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간(怒傷肝)

1부

by김경훈

노상간(怒傷肝): 분노는 간을 상하게 한다. — 《황제내경》



1


이진수는 자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쁜 사람은 따로 있었다. 회의 시간마다 카지노톡을 하는 박 대리, 보고서를 세 번 돌려보내도 맞춤법이 틀리는 최 사원, 점심시간 끝나기 십오 분 전부터 자리를 비우는 김 과장. 거기에 사장까지 더하면 협성건자재 영업팀은 사실상 이진수 혼자 먹여 살리는 조직이었다. 이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문제가 처음 생긴 건 봄이었다. 정확히는 박 대리가 거래처 접대 자리에서 술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에 엎어진 날이었다. 이진수는 그 자리에서 박 대리의 등짝을 세 대 내리쳤다. 두 대는 창피해서, 한 대는 억울해서였다. 다음 날 아침 사장실에 불려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냐"는 말을 들었다. 이진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처음으로 두통이 생겼다.


두통은 여름 내내 이진수의 관자놀이 언저리에 눌어붙어 있었다. 내과에 갔더니 혈압이 높다고 했다. 의사가 "스트레스 줄이세요"라고 했다. 이진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혈압이 더 올랐다.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스트레스를 만드는 사람들한테 그 말을 해야지 왜 나한테 하는 거냐고.


내과 문을 나서며 이진수는 처음으로 어딘가를 부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냥 아무 데나.


팔월이 되자 거기에 소화불량까지 가세했다. 뭘 먹어도 체하는 것 같았다. 잠도 잘 못 잤다. 불을 끄고 누우면 낮에 있었던 일들이 줄줄이 재생됐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잘못이었고 이진수는 그 잘못들을 반추하다가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소화기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석 달 동안 이진수가 다닌 병원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두 번 갔다가 그만뒀다. 의사가 자꾸 "어렸을 때 어떠셨어요?"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이진수는 어릴 때 얘기를 하러 간 게 아니었다.


한의원 얘기를 꺼낸 건 어머니였다.


"약령시 골목에 한의원이 하나 생겼더라. 원효라 카던가, 하여튼 의사 이름이 특이했는데. 거 가봐라."


이진수는 한의원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반사적으로 코를 찡그렸다. 침 맞고 탕약 먹는 거 아니냐고. 어머니는 "그러면 거기서 뭘 하겠냐"고 했다. 반박이 불가능했다.


구월 중순의 어느 수요일 오후, 이진수는 대구 약령시 골목으로 들어섰다.



2


골목은 한약 냄새가 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막상 코로 맡으니 당연하지 않은 농도였다. 이진수는 자신이 지금 약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건지 약이 자신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골목 양쪽으로 한약재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쪼그라든 황기, 갈색 더미를 이룬 당귀, 뭔지 모를 검은 덩어리들. 한 상점 앞에서 주인이 약재를 손질하다 이진수를 올려다봤다. 이진수는 왠지 모르게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심의당(心醫堂)은 오래된 3층 건물 2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은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발을 디딜 때마다 오래된 악기 소리가 났다. 삐걱, 끼익. 이진수는 계단을 반쯤 올라가다 멈췄다. 뭔가 잘못 찾아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라갈수록 한약 냄새가 짙어졌다. 아래층보다 위층이 더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상한 건물이었다.


유리문에 나무 현판이 붙어 있었다. 붓글씨였다. 심의당. 두 글자도 아니고 세 글자인데 왜 이렇게 삐뚤어 보일까. 아니, 자세히 보니 삐뚤지 않았다. 그냥 글씨체가 그런 것 같았다. 이진수는 자신이 멀쩡한 붓글씨를 두고 삐뚤다고 생각한 이유를 잠깐 생각했다가 그냥 문을 밀었다.


접수창구는 없었다. 대신 낡은 원목 테이블 하나와 의자 서너 개가 있었고, 그 중 하나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스물다섯쯤 됐을까. 흰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형광 초록 트레이닝 바지가 보였다. 머리는 대충 묶었고 폰을 보고 있었다. 이진수가 들어서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저, 진료를 받으려고요."


"……."


"예약은 안 하고 왔는데."


여자가 그제야 폰에서 눈을 떼고 이진수를 봤다. 뭔가를 평가하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잠깐 그렇게 보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안쪽 문을 가리켰다.


"들어가면 되는데요."


그게 다였다. 다시 폰을 봤다.


