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 택시 승강장의 밤 11시는 엔진 공회전 소리로 가득했다.
10월 끝자락의 대구는 낮에는 아직 여름인 척하다가 해가 지면 갑자기 정색을 했다.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서 은행 열매 냄새와 역 앞 어묵 포장마차의 간장 국물 냄새가 번갈아 밀려왔다.
개인택시 22년 차 만식은 운전석 등받이를 1칸 젖히고 핸들 위에 두 손을 포개 얹었다.
인조가죽 핸들 커버는 손바닥 땀을 22년 동안 먹어서 미끈하고 말랑했다.
룸미러에 매달린 소나무 방향제는 냄새가 다 빠져 이제는 소나무가 아니라 소나무를 그리워하는 냄새가 났다.
라디오에서는 교통방송 진행자가 신천대로 정체 소식을 읽고 있었다.
만식은 볼륨을 1칸 줄였다.
어차피 곧 다른 목소리가 들릴 테니까.
만식의 초능력은 이 하향 평준화 슬롯가 운수업 종사자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가장 쓸데없는 형벌이었다.
손님이 뒷좌석에 앉아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왼쪽 귀에서 내비게이션 음성이 하나 더 울렸다.
대시보드에 붙은 진짜 내비게이션과 똑같은 목소리였다.
차분하고 상냥하고 감정이 1톨도 없는 그 여자 목소리.
다른 점은 딱 하나였다.
왼쪽 귀의 그 여자는 손님이 진짜로 가고 싶은 곳을 말했다.
동대구역 가 주세요라고 말한 손님의 진짜 목적지가 동대구역이면 왼쪽 귀의 여자는 짧게 말했다.
"경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택시에 타서 거의 늘 가야 하는 곳을 말했다.
가고 싶은 곳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귀의 여자는 하루 종일 바빴다.
처음 능력이 생겼을 때 만식은 이비인후과에 갔다.
의사는 고막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이명이 내비게이션 말투로 들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학회에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만식은 진료비 1만 2천 원을 내고 나왔다.
귀마개를 껴 봤다.
소용없었다.
귀마개를 끼면 여자 목소리가 귀마개 안쪽에서 웅웅 울려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도 사 봤다.
여자 목소리는 노이즈가 아니라고 판단됐는지 캔슬링 되지 않았다.
19만 9천 원이 날아갔다.
능력이 생기고 첫 1달 동안 만식은 거의 미칠 뻔했다.
경북대 북문에서 탄 대학생이 말했다.
"학교요. 공대 9호관 앞에 내려 주세요."
왼쪽 귀의 여자가 말했다.
"200미터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목적지는 학교가 아니라 북문 PC방 2층 창가 자리입니다. 오늘 1교시 출석은 이미 포기했습니다."
범물동 아파트로 가자던 50대 아저씨도 있었다.
"전방에 집이 있습니다. 집에 가기 싫습니다. 경로를 찾을 수 없습니다. 아무 데나 1시간쯤 돌아 주십시오."
만식은 그날 그 아저씨를 태우고 수성못을 3바퀴 돌았다.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만식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터기만 띡 띡 소리를 내며 요금을 올렸다.
내리면서 아저씨가 말했다.
"기사님 길 잘 모르시네예."
만식은 대답 대신 거스름돈을 내밀었다.
최악은 신혼부부였다.
"시댁 가 주세요. 칠곡 3지구요."
남편이 말하자 왼쪽 귀에서 여자가 말했다.
"목적지는 시댁이 맞습니다. 다만 남편 기준입니다."
이어 아내 쪽 경로가 겹쳐 들렸다.
"목적지는 친정입니다. 반대 방향입니다. 지금 즉시 유턴하십시오."
2개의 경로가 동시에 왼쪽 귀를 두드렸다.
"좌회전입니다."
"유턴입니다."
"좌회전입니다."
"유턴하십시오. 유턴하십시오."
만식은 신천대로 한복판에서 깜빡이를 왼쪽으로 켰다가 오른쪽으로 켰다가 다시 왼쪽으로 켰다.
딸깍 딸깍 딸깍.
뒤차가 경적을 길게 울렸다.
뒷좌석의 부부는 서로 반대쪽 창으로 몸을 틀고 앉아 있었다.
인조가죽 시트가 양쪽에서 끼익 끼익 소리를 냈다.
뒷좌석에서는 말 1마디 나오지 않았는데 만식의 왼쪽 귀만 부부싸움 중이었다.
1달쯤 지나서 만식은 깨달았다.
이건 저주가 아니라 영업 비밀이었다.
어느 비 오는 금요일 서문시장에서 탄 할머니가 말했다.
"반월당 지하상가 앞에 내려 주소."
왼쪽 귀의 여자가 말했다.
