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의 아키텍처

by김경훈

복지관 강의실에 12명이 앉아 있었다.


성인 장애인 대상 정보 리터러시 교육이었고 나는 두 시간짜리 강의를 맡았다.

시각장애가 있는 분이 다섯 명 지체장애가 여섯 명 청각장애가 한 명이었다고 들었다.


강의실은 소리가 좀 먹는 곳이었다.

카펫이 깔려 있고 천장이 낮아서 반사음이 적었다.


그래서 반응을 읽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끄덕이는지 딴생각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이럴 때 나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답이 돌아와야 그 방의 온도를 알 수 있으니까.


첫 질문은 이렇게 했다.


인공지능 써 보신 분 계신가요.


거의 다 손을 들었다고 옆에서 알려 줬다.

목소리로도 알 수 있었다. 네 하는 대답이 여기저기서 겹쳤다.


두 번째 질문을 했다.


그 인공지능이 틀린 답을 준 적 있으신가요.


조용해졌다.


이것은 그 침묵에 관한 기록이다.





확인할 수 없다



한 분이 먼저 말했다.


"틀렸는지 어떻게 알아요."


농담처럼 나온 말이었는데 강의실이 잠깐 웃었고

나는 웃지 못했다.


그 문장이 이 강의의 주제였기 때문이다.


정보 리터러시의 핵심은 오래전부터 하나였다.

출처를 확인하는 것.


어떤 정보를 받으면 그게 어디서 왔는지 보고

원문을 찾아보고

다른 자료와 비교한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가르친다.


그런데 이 절차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원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인공지능이 어떤 답을 주고 출처를 세 개 달아 준다고 하자.

그중 두 개가 이미지로 스캔된 보고서이고

하나는 화면 낭독기와 잘 맞지 않는 사이트라면

나는 그 세 개를 다 못 연다.


그러면 나에게 남는 건 답변뿐이다.


검증할 수 없는 정보는 믿거나 안 믿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사람은 대체로 믿는 쪽을 고른다. 그게 편하니까.


그러니까 접근성이 부족한 환경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의존은 편리함에서 오는 게 아니다.

피로에서 온다.


원문을 열어 보려고 시도했다가 안 되고

다른 형식으로 요청했다가 답이 없고

그러다 결국 답변만 쓰게 되는 과정을 몇 번 겪으면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답변만 쓴다.


이 과정을 나는 여러 번 지나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씩 게을러졌다고 스스로를 탓했다.


그게 게으름이 아니라는 걸 아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의존이라는 말



이 대목에서 흔히 나오는 조언이 있다.

인공지능을 맹신하지 말고 반드시 교차 확인하라는 것.


맞는 말이고 나도 강의에서 그렇게 말한다.


다만 이 조언은 교차 확인이 가능한 사람을 전제로 한다.


같은 조언을 같은 강의실에서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실천 가능한 지침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킬 수 없는 규범이 된다.


그리고 지킬 수 없는 규범은 사람을 죄바카라감만 남기고 떠난다.


나는 이걸 강의를 몇 번 해 보고 나서야 알았다.


리터러시 교육은 대체로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설계된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출처를 확인하고 편향을 의심하라고 가르친다.


그 방향이 틀린 건 아니다.


다만 역량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비판적으로 생각해도 원문이 안 열리면 확인이 안 된다.


이건 개인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자료 환경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리터러시는 접근성 위에서만 작동한다.


접근성이 없는 곳에서 리터러시를 요구하는 건

사다리를 치우고 올라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비슷하다.


이건 리터러시 교육을 하지 말자는 뜻이 전혀 아니다.


나는 이 분야를 연구하고 강의도 계속 한다.

교육으로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도 안다.


다만 교육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정확히 알아야

그 바깥의 문제를 교육 탓으로 돌리지 않게 된다.


교육을 많이 했는데도 격차가 안 줄었다는 평가가 나오면

대체로 다음 해 예산이 줄어든다.


정작 줄여야 할 건 자료의 장벽인데

줄어드는 건 교육 예산이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지금 배우는 것



현재 국내 장애인 대상 디지털 교육의 상당수는 사용법 중심이다.


스마트폰 기본 조작.

인터넷 검색.

공공 앱 설치와 이용.


이런 교육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실제로 이 교육으로 생활이 달라지는 분들이 많고 현장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배움터와 장애인 정보화교육 사업이 그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 왔다.


문제는 그 위층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관련 연구는 장애인의 디지털 격차가

기기 보유 여부가 아니라 활용 역량과 교육 기회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립특수교육원 쪽 연구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온다.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에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는 있는데

생성형 인공지능 같은 최신 기술 활용 교육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


기기는 있고 교육이 얇다.

