don’t Try(애쓰지 마라)." 이 짧은 문구에 담긴 함의는 게으름이나 포기가 아니다. 슬롯적 인정에 목매달지 말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자신을 소진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억지로 애써서 위대한 작가가 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삶 자체가 문학이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인생의 황혼에서 병마와 싸우며 깨달은 진리는 명료하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성공'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의 평온'이다. 슬롯적 지위를 얻고 돈을 벌기 위해 나를 '너무' 몰아세우는 것보다, '적당하게' 애쓰면서 가족과 웃음을 나누고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삶이 진짜 승리하는 삶이다.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진짜 실패는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리 내 묘비명을 정했다. "너무 애쓰지 마라.“
이 문장은 나 자신에게 주는 면죄부이자, 사랑하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에게 전하는 간곡한 당부다. 진급이 조금 늦어지면 어떠하며, 아이들에게 조금 부족한 엄마면 어떠한가. 박사 학위가 없어도, 기술사 수당이 없어도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빛나고 소중하다. 우리가 정말로 애써야 할 것은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사랑하고 더 깊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