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방죽, 삶을 품다’

물을 다스린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삶을 지키는 일이었다

어떤 공간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건축물이나 연도보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살표보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오래된 저수지도 마찬가지다. 지도 위에서 보면 물을 가두고 농경지에 물을 공급했던 하나의 수리시설에 불과해 보이지만 사람들이 그 물가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곳에는 농사뿐 아니라 빨래와 물고기잡이, 아이들의 놀이, 가뭄과 홍수에 대한 기억까지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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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서 만난 특별기획전 ‘합덕방죽, 삶을 품다-합덕제 옛이야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전시다. 박물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사진 속 전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근현대사박물관 협력망 사업과 연계해 합덕제 주변에서 실제로 살아온 주민들의 구술을 기록하고 그것을 사진과 그림, 영상, 문헌으로 다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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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단순히 ‘합덕제가 언제 만들어졌는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기억 속의 합덕방죽’이라는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물이 빠진 저수지 안쪽에 논을 만들었던 제내답, 사람들이 모여 빨래를 하던 빨래터,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호중도, 섬 주변에서 사금을 채취했다는 이야기 수문을 여는 날이면 물고기를 잡았던 기억 등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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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각각 농업·생활·여가라는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모두 하나의 생활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 빨래터나 호중도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빨래터는 단순히 옷을 씻는 장소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의 소식을 주고받는 생활 속 공동체 공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방죽은 또 다른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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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만들어진 놀이시설이 많지 않았던 시절, 물과 흙과 섬과 풀밭이 그대로 놀이터가 되었다. 물고기를 잡고, 물가에서 놀고, 어른들이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했다. 그래서 합덕제의 역사를 바라볼 때 ‘저수지’라는 단어 하나로는 부족하다. 합덕제는 사람이 사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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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게는 한 해 농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물이었고, 아이에게는 놀이터였으며, 누군가에게는 빨래터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물고기를 잡아 생활에 보탬을 얻는 삶의 터전이었다. 방죽에 물이 얼마나 차 있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도 달라졌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으면 하늘을 바라보았고, 많은 비가 내려 제방이 위험해지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걱정했다. 물을 다스리는 일은 곧 삶을 지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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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제의 정확한 최초 축조 시기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백제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설부터 후백제를 세운 견훤과 관련된 전승까지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다만 고려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오래된 수리시설로 여겨지며, 조선시대 문헌에도 합덕제를 보수하고 관리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성종실록』 같은 기록에서도 합덕제가 주변 농경지에 물을 공급했던 중요한 제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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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흥미로운 것은 거대한 방죽을 단지 국가가 일방적으로 관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합덕제 주변의 농민들은 물을 사용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제방을 관리했다. 18세기 무렵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연제수리계는 1960년대까지 합덕제를 관리하고 관개를 담당했다. 결국 거대한 수리시설을 오랜 세월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제방의 크기만이 아니라 그 물을 함께 사용해야 했던 사람들의 협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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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면 1930년과 1938년 신문 기사도 그런 역사를 보여준다. 가뭄과 수해는 지금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물이 부족하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둑이 무너지면 삶의 기반 자체가 흔들렸다. 그러니 합덕방죽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던 시대의 슬롯 기반시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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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쪽의 ‘사라진 물길’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1960년대 예당저수지가 들어선 이후 합덕제는 농업용 저수지로서 역할을 점차 내려놓았고, 과거 저수지였던 상당 부분은 농경지로 바뀌었다. 그러나 물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공간의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방죽의 물빛도, 빨래하던 모습도, 물고기를 잡던 날도 여전히 남아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를 연결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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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제가 지닌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오랫동안 농경지에 물을 공급했던 합덕제는 오늘날 충청남도 기념물이자 농경문화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2017년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의 세계관개시설물유산에도 등재됐다. 현재 남아 있는 약 1,771m의 제방과 수변 공간은 과거의 수리기술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공동체의 역사를 함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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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덕수리민속박물관이 이곳에 자리한 이유도 자연스럽다. 박물관은 합덕제의 역사와 수리·관개문화를 전시하고 연구하는 전문박물관이면서 주변의 연지와 농촌테마공원, 생태 공간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합덕제는 농업용수를 공급하던 과거의 기능에서 벗어나 역사와 생태, 교육과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역할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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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오래된 저수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다. 거대한 제방을 만든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기억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고, 누군가는 빨래를 했으며, 아이들은 물가에서 뛰어놀았다. 물고기를 잡던 날이면 사람들이 방죽으로 모였고 물이 부족하면 함께 걱정했다. 그렇게 합덕제는 오랜 시간 물을 담았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담아온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합덕방죽, 삶을 품다’라는 전시 제목이 꽤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사람들이 살아왔던 시간과 기억은 여전히 그 제방과 들판 위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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