"목적지는 반월당이 아닙니다. 대명동 딸네 집입니다. 손주가 감기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연락 없이 가면 딸이 싫어할까 봐 지하상가에서 1시간 망설이다가 그냥 집에 갈 예정입니다."
만식은 룸미러 쪽으로 귀를 살짝 기울였다.
할머니 무릎 위 검은 비닐봉지에서 생강 냄새와 대추 냄새가 났다.
배숙 재료였다.
"어머니. 반월당 말고 대명동으로 가까요."
뒷좌석에서 바스락거리던 비닐봉지 소리가 뚝 멈췄다.
"우째 알았노."
"감기에는 배숙이 최고 아입니꺼. 봉지에서 냄새가 나네예."
할머니는 한참 말이 없다가 작게 말했다.
"그래 가자 마. 대명동."
대명동 빌라 앞에서 할머니는 요금 1만 1천 원에 사과 3개를 얹어 줬다.
사과는 차가웠고 껍질이 매끈했다.
그날 밤 만식은 사과를 아삭 베어 물며 결심했다.
손님이 말하는 곳 말고 손님이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주자.
그리고 거기에 값을 매기자.
만식은 그 서비스에 이름을 붙였다.
진심 할증.
기본요금에 20퍼센트.
손님이 말한 목적지가 아니라 진짜 목적지로 모셔다드리는 대가였다.
물론 처음부터 대놓고 받지는 않았다.
일단 진짜 목적지로 데려다주고 손님이 놀라서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그때 조용히 말했다.
"원래 요금은 1만 4천 원인데예. 진심 할증 붙으면 1만 6천 8백 원입니더."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손님이 냈다.
자기가 진짜 가고 싶었던 곳에 내린 사람들은 지갑을 여는 손이 가벼웠다.
어떤 손님은 2만 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
어떤 손님은 내리면서 울었다.
어떤 손님은 내리자마자 다시 타서 원래 목적지로 가 달라고 했다.
진짜 가고 싶은 곳에 막상 도착하니 무서워졌다는 것이었다.
만식은 그 손님에게서 왕복 요금과 진심 할증과 변심 할증을 받았다.
변심 할증은 그날 그 자리에서 만들었다.
소문은 금방 났다.
대구 택시 기사 단톡방에 누군가 썼다.
[수성구에 사람 속을 아는 기사가 있다 카더라]
맘카페에도 글이 올라왔다.
[남편이 회사 간다고 나갔는데 그 택시 타고 낚시터에서 내렸대요 기사님 정체가 뭔가요]
만식은 그 글을 전해 듣고 앞으로는 가정의 평화도 좀 고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그날 밤 11시 40분.
범어네거리 고깃집 골목에서 손님 3명이 탔다.
뒷좌석 문이 열리자 돼지갈비 양념 냄새와 소주 냄새와 숯 연기 냄새가 한 덩어리로 밀려 들어왔다.
양복 3벌이 차례로 시트에 눌리며 인조가죽이 끼익 소리를 냈다.
가장 나이 든 목소리가 조수석 등받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기사님 범어동 경남타운 갑시다. 우리 다 그 근처 삽니더."
부장이었다.
목소리에 직급이 묻어 있었다.
만식이 미터기를 눌렀다.
띡.
왼쪽 귀에서 여자가 숨을 고르듯 잠깐 멈췄다가 말하기 시작했다.
"경로가 3개 탐색되었습니다."
만식은 핸들을 꽉 쥐었다.
"1번 손님. 오른쪽 창가. 목적지는 노래방입니다. 2차를 가고 싶습니다. 아무도 2차 가자는 말을 안 해서 서운합니다."
"2번 손님. 가운데. 목적지는 집입니다. 제발 집입니다. 내일 아침 7시 회의 자료가 아직 3장 남았습니다. 아내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4통 와 있습니다."
여자는 잠깐 쉬었다.
"3번 손님. 왼쪽 창가. 목적지는 부장님이 없는 곳입니다."
만식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왼쪽 귀를 후볐다.
왼쪽 창가에 앉은 사람이 부장이었다.
부장의 진짜 목적지가 부장님이 없는 곳이라니.
여자가 친절하게 덧붙였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3번 손님의 목적지는 자기 자신이 부장이 아닌 곳입니다. 아무도 나를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곳입니다. 23년째 경로를 찾지 못했습니다."
차가 범어네거리 신호에 걸렸다.
틱 틱 틱.
깜빡이 소리만 차 안을 채웠다.
가운데 앉은 대리가 휴대폰 자판을 몰래 두드리는 손톱 소리가 났다.
오른쪽 창가의 과장이 혼잣말처럼 흥얼거렸다.
트로트였다.
2차에 가고 싶은 사람의 흥얼거림이었다.
부장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숨소리만 길게 났다.
