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bigant Fougère Royale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두 녀석이 서로를 찾았다.
탱고가 하네스를 벗자마자 흙을 차고 달려 나갔고 텃밭 쪽에서 보우가 짧게 짖으며 맞받았다. 둘은 동갑이다. 발톱이 마른 흙을 긁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마당을 한 바퀴 돌더니 텃밭 고랑 쪽으로 멀어졌다.
10월 하순의 창녕은 대구보다 한 겹 더 차다. 달창저수지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물 냄새가 실려 있었고 그 사이로 어디선가 마른 풀을 태우는 냄새가 섞여 왔다. 근처 논은 벌써 추수를 끝냈다. 처가에 올 때마다 계절이 대구보다 반 박자 먼저 와 있다.
장모님이 부엌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봄에 꺾어서 삶고 말려 둔 고사리라고 했다. 봉지를 받아 드니 무게가 거의 없었다. 손끝으로 눌러 보니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났다. 코를 대 봤다.
냄새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마른 풀과 먼지 사이 어딘가의 희미한 기척만 있었다. 장모님은 고사리는 원래 냄새가 없고 물에 불려서 삶아야 그제야 흙냄새가 좀 난다고 했다.
오늘 면담 상대는 그 냄새 없는 식물의 이름을 단 향수다. 28호와 29호 끝에서 두 번 미뤄 둔 이름이기도 하다.
"고사리에게 냄새가 있었다면 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것을 그렸어요."
우비강 푸제르 로얄. 우비강은 1775년 파리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에 문을 연 향수 집안이다. 1880년에 조향사 폴 파케가 공동 소유주로 들어왔고 그가 이 향수를 만들었다. 향조노트는 파케가 신이 고사리에게 향을 주었다면 푸제르 로얄 같은 향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나는 이 문장이 좋다. 조향사가 자연을 베꼈다고 말하지 않고 자연이 하지 않은 일을 대신했다고 말한다. 가정법으로 쓴 창작 선언이다.
그런데 이 향수의 생년부터 흔들린다.
대부분의 기록은 1882년이라고 적는다. 그런데 파케를 다룬 어떤 기록은 1884년이라고 적는다. 단종 시기도 갈린다. 향조노트와 여러 자료는 1950년대에 사라졌다고 하고 다른 자료는 1960년대 후반까지 팔렸다고 한다. 태어난 해와 떠난 해가 모두 두 숫자 사이에 걸쳐 있다.
"제 생년을 물으시면 저도 두 숫자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목록을 만드는 사람에게 이런 일은 낯설지 않다. 오래된 자료일수록 연도가 흔들린다. 그래서 서지 기술에는 확실하지 않은 연도를 적는 방식이 따로 있다. 대괄호를 치고 물음표를 붙인다. 1882년인 것 같지만 확증이 없다면 대괄호 안에 1882 그리고 물음표를 넣는다. 두 해 가운데 하나라면 두 숫자를 함께 적는다.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모르는 만큼 정확하게 적는 기술이다.
잘 모르는 것을 확실한 것처럼 적으면 그 오류가 다음 목록으로 그대로 옮겨 간다. 그래서 물음표 하나가 생각보다 큰일을 한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여기는 아직 다 확인되지 않았다고 알려 주는 표지다.
그러고 보니 정정할 것이 하나 생겼다. 28호에서 나는 푸제르 로얄이 지키보다 7년 먼저 나왔다고 썼다. 1884년 설을 따르면 5년이 된다. 지금 고쳐 적자면 이렇다. 지키보다 5년에서 7년 먼저. 정오표는 부끄러운 문서가 아니다. 목록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 향수의 뼈대는 쿠마린이다. 1868년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이 처음 합성한 분자다. 통카빈에도 있고 스위트클로버에도 있고 계피에도 있다. 28호에서 약령시를 걸을 때 맡았던 계피의 매운 단내 속에도 이 분자가 숨어 있었던 셈이다. 어떤 풀은 마르면서 이 분자를 내놓는데 그래서 쿠마린은 흔히 갓 벤 건초 냄새로 설명된다. 29호에서 떼 누아의 바닥에 깔린 건초의 결이 이 분자를 닮았다고 썼다. 오늘은 그 건초의 원적지에 왔다.
파케는 이 쿠마린에 라벤더와 오크모스를 맞붙였다. 향조노트의 정리를 빌리면 라벤더가 앞에 서고 오크모스와 쿠마린이 뒤를 받친다. 이 세 겹이 너무 인기를 끌어서 그 뒤로 수많은 향수가 같은 구조를 따랐고 결국 이 구조 자체가 하나의 계열이 됐다. 그 계열의 이름이 푸제르다.
작품 하나의 제목이 장르의 이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작품은 서가에서 빠졌다. 계열은 140년 넘게 살아남았고 원작은 반세기 넘게 비어 있었다.
"제 이름은 저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저는 한동안 제 이름 안에 없었어요."
