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완료

by김경훈

[관리 일지]


기기 · 로봇청소기 H-720

애칭 · 돌돌이

구입 · 26개월 전

설치 · 아파트 4층 24평

가구원 · 2명

반려동물 · 없음

현재 상태 · 정상 작동



1


나는 이 기계를 소리로 안다.


거실 마루 위에서 돌돌이의 바퀴 소리는 낮고 넓게 퍼진다. 마루는 소리를 아래로 깔아준다. 주방 타일에 올라서면 소리가 갑자기 얇아지고 높아진다. 타일은 소리를 위로 튕긴다. 그래서 나는 소파에 앉아 있어도 돌돌이가 지금 거실에 있는지 주방에 있는지 안다. 굳이 앱을 켜지 않는다.


문턱은 3개다. 침실. 작은방. 드레스룸. 돌돌이가 문턱을 넘을 때마다 본체 아래쪽에서 딱 하는 소리가 한 번 난다. 바퀴가 턱을 타고 올라갔다가 앞쪽 범퍼가 바닥에 닿으면서 나는 소리다. 그 소리는 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침실 문턱은 낮아서 소리가 얕고 짧다. 작은방 문턱은 그보다 조금 높고 끝이 둥글어서 소리가 미끄러진다. 드레스룸 문턱이 제일 높아서 소리가 두 번 겹쳐 난다. 딱딱. 그건 헷갈릴 수가 없다.


화장실 문 앞에서는 회전한다. 문이 닫혀 있으니 벽으로 인식하고 왼쪽으로 돈다. 회전할 때는 오른쪽 바퀴만 돌아서 소리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린다. 소파 다리는 4개다. 식탁 다리도 4개다. 다리 사이를 지나갈 때 흡입음이 좁아졌다가 다시 펴진다. 침대 프레임 아래로 들어가면 소리가 먹먹해진다. 매트리스가 소리를 먹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43초 정도 머문다. 나는 재본 적이 있다.


세탁실 앞 배수구 뚜껑 위를 지날 때는 금속이 한 번 운다. 현관 앞 대리석 구간에서는 바퀴 소리가 딱딱해진다. 이런 것들이 전부 순서가 있다. 순서는 매번 같다.


전체 41분이었다. 나는 41분짜리 소리를 통째로 외우고 있었다. 이 집의 도면은 종이에 있지 않고 내 귀에 있다. 이사 온 날 나는 벽을 짚고 한 바퀴를 돌면서 문턱을 셌고 그날부터 이 집은 내 머릿속에서 소리로 그려져 있다.


돌돌이는 그 도면을 매일 다시 읽어주는 기계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랬다.



2


앱을 처음 깔았을 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도가 이미지였다. 화면에 뜨는 집 모양은 그림 파일이고 스크린리더는 그림을 읽지 못한다. 손가락을 그 위에 올리면 지도라고 한 마디 하고 만다. 지도. 그게 전부다. 안에 뭐가 그려져 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두 손가락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확대된 지도는 여전히 지도다.


대신 청소 기록은 텍스트다. 이건 다 읽힌다.


시작 시각. 종료 시각. 소요 시간. 청소 면적. 청소한 방 목록. 방별 체류 시간. 오류 항목. 필터 사용률. 브러시 사용률. 먼지통 알림. 목록은 길고 순서는 매번 같다. 나는 청소가 끝날 때마다 기록 탭에 들어가서 끝까지 듣는다. 6분쯤 걸린다. 하단 탭 3번째. 오른쪽 위 상세 보기. 한 손가락 아래로 쓸어내리면 항목이 순서대로 나온다. 손에 익어서 이제는 화면을 안 보고도 순서가 나온다. 애초에 나는 화면을 안 본다.


아내는 지도를 본다. 기록은 읽지 않는다. 청소가 끝나면 앱을 열어서 지도가 초록색으로 다 칠해졌는지만 확인하고 끈다. 3초면 된다. 초록색이면 됐다는 것이 아내의 기준이다.


우리는 같은 앱을 쓴다. 같은 계정으로 로그인되어 있고 같은 기기에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같은 것을 보지 않는다.


그때는 그게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3


작년 가을부터 면적이 늘기 시작했다.


처음 한 달은 계속 24.6제곱미터였다. 소수점까지 똑같았다. 기계는 그런 식으로 정직하다.