이진수는 그 문을 가리킨 엄지손가락이 손톱에 젤 네일이 되어 있다는 걸 뒤늦게 확인했다. 수박 무늬였다.



3


진찰실 문을 열었을 때, 이진수는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했다.


첫째, 한의사가 진찰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한의사는 창가 쪽 바닥에 방석을 깔고 바카라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찐빵이었다.


둘째, 한의사가 생각보다 많이 뚱뚱했다.


흰 가운의 단추가 사수하고 있었지만 안쪽에서 밀어붙이는 압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가운 가슴팍에 명찰이 있었다. '의학박사 김원효'. 나이는 사십 언저리쯤 되어 보였는데 표정이 워낙 어린애 같아서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어서 오이소."


김원효가 찐빵을 손에 쥔 채로 말했다. 이진수는 잠깐 어디에 앉아야 하나 둘러봤다. 환자용 의자가 있었다. 거기 앉았다. 바로 옆에 주사대가 있었다. 주사기가 올려져 있었다. 이진수는 그것을 봤다.


"저, 침 맞으러 왔는데요."


"압니더. 일단 앉으이소."


김원효가 마지막 찐빵 한 입을 입에 넣고 일어났다. 가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더니 이진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턱을 괴고 이진수를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료카드 보니까 두통, 소화불량, 불면. 맞지예?"


"네."


"얼마나 됐는데요?"


"봄부터니까 반 년 됐네요."


"다른 병원은요?"


"내과, 신경과, 정신건강의학과 다 다녀봤습니다."


김원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물어볼 것 같았다. 그런데 묻지 않았다. 그 대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주사대 옆으로 갔다.


"일단 약침 한 방 먼저 맞아보이소."


"네?"


"약침이라예. 한약 성분을 경혈에 놓는 기라예. 일단 놔봐야 압니더."


"뭘 알아요?"


"놔봐야 압니더."


대답이 완벽하게 순환했다. 이진수는 반박 지점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왼쪽 팔소매를 걷었다.


"팔 말고예."


"그럼 어디요?"


"목 뒤."


이진수는 목 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밖에서 여자가 들어왔다. 박나리였다. 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약침 트레이를 가져왔다. 내려놓고 나서 폰 화면을 다시 봤다. 뭔가 중요한 걸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진수가 힐끗 봤더니 유튜브였다. 고양이가 어항에 손을 집어넣는 영상이었다.


"긴장 풀어보이소."


김원효가 뒤에서 말했다. 이진수는 긴장을 풀려고 어깨를 내렸다. 그러자 바늘이 들어왔다.


"아야."


"다 됐습니더."


"이게 끝이에요?"


"약침이라는 기 원래 짧습니더. 대신 아프지예."


이진수는 목을 만졌다. 뭔가 얼얼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박나리는 트레이를 가져가면서도 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김원효는 다시 맞은편에 앉아 이진수를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좀 오래 봤다.


"직업이 뭐예요?"


"건자재 회사 영업팀장입니다."


"팀원은 몇 명이고요?"


"다섯 명이요."


"팀장 된 지는요?"


"삼 년 됐습니다."


김원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를 메모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메모지가 없었다. 그냥 무릎에 손가락으로 쓰는 것 같았다.


"아랫사람들이 일을 못 해요? 아니면 윗사람이 못 챙겨줘요?"


이진수는 잠깐 멈췄다.


"둘 다요."


"그럼 팀장이 제일 힘들겠네."


"그렇죠."


"근데 제일 문제가 있는 사람은 팀장일 수도 있거든요."


이진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말씀이세요?"


"간 기능 검사는 해봤지예?"



4


김원효는 진찰을 이상한 순서로 했다.


맥을 짚었다. 한참 짚었다. 눈꺼풀을 뒤집어 봤다. 혀를 내밀라고 했다. 이진수가 혀를 내밀자 "그렇구만요" 하고는 더 이상 혀를 보지 않았다. 복부를 눌러봤다. 오른쪽 윗부분을 누르자 이진수가 자기도 모르게 "윽" 소리를 냈다.


"거 압니까?"


"좀 아프네요."


"간이예."


"간이요?"


"노상간(怒傷肝)이라예. 화가 많으면 간이 상한다는 기라예. 황제내경에 나오는 말입니더. 두통도 간 열이고, 소화불량도 간이 위장 기능을 억누르는 기고, 불면도 간혈이 부족해서 그런 기라예."


이진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오른쪽 윗배를 내려다봤다. 화가 많으면 간이 상한다. 그럼 내가 화가 많다는 말이냐.