그리고 그 얇은 교육마저 대체로 조작법에 머문다.


주목받는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장애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공지능과 코딩을 가르치는 사업들이 운영되고 있다.


의미 있는 시도이고 성과도 나오고 있다.


다만 대체로 청소년 중심의 시범사업 성격이 강하다.

성인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과 고령 장애인까지 포함하는

전국 단위의 평생교육 체계는 아직 없다.


내가 그날 만난 12명은 전부 성인이었다.

그리고 그분들이 다닐 수 있는 정규 과정은 사실상 없었다.


여기에는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장애인 대상 교육은 대체로 복지 예산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복지 예산의 교육 항목은 자립생활과 슬롯적응 쪽에 무게가 있다.


인공지능 교육은 교육 예산이나 산업 인재 양성 예산 쪽에 있고

그쪽 사업들은 대체로 접근성을 전제하지 않은 채 설계된다.


그러니까 장애인이 인공지능 교육을 받으려면

복지 쪽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고

교육 쪽에서는 그 과정에 들어갈 수가 없다.


두 예산 사이의 틈에 이 교육이 놓여 있다.

이 구조는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본 모양이다.





두 번째 질문의 뒷면



그날 강의에서 나는 준비해 간 순서를 조금 바꿨다.


원래는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을 절반쯤 다룰 계획이었다.

그건 뒤로 미루고 다른 걸 먼저 했다.


인공지능이 어떻게 답을 만드는지를 설명했다.


세상을 직접 겪고 이해해서 답하는 게 아니라

방대한 자료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학습하고

다음에 올 가능성이 높은 말을 이어 붙인다는 것.


그러니까 답은 진리가 아니라 확률이라는 것.


여기까지 설명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그 자료 안에 여러분 이야기가 얼마나 들어 있을까요.


강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이번 침묵은 아까와 성격이 달랐다.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별로 없겠네요."


맞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게 이 기술을 쓰면서 알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장애에 대해 말할 때

그건 대체로 의료 기록과 복지 자료와 모금 문구를 학습한 결과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인공지능에게 장애 관련 질문을 하면

꽤 자주 예전 시선이 섞인 답을 받게 된다는 것.


그 답이 틀렸다는 걸 알아채는 게

이 교육에서 배워야 할 진짜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건 출처를 못 열어도 할 수 있는 검증이다.


원문 확인은 접근성이 필요하지만

이 답이 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를 알아채는 건

그 사람의 경험으로 할 수 있다.


당사자성이 검증 도구가 되는 지점이 여기다.


그날 한 참여자가 실제로 그 얘기를 했다.


인공지능에게 자기 장애에 대해 물어봤더니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목록으로 정리해 주더라는 것.


그 목록에 자기가 매일 하는 일이 할 수 없는 일 쪽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제가 30년째 하고 있는 건데요."


이 문장이 그날 강의에서 가장 좋은 대목이었다.


그분은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도 그 답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자기 삶이 반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없는 건 검증 능력이 아니다.

검증 능력을 쓸 자료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한 것만큼은

그 자료가 이미 손에 있다.





다르게 하는 곳들



해외 흐름을 보면 방향이 조금 다르다.


미국 특수교육 현장에서는 인공지능 기반 개별화 교육계획 지원 시스템과

시선추적 기반 학습 기술과 보완대체의사소통 연계 시스템이 이미 쓰이고 있다.


대학과 지역슬롯 교육기관에서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쓸 것인가와 함께

어떻게 비판적으로 이해할 것인가를 같이 가르치는 과정이 늘고 있다.


유럽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는다.

교사의 인공지능 리터러시와 윤리 교육을 함께 강화한다.


이게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사람만 교육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옛 관점을 그대로 전달한다.

그리고 특수교육 현장에서 그 영향은 훨씬 크다.


유네스코 쪽에서는 포용교육 전략에서 장애인을 핵심 대상으로 놓고

인공지능 기반 보조공학과 접근성 기술을 포용교육의 핵심 요소로 다룬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인공지능을 산업 기술이 아니라 시민권의 문제로 본다는 것.


장애인이 이 기술을 쓸 수 있게 하는 일이

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교육권과 노동권과 참여권의 문제라는 것.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정바카라은 아직 산업 경쟁력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반도체와 플랫폼과 인재 양성.


전부 필요한 일이고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과제다.


다만 그 목록 안에서

장애인의 접근성과 리터러시 교육이 어느 순위에 있는지를 보면

대체로 아래쪽이다.


그리고 이번 격차는 이전 것과 성격이 다르다.


과거의 디지털 격차는 접속 여부의 문제였다.

접속하면 대체로 같은 인터넷을 봤다.


