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의 아키텍처

by김경훈

채널을 돌리다 보면 수백 개의 방송이 쏟아진다.

먹방, 오디션, 드라마, 예능.

그 화려한 주파수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세상이 모두를 위해 열려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리모컨의 번호가 세 자릿수를 넘어가고, 199번이라는 아득한 주변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한 채널이 나타난다.

그곳에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 풍부하게 깔리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가 화면의 구석이 아닌 절반을 차지한다.

장애인 복지채널이다.


장애인의 일상과 권리를 다루는 유일한 공론장이지만, 이 채널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비싼 유료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

이것은 정보의 접근권마저 자본의 크기로 재단하는 폭력적인 시장 논리에 대한 이야기이며, 과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미래의 정바카라 입안자들을 마주한 김경훈의 어느 목요일 오후 기록이다.



과천의 엘리트들과 리모컨의 권력


이천이십육년 오월 이십일일 목요일.

경기도 과천에 위치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김경훈은 보보의 안내를 받으며 대강당의 단상에 섰다.

발치에는 안내견 탱고가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오늘 김경훈은 중앙부처 신임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시대의 정보 접근성과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강당 안은 이제 막 공직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 엘리트들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김경훈은 마이크를 고쳐 잡으며 질문을 던졌다.


"사무관 여러분, 혹시 댁에서 아이피티브이(IPTV)를 보실 때, 199번 채널을 틀어보신 분 계십니까?"


침묵이 흘렀다.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국무조정실 소속의 젊은 사무관, 이지민이 손을 들었다.

"박사님, 199번은 복지 티브이 아닙니까? 장애인 복지채널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합니다, 이 사무관님." 김경훈이 미소 지었다.

"복지 티브이는 이천오년에 개국하여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과 시청권 보장을 위해 고군분투해 온 채널입니다. 동정이나 시혜적 서사가 아니라, 장애인을 이 슬롯의 동등한 시민으로 조명하는 거의 유일한 공론장이죠. 그런데 왜 하필 199번일까요?"



주변부로 밀려난 권리


김경훈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지상파나 대형 종합편성채널은 모두 십 번대 안팎의 황금 주파수를 차지합니다. 리모컨을 켜자마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중심부죠. 하지만 장애인 복지채널은 수백 번대 뒤편, 199번에 놓여 있습니다. 이 배열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슬롯가 무엇을 중심 정보로 간주하고, 누구를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상징적 구조입니다."


그의 목소리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더 끔찍한 문제는 이 정보 접근권이 계층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복지 티브이를 제대로 고화질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케이블 방송의 가장 저렴한 기본요금제에서는 이 채널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접근이 매우 불편합니다. 사실상 고가의 디지털 상품이나 유료 체계 안으로 편입되어 있죠.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라고 의무 송출 채널로 지정해 놓고서는, 막상 보려면 셋톱박스를 조작하고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지민 사무관이 노트를 적다 말고 질문했다.

"하지만 박사님, 방송통신 산업도 결국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까? 디지털 전환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수익 구조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취약계층에게는 복지 할인을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니버설 방송을 향하여


보보가 옆에서 조용히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이 사무관님, 철학에서 권리란 시장 가격표를 붙일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의미합니다. 중증 장애인이나 고령자에게 방송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에요. 슬롯와 연결되는 창구이자 정바카라 정보를 얻는 생존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이 생존의 통로를 유료 플랫폼 논리에 맡겨두고 할인율 몇 퍼센트 던져주는 것으로 국가의 바카라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경훈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할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자체를 시장 상품처럼 취급하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비비시(BBC)를 보십시오. 그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을 소수자를 위한 특별 서비스가 아니라, 공영방송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바카라무로 여깁니다. 미국은 인터넷 기반 영상 콘텐츠의 자막 제공을 법으로 강제하죠."


그는 강당을 가득 채운 예비 정바카라 입안자들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선진국의 핵심은 장애인 방송을 199번 같은 별도의 섬에 가두지 않는다는 겁니다. 뉴스, 드라마, 예능 등 일반 방송 전체가 장애인에게 접근 가능하도록 유니버설 방송의 철학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요. 복지채널 하나 달랑 만들어놓고 거기다 장애인 관련 이슈를 다 구겨 넣은 뒤,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년도 장애인 방송 제작 지원 예산마저 반 토막이 났죠."



돈으로 살 수 없는 주파수


강당 안에는 숙연한 정적이 감돌았다.

이지민 사무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적었던 노트를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김경훈이 특강을 마무리했다.

"여러분, 앞으로 부처에 돌아가시면 수많은 예산을 짜고 정바카라을 기획하실 겁니다. 그때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십시오. 복지채널은 시장에서 팔려야 하는 채널이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라면 반드시 무상으로 보장해야 하는 채널입니다. 돈을 더 내야만 제대로 접근할 수 있는 복지는 이미 복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차별의 영수증일 뿐입니다."


특강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이지민 사무관이 단상으로 올라와 김경훈과 악수를 청했다.

"박사님, 뼈아픈 지적이었습니다. 정보 접근성이 시혜적 할인이 아니라 시민권의 문제라는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주석: 주파수의 아키텍처


제목: 주파수의 아키텍처 혹은 199번의 고립.

세상은 모든 것이 연결된 초고속 디지털 시대를 자랑하지만, 장애인의 주파수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끄트머리, 199번 채널에 위태롭게 묶여 있다.

정보가 자본과 결탁할 때,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눈과 귀가 먼저 가려진다.

장애인 복지채널의 유료화와 고립은 단순히 방송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슬롯가 누구의 목소리에 돈을 지불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를 보여주는 잔인한 성적표다.

결론: 복지 티브이는 199번이라는 숫자를 벗어나야 한다.

아니, 궁극적으로는 복지 티브이라는 특수 채널이 사라져도 될 만큼, 1번부터 100번까지의 모든 상업 채널이 수어와 화면해설을 기본 탑재하는 유니버설 방송의 시대가 와야 한다.

그나저나 과천까지 다녀오느라 탱고가 몹시 지친 모양이다. 조수석 바닥에 코를 박고 코를 곤다.

집에 가면 보보와 함께 특식이라도 만들어 먹여야겠다. 방송 채널은 199번이지만, 탱고의 서열은 우리 집 0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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