"저는 화가 많은 게 아니라 화가 날 일이 많은 겁니다."


"그 차이가 뭔데요?"


"화가 많은 건 성격 문제고, 화가 날 일이 많은 건 상황 문제죠."


김원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방식이 동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렇구만요. 근데 간은 그 차이를 모르거든요."


"……."


"간은 그냥 화가 났다는 신호만 받거든요. 니가 맞네 니가 틀리네 그런 거 모릅니더. 그냥 불이 왔으니까 타는 기라예."


이진수는 뭔가 말을 하려다 멈췄다. 말이 잘 안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화를 줄여야죠."


"화가 날 일을 없애야 화가 줄어들죠."


"화가 날 일은 죽을 때까지 있습니더."


이진수는 이 한의사와 대화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방 안에 한약 냄새가 가득했다. 밖에서 박나리가 폰 보는 소리가 들렸다. 영상에서 고양이가 야옹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결국?"


김원효가 잠깐 이진수를 봤다.


"팀원들이 왜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해요?"


"관심이 없으니까요. 대충 하려고 하니까요."


"팀장님은요? 팀장 되기 전에는요?"


이진수가 입을 다물었다.


"저는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겠지예. 근데 아랫사람들이 왜 열심히 안 할까요?"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잖습니까."


"팀장님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인정받았어요? 삼 년 동안 팀장 하면서?"


이진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협성건자재 이사 박태현이 떠올랐다. 기획서 칭찬을 자기가 한 것처럼 사장한테 보고하는 박태현. 연초 실적 회의에서 "이 팀이 이번에 고생 좀 했지요" 하고 뭉뚱그려 말하는 박태현.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리고 영업 현장에 나가본 적이 없는 박태현.


"그게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많은 상관이 있지예."


김원효가 일어나 약장 앞으로 갔다. 서랍들을 열고 닫으며 뭔가를 꺼냈다.


"인정을 못 받으면 화가 나지예. 당연한 겁니더. 근데 그 화를 아래로 내려보내는 거예요. 팀원들한테. 그 팀원들도 또 아래가 있으면 내려보내고."


"저는 팀원들한테 화를 낸 게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하라고 한 겁니다."


"그 둘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팀장님뿐입니더."


이진수가 눈을 들었다.


김원효는 약재를 저울에 달면서 말했다. 이진수를 보지 않고 저울을 보면서.


"간이 상한 건 팀원들 때문이 아니라예. 인정 못 받아서 생긴 화가 갈 데가 없어서 내 간을 태우는 기라예."



5


탕약은 한 시간 후에 나왔다.


이진수는 그 한 시간 동안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박나리 옆에 있었다. 박나리는 계속 폰을 봤다. 이진수가 탕약은 언제 나오냐고 물었더니 "한 시간 걸린다고 했는데요" 했다. 이미 들은 말이었다. 그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대기실 구석에 낡은 화롯불이 있었고 그 위에서 뭔가가 끓고 있었다. 한약 냄새의 근원이 저기인 것 같았다. 이진수는 자신이 지금 이 냄새에 완전히 포위되어 있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신기하게도 두통이 조금 줄어든 것 같았다. 기분 탓인지 약침 때문인지 아니면 냄새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박나리가 갑자기 말했다.


"탕약 처음이에요?"


이진수가 돌아봤다. 박나리는 여전히 폰을 보고 있었다.


"네."


"엄청 써요."


"그렇겠죠."


"근데 다들 두 번째부터는 괜찮다고 해요."


"왜요?"


"첫 번째가 워낙 써서 두 번째는 그냥 그렇게 느껴지나 봐요."


이진수는 그 논리를 잠깐 생각해봤다.


"그게 치료예요?"


"글쎄요."


박나리가 폰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근데 선생님이 틀린 말씀을 하신 적이 별로 없어요. 황당하긴 해도."


"황당한 건 인정하네요."


"네. 저도 적응하는 데 좀 걸렸어요."


그게 다였다. 박나리는 다시 영상을 봤다. 이번에는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가 나오는 것 같았다.


탕약은 정확히 한 시간 후에 나왔다. 종이컵에 담겨 있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이진수는 그것을 손에 들고 잠깐 들여다봤다.


진찰실에서 김원효가 나왔다.


"맛이 어때예?"


"아직 안 먹었는데요."


"마셔보이소."


이진수가 한 모금 마셨다. 쓴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씁니다."


"당연하지예. 약이니까."