이름 이야기를 하나 덧붙이자. 향조노트는 푸제르를 고사리로 옮겼다. 프랑스어 푸제르는 고사리 하나가 아니라 양치식물 전반을 가리킨다. 우리가 나물로 먹는 고사리는 그 넓은 집안의 한 갈래다. 용어집으로 치면 위 칸의 말을 아래 칸의 말로 옮긴 셈이다. 다만 이번 오역은 운이 좋다. 우리말에서 냄새 없는 양치식물을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게 하는 말이 고사리이기 때문이다. 손에 든 마른 고사리 봉지가 그 증거였다.
지금 매장에 있는 푸제르 로얄은 2010년에 다시 나온 것이다. 그 전에 1988년에도 한 번 되살리려 했지만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10년판은 조향사 로드리고 플로레스 루가 맡았고 로자 도브가 방향을 잡았다. 우비강은 이 판을 두고 다시 손보고 되살리고 현대화했다고 소개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1882년의 공식대로 만든 향을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 있을까. 한 리뷰어는 이 향수가 그 뒤로도 여러 번 고쳐 짜였으니 처음 향을 맡아 본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썼다. 그는 1950년대 병을 갖고 있었는데 새 판에서 그 병의 가볍고 산뜻한 결이 남아 있긴 하지만 더 무겁고 크림 같은 층 아래 묻혀 있다고 했다.
"저는 제 원본을 맡아 본 적이 없습니다. 원본을 기억하는 친척들에게 물어서 저를 다시 짰을 뿐이에요."
이 말을 들으니 집일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라져서 전해지지 않는 바카라을 일실본이라고 부른다. 옛 학자들은 그런 바카라을 되살리려고 다른 바카라들을 뒤졌다. 사라진 바카라을 인용한 문장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인용문을 한 줄씩 모아 원래 바카라의 모양을 다시 짜는 일을 집일이라고 하고 그렇게 만든 바카라을 집일본이라고 한다.
푸제르 로얄의 처지가 꼭 그렇다. 원본은 사라졌지만 원본을 인용한 향수들이 140년 동안 쌓였다. 라벤더와 오크모스와 쿠마린의 구조는 후대의 이발소 향수와 남성용 스킨 냄새 속에 조각조각 남아 있었다. 2010년판은 그 인용문들을 모아 다시 짠 집일본에 가깝다. 다만 집일본에는 한계가 있다. 인용된 문장만 돌아오고 아무도 인용하지 않은 문장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짜는 사람의 판단이 어쩔 수 없이 섞인다.
2010년판을 손목에 뿌렸다. 첫 향은 허브가 섞인 베르가못이다. 곧 라벤더가 올라온다. 28호의 지키를 떠올리게 하는 시작이라는 평이 많은데 실제로 그랬다. 그 뒤로 카모마일과 제라늄과 장미가 지나가고 카네이션과 계피가 살짝 맵게 찌른다. 시간이 지나면 오크모스와 패츌리와 통카빈이 바닥에 깔린다. 이끼 낀 나무껍질 같은 쌉쌀함과 지푸라기 같은 단맛이 손목 위에서 한 덩어리로 뭉친다. 어느 재료 하나가 튀어나오지 않고 매끈하게 섞여 있다.
보보가 손목을 끌어다 맡더니 목욕탕 앞 이발소 냄새라고 했다. 의자 가죽과 면도 거품과 수건 데우는 냄새가 한데 섞인 그런 냄새. 향조노트에도 서양에서는 이 계열을 바버숍 향수라고 부른다고 적혀 있다. 그런데 보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갔다. 냄새 없는 고사리를 그렸다는 향수가 결국 이발소를 그리게 된 것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려던 것은 숲이었는데 사람들이 그 향을 너무 많이 써서 그 향이 쓰인 장소가 대상이 됐다고. 노래가 가사 속 사연보다 그 노래가 흘러나오던 가게로 기억되는 것과 같다고.
맞는 말이었다. 오래 읽힌 바카라은 내용보다 그 바카라을 읽던 자리로 기억될 때가 있다.
저녁 무렵 장모님이 불려 둔 고사리를 삶기 시작했다. 냄비에서 김이 오르자 그제야 흙냄새가 났다. 축축하고 묵직하고 조금 쌉쌀한 냄새. 손목의 향과는 전혀 달랐다. 진짜 고사리는 물을 만나야 겨우 냄새를 내고 고사리를 그린 향수는 처음부터 건초와 이끼의 냄새로 말한다. 신이 주지 않은 냄새를 사람이 대신 지어 주었는데 그 지어 준 냄새가 고사리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고사리답게 들린다.
탱고와 보우가 부엌 문간으로 몰려왔다. 냄비 쪽으로 코를 들었다가 내 손목 쪽으로 옮겼다가 다시 냄비로 돌아갔다. 둘 다 결국 냄비 앞에 엎드렸다. 녀석들에게는 그린 고사리보다 삶는 고사리가 훨씬 설득력 있는 모양이다.
"저를 고사리라고 믿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고사리에게 냄새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한 번 상상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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