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달빛과 지린내 사이

재스민의 이중생활

by김경훈

왁스 같은 질감에 노란 버터 색깔이 감도는 재스민 고체 향수를 피부에 문지른다.

체온에 녹아든 왁스가 사라지는 순간 놀라운 고양감이 찾아온다.

향기는 파도처럼 주변을 감싸고 흐른다.

고조되는 열기와 비단 같은 질감은 마치 깊은 황금빛 나무 그늘 아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탑 노트가 지나가고 울림 있는 미들 노트가 올라오면 풍부함과 우아함 그리고 느긋함이 어우러진다. 이제 이 향기는 단순한 냄새가 아니라 나의 새로운 피부가 된다.


재스민은 대개 꽃 자체보다 향기로 기억된다.

한 조향사는 재스민이 없으면 향수도 없다고 단언했다.

숭고함과 일상을 하나로 묶어내는 재스민 향기에는 세상의 모든 향이 담겨 있다.

재스민 꽃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향수다.

복잡하면서도 균형 잡힌 향은 다른 향료와 조합될 때 강력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향수의 중심인 하트 노트 역할을 수행한다.



고결한 우아함 밑에 숨겨진 지독한 냄새


재스민 향기는 독특한 반전을 품고 있다.

아주 정밀하게 향을 맡아보면 따뜻한 꿀 같은 달콤함 속에 배설물이나 부패물의 냄새가 묘하게 섞여 있다.

이는 고도로 농축된 인돌(indole)과 크레솔(cresol) 분자 때문이다.

인돌은 실제로 배설물에도 들어 있는 성분이며, 크레솔은 콜타르의 역한 냄새를 풍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28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0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짠돌이 지갑도 자동문으로 만드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