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영동에서 만나는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 제57회 영동난계국악축제
음악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표현 방식 가운데 하나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사람들은 소리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고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했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려 했다. 때로는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었고 때로는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하는 놀이였으며 누군가에게는 말로 표현하지 못한 슬픔과 기쁨을 전하는 방법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음악을 만드는 도구와 표현 방식도 달라졌지만 소리를 통해 감정을 나누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한국의 국악을 전통음악이라고 부른다.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그 단어에는 묘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전통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는 조금 떨어진 과거의 문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악은 어느 한 시대에 완성되어 멈춘 음악이 아니다. 수백 년에 걸쳐 사람들의 삶과 함께 변화해 왔고, 지금도 새로운 악곡과 연주 방식이 만들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음악이다.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열리는 영동난계국악축제는 이러한 국악의 현재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2026년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리는 제57회 영동난계국악축제의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 영동세계국악엑스포가 열렸던 공간에서 다시 우리 음악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가을로 접어든 영동의 산자락에는 조금씩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고, 축제장 입구에는 화려한 색채의 유등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소원 유등 터널이라는 이름의 공간에는 방문객들이 적어 놓은 소망이 걸려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의 건강을 바랐고 누군가는 자신의 앞날을 응원하는 문장을 남겼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간에 모여 자신의 바람을 남기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음악이 오랜 시간 수행해 온 역할과도 닮아 있었다. 음악 역시 서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하나의 소리로 연결하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영동이 국악의 고장으로 불리는 데에는 난계 박연이라는 인물이 있다. 1378년에 태어나 1458년에 세상을 떠난 박연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음악가이자 음악이론가였다. 왕산악,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세종대왕 시대에 국가의 음악체계를 정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음악은 개인의 취향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조선시대 음악은 국가의 질서와 철학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왕실의 제례와 국가의 공식 행사에서 어떤 음악을 연주할 것인가는 단순한 예술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박연은 아악을 정비하고 악기의 음률과 연주체계를 체계화하는 일을 통해 조선의 음악문화를 발전시켰다.
음악을 정비한다는 것은 단순히 악곡을 새롭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소리의 높낮이를 정하고 그것을 일정한 기준으로 재현할 수 있도록 악기를 만들며,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의 음악 안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체계를 세우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음의 기준과 악기의 조율 역시 오랜 시간 축적된 지식의 결과다. 박연이 남긴 업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를 단순히 음악을 잘했던 사람으로 바라보기보다 음악을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과 문화로 발전시키려 했던 인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동난계국악축제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한 행사다. 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데서 시작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국악을 공연하고 배우고 경험하는 종합적인 문화축제로 발전해 왔다. 올해로 57회를 맞이했다는 사실은 우리 전통음악을 이어가기 위한 지역슬롯의 노력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국악에는 다양한 갈래가 존재한다. 왕실과 지배층의 문화에서 발전한 정악이 있고, 민중의 삶에서 만들어진 민요와 판소리, 산조가 있다. 농경슬롯의 공동체가 함께 즐겼던 농악과 풍물 역시 중요한 국악의 한 분야다. 이들은 같은 전통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묶이지만 음악을 만드는 방식과 표현하려는 방향도 다르다.
국악이 가진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서양음악과 비교할 때 국악은 하나의 음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중요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음을 흔들고 밀어 올리거나 꺾어서 내려오는 표현,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여운이 음악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를 시김새라고 부른다.
가야금에서 줄을 튕긴 뒤 손가락으로 음을 흔들어 표현하는 농현은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주법이다. 같은 음을 연주하더라도 연주자가 어떤 방식으로 줄을 누르고 흔드는가에 따라 소리의 표정이 달라진다. 대금에서 만들어지는 깊은 울림이나 해금이 들려주는 애절한 음색 역시 국악만의 독특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음악을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음악적 체계가 만난다는 점이다. 국악기는 서양악기와 음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표현기법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가 반드시 음악적 한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음색과 표현을 만들어내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오늘날 국악을 기반으로 한 창작음악이 꾸준히 만들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공연장에서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는 다양한 국악기를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대금과 소금 같은 관악기부터 가야금과 거문고 등의 현악기까지 악기의 구조와 특징을 소개하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관심을 갖는 것은 대부분 연주자의 기량이나 곡의 아름다움이지만 그 음악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악기라는 물리적인 도구다.
악기는 인간이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한 기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나무를 다듬고 대나무에 구멍을 뚫으며 줄의 장력과 울림통의 구조를 조절하는 과정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재료의 특성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같은 형태의 악기라도 제작 방법과 연주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음색을 만들어낸다.
우리 전통음악에는 악기의 재료를 여덟 종류로 구분하는 팔음이라는 개념이 있다. 금속, 돌, 실, 대나무, 박, 흙, 가죽, 나무를 의미하는 금·석·사·죽·포·토·혁·목이다. 이는 악기의 소리를 재료와 연결하여 이해했던 전통적인 분류 방식이다. 자연의 다양한 물질이 인간의 손을 거쳐 음악을 만드는 도구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국악기는 자연과 기술, 예술이 만나는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완성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만 바라볼 때와 달리 악기를 만드는 과정을 접하면 음악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하나의 악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울림통을 만들고 줄을 조율하는 과정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몇 초의 소리에는 악기를 제작한 사람의 기술과 연주자가 쌓아온 시간이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전통국악뿐 아니라 다양한 현대적인 공연도 함께 마련되었다. 국악거리퍼레이드와 전통연희, 국악관현악 공연을 비롯해 미디어아트와 결합한 공연, 대중음악 무대 등이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구성은 국악이 전통적인 형식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청중을 만나야 한다는 현실적인 과제를 보여준다. 사실 전통문화의 보존과 변화는 언제나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원형을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문화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대가 그 문화를 배우고 즐기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전통이라도 결국 일부 전문가와 기록 속에만 남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전통음악이 가진 고유한 표현과 철학을 이해하지 않은 채 단순히 대중적인 요소만 결합한다면 국악은 독자적인 문화적 가치를 잃고 하나의 장식적인 소재로 소비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전통을 변화시키느냐 보존하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판단일 것이다.
영동난계국악축제는 공연만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니었다. 축제장을 따라 이어지는 유등과 전통문양, 국악기 전시와 체험공간,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이 하나의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특히 가을 햇살 아래 놓인 전통악기와 무대의 풍경은 우리가 과거의 유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도 현재의 공간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음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연주하던 음악과 오늘날 대규모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형태와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악기가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그 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시대가 달라져도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난계 박연이 살았던 시대에는 음악의 음률을 정비하고 악기를 제작하는 일이 국가의 문화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 음악을 어떻게 새로운 세대에 전달하고 세계의 다양한 음악과 연결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영동이라는 지역이 오랜 시간 국악축제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의 영동에서 만난 우리 음악은 오래된 것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이었다. 악기의 재료와 형태에는 과거의 지혜가 담겨 있었고, 무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연주자들의 해석이 더해지고 있었다. 국악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소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그 소리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고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오래된 음악을 박물관 안에 박제처럼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누군가가 그 음악을 연주하고 다른 누군가가 새로운 눈으로 귀로 듣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