그러다 어느 날 25.1이 되었다. 그 다음 주에 26.8. 그 다음 달에 29.4.


아내한테 물었더니 지도 다시 그렸나 보네 하고 말았다. 제조사 고객센터에도 전화했다. 상담원은 맵 학습 과정에서 오차 보정이 일어난다고 했다. 가구 배치가 바뀌거나 문이 열려 있는 날이 생기면 인식 면적이 달라진다고 했다. 정상 범위입니다. 그 말을 3번 들었다. 세 번째에는 목소리가 조금 빨라져 있었다.


우리 집은 가구를 옮긴 적이 없다. 나는 가구를 옮기면 한 달을 다시 배워야 한다. 식탁 위치가 30센티미터만 달라져도 나는 그 30센티미터에 정강이를 부딪히며 산다. 그래서 우리 집 가구는 3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아내도 그건 안다.


소요 시간도 같이 늘었다. 41분이 47분이 되었다. 47분이 52분이 되었다.


나는 47분짜리 소리를 새로 외웠다. 그리고 52분짜리 소리를 또 새로 외웠다. 늘어난 시간이 어디서 늘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소리의 순서는 그대로였다. 거실 다음에 침실이고 침실 다음에 작은방이고 그 다음이 드레스룸이고 마지막이 주방이다. 순서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냥 중간에 무언가가 길게 들어가 있었다.



4


방 목록이 이상하다는 걸 안 건 12월이었다.


기록 탭에서 청소한 방 목록을 읽어주는데 이렇게 나왔다.


거실. 주방. 침실. 작은방. 드레스룸. 방 6.


나는 그 줄을 4번 다시 들었다. 읽기 속도를 60퍼센트까지 낮추고 한 글자씩 확인했다. 방 6. 방과 숫자 6 사이에 띄어쓰기가 하나 있었다. 앱이 이름을 지정받지 못한 공간에 자동으로 붙이는 형식 그대로였다. 우리 집 다른 방들은 다 이름을 붙여놨다. 그건 아내가 처음 설치할 때 했다.


아내한테 지도에 방이 몇 개냐고 물었다.


5개인데.


이름은.


거실 주방 침실 작은방 드레스룸.


방 6은.


그런 게 어디 있어.


아내가 화면을 캡처해서 고객센터에 보냈다. 답변이 왔다. 고객님 기기에는 방 5개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확인해 드렸습니다.


내 기록에는 6개다. 그날 이후로도 계속 6개다.


같은 앱이다. 같은 계정이다. 같은 기기다.



5


방별 체류 시간이라는 항목이 있다.


거실 19분. 주방 6분. 침실 8분. 작은방 5분. 드레스룸 4분. 방 6 11분.


11분은 짧지 않다. 침실보다 길고 주방의 거의 2배다. 11분이면 꽤 넓은 공간을 꼼꼼히 도는 시간이다. 드레스룸이 4분인 걸 생각하면 방 6은 드레스룸의 2배가 넘는다.


그래서 다음 청소 때 따라다녔다.


거실은 쉬웠다. 소리가 마루 전체에 퍼지고 나는 소리의 중심을 향해 걸으면 된다. 주방도 쉬웠다. 타일 위에서 소리는 위로 뜨니까 손을 뻗으면 잡힌다. 침실 작은방 드레스룸 다 잡았다. 문턱 소리 3개를 다 들었고 각 방에서 벽을 짚고 서서 돌돌이가 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소리가 복도로 나왔다.


우리 집 복도는 걸어서 7걸음이다. 왼쪽에 화장실 문. 오른쪽에 신발장. 끝에 현관. 그게 전부다. 폭은 팔을 벌리면 양쪽 벽이 다 닿는다.


나는 복도 한가운데 서서 소리를 들었다.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이건 설명하기가 어렵다. 소리가 안 들린 게 아니다. 잘 들렸다. 흡입음도 바퀴 소리도 선명했고 브러시가 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구분됐다. 그런데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아니었고 앞도 뒤도 아니었다. 두 귀에 같은 크기로 같은 시각에 도착했다.


사람은 두 귀에 소리가 도착하는 시간차로 방향을 잡는다. 그 차이가 0이면 소리는 정확히 정면이거나 정후방이거나 정수리 위다. 그래서 나는 몸을 90도 돌려봤다. 돌리면 차이가 생겨야 한다. 안 생겼다. 한 바퀴를 다 돌았다. 계속 같았다.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상태를 나는 그날 처음 겪었다.