[감각 사진]
돼지갈비 양념과 소주와 숯 연기 냄새가 한 덩어리로 엉긴 좁은 뒷좌석에서 몰래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는 손톱 소리와 2차를 바라는 트로트 흥얼거림과 23년 동안 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의 긴 숨소리가 깜빡이의 틱 틱 소리 위에 3겹으로 포개지는 미지근하고 비좁은 밤.
만식은 계산했다.
손님 3명.
진짜 목적지 3개.
진심 할증 20퍼센트씩 3번.
어느 쪽으로 가든 2명은 서운해하고 1명만 할증을 낼 것이다.
장사꾼의 계산으로는 셋 다 만족시키는 경로가 필요했다.
신호가 바뀌었다.
만식은 경남타운 쪽이 아니라 반대편 골목으로 핸들을 꺾었다.
"기사님 길 이쪽 아인데예."
가운데 대리가 다급하게 말했다.
"압니더. 잠깐만 들렀다 가입시더."
만식이 차를 세운 곳은 범어동 뒷골목의 24시간 해장국집 앞이었다.
창문을 내리자마자 선지 국물 끓는 냄새와 깍두기 국물 냄새가 훅 들어왔다.
"여기서 국밥 한 그릇씩 하이소. 제가 쏩니더. 오늘 기사가 손님이 좀 땡기네예."
뒷좌석이 조용해졌다.
과장이 먼저 웃었다.
"아이 기사님 이기 2차네."
대리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소리가 났다.
"저 회의 자료가 아직."
만식이 말을 잘랐다.
"국밥은 15분이면 묵습니더. 그라고 회의 자료 3장 남은 거 국밥 묵고 쓰면 2장으로 줄어듭니더. 배가 불러야 머리가 돌아가는 기라."
대리가 숨을 헉 들이켰다.
"3장 남은 거 우째 아셨어예."
"택시 기사 하다 보면 이것저것 눈치가 생깁니더."
부장이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렸다.
내리면서 만식에게 물었다.
"기사님은 와 안 들어오십니꺼."
"저는 운전해야지예. 들어가이소 손님."
부장이 문을 잡은 채 잠깐 멈칫했다.
"손님이라 카네."
"예. 이 차 안에서는 다 손님입니더."
부장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해장국집 문을 밀고 들어갔다.
유리문에 달린 종이 딸랑 울렸다.
15분 뒤 세 사람이 다시 차에 탔을 때 뒷좌석에서는 선지 냄새와 함께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과장이 부장에게 형님이라고 불렀다가 혼났다.
부장이 혼내면서 웃었다.
대리는 국밥 국물이 묻은 손가락으로 휴대폰에 회의 자료를 두드렸다.
왼쪽 귀의 여자가 말했다.
"경로가 1개로 통합되었습니다. 목적지는 경남타운입니다. 경로를 유지합니다."
만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경남타운 앞에서 미터기가 1만 3천 2백 원을 찍었다.
"요금에 국밥값 3만 3천 원에 진심 할증 3명분 해서예."
"국밥 쏜다 카셨잖아예."
"쏘는 건 제가 쏘고 계산은 진심 할증으로 하는 기지예."
부장이 지갑을 열며 껄껄 웃었다.
"기사님 장사 잘하시네."
5만 원권 한 장이 만식의 손바닥에 놓였다.
종이가 아직 따뜻했다.
부장의 양복 안주머니 온도였다.
새벽 2시.
만식은 칠성시장 근처 기사식당에서 동료 기사들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석쇠에서 돼지불백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30년 된 선풍기가 덜덜 도는 소리가 섞였다.
기사 박 씨가 소주병을 기울였다.
"만식이 니 요새 그 진심 할증인가 뭔가로 쏠쏠하다 카데."
"쏠쏠하긴. 귀가 아파 죽겠다."
"한잔 해라. 오늘은 차 대리 부르고."
만식은 망설이다가 잔을 받았다.
22년 동안 일 끝나고 술 한잔한 날이 손에 꼽았다.
오늘은 지갑 안의 5만 원권이 아직 따뜻한 것 같은 날이었다.
소주 3잔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뱃속이 뜨끈해졌다.
새벽 3시 반에 만식은 대리운전을 불렀다.
자기 택시의 대리운전이었다.
택시 기사가 자기 택시 뒷좌석에 앉는 건 22년 만에 처음이었다.
대리기사는 20대 중반으로 들리는 청년이었다.
운동화 밑창이 아스팔트를 끄는 소리가 났고 패딩에서 담배 냄새가 아니라 박하사탕 냄새가 났다.
청년이 운전석에 앉으며 시트를 앞으로 당겼다.
드르륵.
22년 동안 만식의 엉덩이 모양으로 굳은 시트가 남의 체중에 눌리며 낯선 소리를 냈다.
"아재 어디로 모실까예."
만식은 뒷좌석에 몸을 묻으며 말했다.