"단 약은 없어요?"


"그게 약이면 사탕이라예."


이진수는 어이가 없었지만 반박이 되지 않았다. 나머지를 마저 마셨다. 끝까지 썼다.


김원효가 팔짱을 끼고 이진수를 봤다.


"오늘 퇴근하고 팀원들한테 밥 한 번 사이소."


"네?"


"그냥 사이소. 이유 없이."


"이유 없이 밥을 왜 사요."


"이유가 있으면 더 이상하거든요."


이진수는 그 말의 의미를 한참 생각했다.


"그게 치료예요?"


"간이 열을 받은 건 약으로 잡을 수 있는데예. 근데 열이 왜 생겼는지를 안 보면 또 생기거든요. 인정받고 싶은데 못 받으면 화가 나는 기라예. 그 화를 아래로 보내면 나는 잠깐 후련할 수 있는데, 아래는 똑같이 됩니더. 그리고 팀장님도 결국엔 아무것도 안 달라지고요."


"밥 한 끼 산다고 달라져요?"


"모르지예."


김원효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달라질 수도 있거든요. 이유 없이 베푸는 거에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놀라거든요. 요즘 세상에 이유 없는 게 없으니까."


이진수는 탕약 종이컵을 손에 쥔 채로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오이소. 약침 맞고 탕약 먹고. 한 달은 해봐야 압니더."


"얼마예요?"


금액을 들었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이진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6


이진수가 심의당을 나선 건 해가 막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약령시 골목의 한약 냄새는 여전했다. 이진수는 골목을 걸으며 아까 그 한의사가 한 말을 떠올렸다. 화가 많은 게 아니라 화가 날 일이 많다고 했을 때 김원효가 한 말. 간은 그 차이를 모른다.


이진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왜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게 틀린 말이어서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대구의 구월 저녁은 아직 더웠다. 이진수는 재킷을 벗어 팔에 걸치고 걸었다. 차 쪽으로 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폰을 꺼냈다. 단체 카톡방을 열었다. 영업팀 단톡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사흘 전 이진수가 올린 자료 요청이었고, 그 아래로 읽씹이었다.


이진수는 잠깐 그 화면을 봤다.


그리고 입력창을 눌렀다.


오늘 저녁 시간들 있지? 삼겹살이나 한 번 하자.


전송하고 나서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두 걸음 걷다가 다시 꺼냈다. 답장이 벌써 왔다. 박 대리였다.


팀장님 갑자기요?? 네 좋습니다!!


최 사원이 뒤따라 답했다.


저도요!


김 과장은 한 박자 늦게 왔다.


……오늘요?


이진수는 그것을 보고 피식했다. 김 과장다웠다. 그래도 됩니다, 라고 쳤다.


저도 갈게요.


이진수는 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차장 쪽으로 걸었다. 목 뒤가 아직 얼얼했다. 두통은 아까보다 좀 더 줄어 있었다. 관자놀이를 눌러봤다. 아직 있었다. 근데 좀 멀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유 없이 베푸는 것. 이진수는 그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그게 치료인지 아닌지는 아직 몰랐다. 한 달을 해봐야 안다고 했으니까.


한 달 동안 그 한의사를 한 번 더 보게 될 것 같기는 했다.



에필로그


다음 주 화요일, 이진수는 다시 심의당을 찾았다.


계단을 오르며 지난주에도 이 소리가 났지 하고 생각했다. 삐걱, 끼익. 근데 이번엔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박나리가 폰을 보고 있었다. 이진수가 들어서자 역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진수가 의자에 앉자 박나리가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뭔가를 가져왔다. 종이컵이었다. 갈색 액체가 담겨 있었다. 이진수가 받아서 마셨다. 쌍화탕이었다. 쓰지 않았다. 달고 따뜻했다.


"이건 약 아니에요?" 이진수가 물었다.


"쌍화탕인데요." 박나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드시라고요."


"감사합니다."


박나리는 이미 폰을 보고 있었다.


이진수는 쌍화탕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따뜻한 걸 느끼면서, 지난 일주일을 생각했다. 삼겹살은 나쁘지 않았다. 박 대리가 많이 먹었고, 김 과장은 끝까지 어색했다. 최 사원은 소주를 생각보다 잘 마셨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냥 먹었다. 이유 없이.


근데 월요일 아침에 박 대리가 보고서를 한 번에 가져왔다. 맞춤법도 다 맞았다.


이진수는 그게 연관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모를 것 같기도 했다.


그냥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