지금의 격차는 활용 역량의 문제이고

활용 역량은 교육과 노동과 소득 전체에 걸쳐 누적된다.


인터넷을 늦게 시작한 사람은 몇 년 뒤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을 못 쓰는 채로 몇 년이 지나면

그 사이에 일과 학습의 방식 자체가 바뀌어 있다.


그리고 이 격차에는 방향이 하나 더 있다.


인공지능을 잘 쓰는 사람이 만든 자료가 다시 학습 자료가 된다.

쓰는 사람의 언어와 관점이 그 안에 쌓인다.


못 쓰는 사람은 그 순환 바깥에 남는다.


앞서 말뭉치 이야기를 쓸 때 나는

장애인의 일상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다.


지금 그 문제와 이 문제가 만나고 있다.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이 기술을 못 쓰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은 앞으로도 계속 부족할 것이다.





필요한 것



그래서 필요한 걸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첫째는 대상 확대다.

청소년 중심 시범사업을 넘어 성인과 중증과 고령 장애인까지 포함하는

평생교육 체계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내용 전환이다.

조작법에서 원리와 편향과 검증으로 축을 옮겨야 한다.


셋째는 형식의 다양화다.

쉬운 언어로 된 교육과정과

보완대체의사소통 기기와 연계된 교육과

화면 낭독기 사용자를 전제로 설계된 실습 자료가 필요하다.


지금 대부분의 인공지능 교육 자료는 화면 캡처로 되어 있다.

이 화면에서 이 버튼을 누르세요 하는 방식.


그 자료로는 나 같은 사람이 배울 수 없다.

인공지능 교육 자체가 접근 불가능한 상태다.


이 점이 특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지금 접근성 기술로 가장 많이 홍보되는 기술이다.

이미지를 설명하고 음성을 문자로 바꾸고 어려운 문장을 쉽게 만든다.


그 기술을 배우는 교재가 화면 캡처로만 되어 있다.


만드는 사람들이 나쁜 마음을 먹은 게 아니라

그 교재를 만드는 자리에 그 화면을 못 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이 문장을 나는 이 시리즈에서 몇 번이나 썼다.

매번 다른 소재에서 같은 결론이 나온다.


넷째는 가르치는 사람이다.

장애 특성과 보조기기를 아는 강사가 필요하고

그런 강사를 키우는 과정이 지금은 거의 없다.


그리고 당사자 강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날 강의실에서 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연구자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로서 겪은 것이었다.


원문이 안 열릴 때의 그 피로를 설명하는 데

논문을 인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참여자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자기 경험이 개인의 부족이 아니었다는 걸 그 자리에서 알게 되니까.


리터러시 교육에서 이 순간이 아마 가장 중요할 것이다.

지식을 얻는 순간이 아니라 자기 탓이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그리고 다섯째가 아까 말한 그것이다.

자료 환경을 고치는 일.


교육 예산과 접근성 예산이 따로 움직이면

잘 배운 사람이 여전히 확인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제목: 검증의 아키텍처 혹은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의 리터러시.


인공지능 시대에 중요한 질문은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가가 아니다.


누가 그 기술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한 겹이 더 있다.


누가 그 기술이 틀렸을 때 그걸 알아챌 수 있는가.


이 능력은 지금 아주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불균등의 상당 부분은 개인의 역량 차이가 아니라

확인할 자료에 닿을 수 있느냐의 차이에서 온다.


결론: 리터러시 교육은 필요하다.

다만 리터러시만으로는 안 된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라는 요구는

비판할 재료가 손에 닿는 사람에게만 유효하다.


그 재료를 손에 쥐여 주는 일이 접근성이고

접근성은 교육의 전제이지 교육의 결과가 아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인공지능이 무엇을 근거로 말하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그 근거 안에 내 이야기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아는 것.


이건 원문을 못 열어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걸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모르면 답을 사실로 받고

알면 답을 자료로 받는다.


같은 문장을 받아도 그 문장이 자기 안에서 놓이는 자리가 다르다.


인공지능이 틀렸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그날의 질문은

사실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강의가 끝나고 한 분이 다가와 물었다.

그러면 인공지능한테 뭘 물어보면 안 되냐고.

나는 물어보는 건 다 괜찮다고 했다.

다만 답을 받았을 때 그게 누구의 자료에서 나왔을지를 한 번만 생각해 보시라고 했다.

그분이 그러면 선생님은 인공지능한테 장애 얘기 물어보시냐고 되물었다.

가끔 물어본다고 했다.

그리고 대체로 실망한다고 덧붙였다.

탱고는 그 두 시간 동안 교탁 옆에 엎드려 있었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물어본 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저 녀석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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