"산격동. 집."
그 순간이었다.
왼쪽 귀에서 그 여자 목소리가 울렸다.
22년 택시 인생 처음으로 그 목소리가 만식 자신에 대해 말했다.
"목적지는 집이 아닙니다."
만식은 등받이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집에 가면 아내가 술 냄새 난다고 할 것입니다. 집에 가면 내일 아침 6시에 다시 핸들을 잡아야 합니다. 목적지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뜨끈한 곳입니다. 아무도 목적지를 말하지 않는 곳입니다."
만식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막았다.
그때 운전석의 청년이 시동을 걸며 말했다.
"아재. 산격동 아이지예."
만식의 손이 귀에서 툭 떨어졌다.
"뭐라꼬."
"제가 좀 그런 게 있어가지고예. 술 취한 손님만 해당되는데예. 손님이 진짜 가고 싶은 데가 우리 할매 목소리로 들립니더."
청년이 깜빡이를 켰다.
딸깍.
"우리 할매가 방금 그카네예. 이 양반 집에 가면 안 된다꼬. 뜨신 데 가서 등 지지야 된다꼬."
만식은 할 말을 잃었다.
하향 평준화 슬롯는 공평했다.
이상한 능력을 가진 게 만식 하나가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늘 만식보다 조금 더 싼 버전이 있었다.
청년이 모는 택시는 산격동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20분 뒤 차가 멈춘 곳은 북구의 24시간 찜질방 앞이었다.
문틈으로 맥반석 계란 냄새와 식혜 냄새와 뜨거운 황토 냄새가 새어 나왔다.
만식의 왼쪽 귀에서 여자가 상냥하게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청년이 휴대폰 대리 앱을 톡톡 두드렸다.
"대리비 2만 원에예."
"오야."
"진심 할증 20퍼센트 붙어서 2만 4천 원입니더."
만식은 뒷좌석에서 굳었다.
"니 그거 어디서 들었노."
"기사님들 단톡방에 소문 다 났던데예. 수성구에 진심 할증 받는 택시 있다꼬. 좋은 장사 같아서 저도 쫌 따라 해 봤심더."
만식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갑을 열었다.
5만 원권은 이제 따뜻하지 않았다.
청년이 거스름돈 2만 6천 원을 세어 주며 덧붙였다.
"아재. 그라고 이건 서비스인데예. 우리 할매가 한마디 더 하네예."
"뭐라는데."
"아침에 들어갈 때 집 앞 빵집에서 단팥빵 하나 사 가라꼬. 아지매가 그거 좋아한다꼬예."
만식은 그것까지는 몰랐다.
22년을 같이 산 사람이 단팥빵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자기 차에 탄 손님 수천 명의 진짜 목적지는 다 알면서 정작 자기 집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단팥빵 정보는 할증이 붙지 않았다.
그게 더 비참했다.
새벽 4시.
만식은 찜질방 황토방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등 밑에서 뜨거운 황토가 22년 동안 굳은 허리를 천천히 녹였다.
옆에서 누군가 코를 골았다.
멀리서 식혜 캔 따는 소리가 칙 하고 났다.
아무도 만식에게 어디로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왼쪽 귀가 조용했다.
22년 만에 처음 듣는 고요였다.
만식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손님들이 진짜 가고 싶은 곳에 내려 주면서 할증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자기가 진짜 가고 싶은 곳에 와 보니 그건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뜨거운 바닥과 남의 코 고는 소리와 식혜 냄새.
이 정도에 2만 4천 원이면 비싼 건지 싼 건지 만식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제는 알았다.
그동안 자기 차에서 진심 할증을 낸 손님들이 왜 그렇게 순순히 지갑을 열었는지.
진짜 가고 싶은 곳에 도착한 사람은 돈 계산이 느려진다.
장사꾼은 그 느려진 틈에 값을 매긴다.
오늘 밤 그 장사꾼은 대리기사 청년이었고 손님은 만식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아내였다.
만식은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를 보냈다.
[기사식당에서 박 씨랑 있다. 아침에 들어갈게]
거짓말이었다.
보내고 나서 만식은 조금 웃었다.
손님들이 택시에 타서 왜 가고 싶은 곳 말고 가야 하는 곳을 말하는지 22년 만에 처음 알 것 같았다.
진짜 목적지는 원래 입 밖에 내는 게 아니었다.
말하는 순간 누군가 거기에 할증을 붙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가장 쓸데없는 초능력을 가진 택시 기사는 그날 새벽 처음으로 손님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요금표대로 정확하게 바가지를 썼다.
황토방 천장에서 환풍기가 웅웅 돌았다.
그 소리가 꼭 경로를 유지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만식은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단팥빵을 2개 사 갈 생각이었다.
하나는 아내 것이고 하나는 진심 할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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