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른 자리마다 알이 생겼다는 전설의 공간이야기
자연적으로 만든 돌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탄생설화도 스며들어 있다. 사람들은 조금은 기묘하게 생긴 바위를 보면서 삶에 대한 많은 것을 고민을 해결해 주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울주의 한적한 마을을 방문한 것은 이곳에 독특한 바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개울을 따라 난 길은 한낮인데도 조용하기만 했다. 방기리로 드는 어귀에서 개울 위로 나무 데크가 이어진다. 물이 줄어든 개울 바닥에는 자갈이 하얗게 드러났다.
지도앱에서 그 바위가 있다는 곳을 보니 둑 너머로 소나무가 짙게 모여 선 언덕 하나가 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마을 어귀를 지키는 솔숲이려니 했다. 그 아래 수천 년 묵은 기도가 흩어져 있다는 것은 조금 뒤에야 알았다.
마을 이름부터 풀어본다. 방기리는 본래 방 씨가 많이 살아 방터나 방대(方垈) 혹은 방기로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소리는 성씨에서 왔는데 한자로는 꽃다울 방(芳)에 터 기(基)를 쓴다. 1911년 상방기와 하방기로 갈라졌다가 1914년 다시 합쳐지면서 지금의 방기리가 되었다. 오늘날 이 안에는 방기와 상방 그리고 하방과 연봉이라는 네 마을이 모여 산다.
방기리의 중방과 하방 일대에서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의 고분 그리고 토기 조각이 나왔다. 이름은 조선의 한 성씨를 기억하지만 땅은 그보다 훨씬 먼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마을 이름의 나이와 마을의 나이는 이렇게 다르다.
알바위가 있는 곳은 하방마을 입구다. 마을 사람들은 이 야트막한 언덕을 동뫼라고 불렀다. 덩굴이 무성하게 뒤덮은 빈터 너머에서 바라보면 소나무 무리가 언덕째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언덕이라고 부르기에도 낮고 숲이라고 부르기에도 작다. 그런데 그 작은 언덕 안에 이 마을이 가진 가장 오래된 시간이 있다.
언덕 발치에는 새로 깎은 잔디마당이 조성이 되어 있다. 밧줄 울타리 너머로 개울이 흐르고 개울 건너편에 방기마을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신앙의 자리와 오늘의 마을 일을 의논하는 자리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보고 있는 풍경이다. 누가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것은 아닐 텐데 묘하게 어울린다.
솔숲 입구에 선 안내판에는 방기리 알바위가 울산광역시 기념물이라고 적혀 있다. 알바위라는 이름은 바위에 새겨진 구멍이 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었다. 이 구멍들은 쪼아서 뚫은 게 아니다. 작은 돌로 바위 표면을 문지르고 또 문질러서 둥글고 오목하게 파낸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구멍을 성혈(性穴)이라 부른다. 성혈은 고인돌 덮개돌에서 자주 발견된다.
여성의 몸과 풍요와 다산 그리고 태양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작은 돌로 성혈을 열심히 문지르다 그 돌이 바위에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도 널리 전해진다. 방기리 알바위에는 성혈을 동심원 모양으로 둥글게 배치한 것도 있고 구멍끼리 선으로 이어놓은 것도 있다. 바위 하나에 적게는 열 개 남짓 많게는 쉰 개 넘는 구멍이 새겨졌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안내판은 주변에서 발굴된 방기리와 신평의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을 함께 들며 이곳이 당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던 성스러운 장소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짐작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진다. 누구도 그 제사를 본 적이 없으니까.
이 바위들이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1994년의 일이다. 울산 MBC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발견했고 같은 해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0호가 되었다가 2021년 국가유산 지정번호 제도가 폐지되며 지금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언덕에 오르면 발밑이 금세 붉은 솔잎으로 바뀐다. 바위들은 아무렇게나 흩어진 듯하면서도 몇 층의 단을 이루며 경사면을 따라 놓여 있다. 그 사이로 소나무 뿌리가 바위를 감싸듯 뻗어 있다. 소나무 줄기는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휘었다. 바람이 드나든 길을 몸으로 기억하는 나무들이다. 붉은 껍질이 흐린 하늘 아래서도 선명했다.