나는 26년 동안 소리로 방향을 잡고 살았다. 차 소리로 도로의 폭을 재고 발소리로 천장 높이를 재는 사람이다. 그런 적이 없었다.


벽에 손을 댔다. 벽지는 매끄럽고 차가웠다. 그게 전부였다.


11분 뒤에 소리가 다시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 거실을 지나 충전독으로 들어갔다. 복귀음이 났다. 도킹이 완료되었습니다.



6


같은 주에 알림이 하나 왔다.


펫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반려동물 털이 감지되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동물이 없다. 아내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결혼할 때부터 이야기가 끝난 문제였다. 이웃집 개도 없다. 이 라인은 4층까지 다 노부부다.


설정에서 펫 모드를 껐다. 다음 청소 때 다시 켜졌다. 3번 껐고 3번 다시 켜졌다.


먼지통 이야기를 해야겠다.


먼지통은 원래 가볍다. 다 차도 손목으로 들면 무게가 거의 안 느껴진다. 먼지는 뭉치면 부슬부슬하고 손끝에서 부서진다. 머리카락이 섞이면 실처럼 걸린다. 걸린 머리카락은 손가락에 감아서 빼면 된다. 그게 2년 동안 내가 알던 감촉이다.


12월 말부터 먼지통이 무거워졌다.


들어 올릴 때 손목에 걸린다. 뚜껑을 열고 손을 넣으면 부슬부슬하지 않다. 알갱이다. 굵기가 고르고 손가락 사이에서 서로 굴러간다. 모래에 가깝다. 정확히는 젖은 모래다. 축축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손에 묻는다. 쥐면 뭉치고 펴면 손금에 남는다.


냄새가 났다. 비 온 다음 날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에서 나는 냄새였다. 물비린내와 시멘트 가루 냄새가 섞인 그 냄새다. 먼지통을 열면 그 냄새가 얼굴로 올라온다.


우리 집은 4층이다. 화분도 없다. 현관 매트는 극세사다. 베란다는 확장해서 없앴다.


아내한테 이거 좀 보라고 했다. 아내는 먼지통 안을 들여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먼지가 다 그렇지 뭐.


나는 그 뒤로 먼지통 내용물을 지퍼백에 조금씩 덜어두기 시작했다. 4개 모았다. 3일 지나면 다 마른다. 마르면 그냥 회색 가루가 된다. 냄새도 없어진다.



7


1월 셋째 주 기록을 듣다가 손이 멈췄다.


시작 시각 03시 40분.

종료 시각 04시 38분.

시작 방법 본체 버튼.


앱 예약이 아니다. 음성 명령도 아니다. 본체 상단 버튼이라고 되어 있었다. 돌돌이 뚜껑 위에 있는 물리 버튼이다. 손가락으로 눌러야 눌리는 버튼이고 누르면 딸깍 소리가 나고 3초 뒤에 시동음이 난다. 시동음은 4음이다. 도미솔도.


나는 보통 1시쯤 잔다. 아내는 12시 전에 잔다.


그 다음 주에도 03시 40분이었다. 그 다음 주에도 03시 40분이었다. 분 단위까지 같았다. 3주 연속이면 그건 우연이 아니라 주기다.


본체 버튼 위에 테이프를 붙였다. 종이테이프를 3겹으로 붙이고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눌렀다. 그러면 눌러도 안 눌린다. 눌러봤다. 안 눌렸다. 힘을 줘도 안 눌렸다.


그 주 기록. 시작 시각 03시 40분. 시작 방법 본체 버튼.


아침에 만져봤다. 테이프는 3겹 그대로였다. 가장자리도 그대로였다. 뜯었다 붙인 자국은 손끝으로 알 수 있다. 종이테이프는 한 번 뜯으면 가장자리가 일어나고 표면에 잔털이 선다. 없었다.



8


2월에 기사가 왔다.


30분쯤 있었다. 대부분은 조용했다. 본체를 뒤집어서 브러시를 뜯어보고 센서를 닦고 다시 조립하는 소리가 났다. 나사를 푸는 소리가 4번 나고 조이는 소리가 4번 났다. 그 다음에 자기 태블릿에 뭔가를 띄우고 오래 봤다.