꼭대기 가까이 오르면 바위 무리 사이로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붉은 지붕과 개울가 난간과 멀리 겹쳐 선 산줄기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청동기의 누군가도 이 자리에서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았을까. 그때는 지붕 대신 무엇이 보였을지 잠시 상상해 본다.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소나무 기둥들이 창살처럼 늘어서 마을을 나누어 보여준다. 줄기 사이로 새로 포장한 길과 차 한 대와 텃밭이 차례로 끼어든다. 오래된 것과 오늘의 것이 한 프레임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섞인다.
한 바위 앞에 쪼그려 앉아 표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오목한 자국과 골이 여러 갈래로 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 것이 사람의 손이 만든 성혈이고 어느 것이 비바람이 만든 흔적인지 눈으로 가려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호함이 싫지 않았다. 사람의 손과 자연의 시간이 같은 돌 위에서 서로를 닮아간 것일지도 모르니까.
유적이 울타리 너머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뒷마당 바로 옆에 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바위는 관람의 대상이기 전에 그냥 늘 거기 있던 동산이었을 것이다. 작은 돌을 쥐고 같은 자리를 수백 번 수천 번 비벼야 겨우 손가락 한 마디 깊이가 생긴다. 하루로는 안 되고 한 사람의 힘으로도 모자르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 구멍들은 모양이기 이전에 시간이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돌 위에 쌓인 부피다. 아이를 바라는 마음이든 한 해 농사를 비는 마음이든 해가 다시 뜨기를 비는 마음이든 그 마음들은 사라졌고 오목한 자리만 남아있다.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는 아마 그 뒤의 시대가 덧입힌 이야기일 것이다. 청동기 사람들이 무엇을 빌었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이곳을 내려와 방기공원으로 향해 걸어가 보았다. 공원 입구 안내판에는 울주군이 지역 주민에게 쾌적한 생활환경과 아름다운 경관을 주려고 조성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지도 아래 범례를 따라 읽으면 꿈나무 놀이터와 게이트볼장 그리고 솔바람 쉼터와 한마음 건강마당과 나무그늘 쉼터가 이어진다. 시니어 건강마당과 소나무 쉼터와 전망 쉼터도 있다.
옆에 선 건강정보 게시판은 울주군보건소가 세운 것이다. 방기공원 걷기 코스와 함께 발바닥 지압의 효과를 그림으로 알려주고 있다. 이 공원에는 맨발산바카라로가 있다. 총 650m 길이로 2024년 8월 9일 문을 열었고 울주군이 이어간 맨발산바카라로 릴레이 개장의 첫 번째 장소였다. 이후 물내음공원과 선사공원과 봉화산 숲길 등으로 맨발길이 차례로 이어졌다.
비탈에는 어린 측백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고 그 위로 소나무가 선다. 동뫼의 소나무보다 젊지만 같은 종류의 그늘이다. 비탈 아래 초록 바닥 위에 꿈나무 놀이터가 있다.
공원 한쪽에는 기와를 얹은 팔각 정자가 서 있다. 정자 뒤로 흰 천막 지붕 아래 초록 펜스를 두른 운동 공간이 보이고 그 너머로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징검돌을 놓은 잔디 사이로 붉은 산바카라로가 부드럽게 휘어진다. 정자에 앉으면 오래된 마을과 새 동네가 겹치는 경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을 문질러 오목한 자리를 만들던 오래 전의 손이 있었고 그리고 흙길을 다지고 놀이터를 세우고 발바닥 지압 그림을 붙여놓은 오늘날 만들어둔 공간이 있다. 수천 년 뒤 누군가 이 공원 자리에 서서 여기서 사람들이 무엇을 빌었을지 짐작하게 될까. 오랜시간이 지나고 방기리에 자리한 알바위는 어떤 이야기로 전해질까 궁금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