볼펜을 딸깍거렸다. 나는 12번까지 셌다.


우리 집 지도를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방이 몇 개로 나오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이 없었다. 3초쯤 없었다. 그 다음에 이렇게 말했다.


펌웨어 초기화하고 새로 매핑 돌려드릴게요.


기사는 초기화만 걸어놓고 갔다. 나가면서 신발을 신는 데 오래 걸렸다. 신발장 앞에서 지퍼를 올리는 소리가 4번 났다. 지퍼가 하나인 신발이었다.


재매핑은 2시간 걸렸다. 돌돌이가 집을 처음부터 다시 돌면서 벽을 하나씩 짚는 소리를 나는 2시간 동안 들었다. 매핑 주행은 청소 주행보다 느리고 벽을 따라 도는 구간이 길다. 문턱 소리는 3번씩만 났다. 침실 작은방 드레스룸. 3번. 매핑 도는 내내 3번이었다. 나는 그걸 다 셌다.


끝나고 아내가 새 지도를 열었다.


방 6개네.


나는 다시 물었다. 6개?


응. 원래 6개 아니었어?



9


걸음 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는 집 안에서 걸음으로 거리를 잰다. 현관에서 거실 소파까지 11걸음. 소파에서 주방 싱크대까지 8걸음. 싱크대에서 침실 문까지 9걸음. 침실 문에서 침대 모서리까지 4걸음. 이런 숫자가 20개쯤 머릿속에 있다.


전체를 한 바퀴 도는 경로도 있다. 현관에서 출발해서 벽을 오른손으로 짚고 집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현관으로 오는 경로다. 42걸음이었다. 이사 온 다음 주에 세었고 그 뒤로 3번 더 세었다. 매번 42였다. 걸음 폭이 일정하니까 그렇다.


2월 마지막 주에 다시 세어봤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세어봤다.


46이었다.


다시 셌다. 46. 신발을 벗고 셌다. 46.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셌다. 46.


늘어난 4걸음이 어디에서 늘어났는지 알아내려고 구간을 나눠서 셌다. 현관에서 거실까지 11. 거실에서 주방까지 8. 주방에서 침실까지 9. 침실에서 작은방까지 5. 작은방에서 드레스룸까지 4. 드레스룸에서 복도까지 3. 복도에서 현관까지 2.


11 더하기 8 더하기 9 더하기 5 더하기 4 더하기 3 더하기 2는 42다.


구간을 다 더하면 42다. 한 번에 돌면 46이다.


3일 동안 여덟 번 해봤다. 구간별로는 42고 한 번에 돌면 46이었다.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



10


문턱은 3개다.


이건 내가 이 집에 대해 가장 확실하게 아는 사실이다. 이사 온 첫날 나는 짐을 풀기 전에 집을 한 바퀴 돌았다. 벽을 짚고 걸으면서 문턱마다 발끝으로 높이를 재고 세었다. 3개였다. 그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셌다. 3개였다. 아내한테도 물어봤다. 3개.


오늘 저녁 8시에 청소를 돌렸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들었다.


거실. 19분. 마루 소리.


딱. 침실.

딱. 작은방.

딱딱. 드레스룸.


주방 타일 소리. 6분.


그리고 복도로 나갔다.


딱.


4번째였다.


낮았다. 침실 문턱보다 낮고 짧았다. 한 번이었다. 겹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드레스룸도 아니고 작은방도 아니다.


나는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26개월 동안 이 기계가 낸 적 없는 소리다.



11


기록을 다 들었다.


청소 완료.

소요 시간 58분.

청소 면적 34.2제곱미터.

청소한 방 거실 주방 침실 작은방 드레스룸 방 6.

방 6 체류 시간 14분.

오류 항목 없음.


먼지통을 비웠다. 무거웠다. 알갱이였고 젖어 있었다. 손을 씻고 나서도 손톱 밑에 남았다. 이번 것도 지퍼백에 조금 덜었다. 5개째다.


필터 사용률이 82퍼센트다. 다음 주에 갈아야 한다. 재고를 봐야겠다. 지난번에 3개들이를 샀으니까 아마 2개 남았을 것이다. 없으면 주문해야 하는데 배송이 3일 걸린다.


아내는 자고 있다.


지금은 1시 42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