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이라는 도시의 시간, 삼척시립박물관에서 만나는 역사와 사람들
서울과 수도권에 1/2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대한민국에서 다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일일까. 여름휴가기간이나 가끔씩 시간이 날 때 여행하는 것으로는 그 도시의 이면을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도시를 방문하면 시립박물관을 먼저 방문해 보는 편이다.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바다와 산, 유명한 관광지만 보고 돌아오면 그곳의 풍경은 기억에 남지만 그 도시가 왜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낯선 지역을 여행할 때 박물관을 찾아보는 일은 꽤 의미가 있다. 한 도시가 지나온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삼척시립박물관은 그런 의미에서 삼척 여행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삼척시 성남동에 자리한 삼척시립박물관은 2000년 3월 29일 문을 열었다.
삼척을 비롯한 강원 남부지역의 문화유적과 민속자료, 향토유물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1층에는 선사·역사실과 민속예능실, 기획전시실이 있고 2층에서는 생업과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모아놓은 곳이라기보다 삼척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고 무엇을 믿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를 만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지역사 박물관에 가깝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야외에 길게 놓인 거대한 줄이다. 굵은 줄이 매듭을 만들고 다시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것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삼척의 대표적인 민속문화인 ‘삼척기줄다리기’를 상징하는 줄이다.
이런 민속문화가 삼척에서 발달한 데에는 지리적 특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삼척은 동쪽으로는 동해와 맞닿아 있고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의 높은 산지가 이어진다.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사람과 깊은 산과 계곡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사람이 한 지역 안에 함께 존재했다. 해안에서는 어업과 해양문화가 발달했고 내륙에서는 농업과 산림문화가 이어졌다. 여기에 석회암 지대가 만들어낸 동굴과 지질경관, 그리고 근현대에 크게 성장한 탄광 산업까지 더해지면서 삼척만의 독특한 생활문화가 형성되었다.
박물관을 돌아보다 보면 인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군사 관련 문서도 눈에 들어온다. 삼척은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동해안 방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바다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외부의 침입을 경계해야 했던 곳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적 성격은 삼척의 역사 곳곳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래서 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의 토기와 생활도구부터 옛 문서와 무기, 민속자료까지 다양한 유물을 만나게 된다. 전시된 토기나 작은 장신구를 바라보고 있으면 지금처럼 도로나 철도가 없던 시대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터전을 잡고 생활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삼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실직’이라는 옛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이 지역은 고대에 실직국 또는 실직이라 불렸고 신라가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실직주가 설치되기도 했다. 505년에는 이사부가 실직주의 군주가 되었으며 이후 신라 경덕왕 때인 760년에는 삼척군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산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삼척을 만나게 된다. 너와집과 굴피집, 통방아 같은 산간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고 대이리 동굴지대와 같은 독특한 자연유산도 자리한다. 국가유산포털에는 삼척 죽서루를 비롯해 두타산 이승휴 유적, 준경묘·영경묘, 흥전리 사지, 대이리 동굴지대 등 다양한 국가유산이 삼척에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바다의 역사와 산의 문화가 한 행정구역 안에 이처럼 다양하게 공존하는 곳도 흔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삼척 죽서루는 삼척 역사여행에서 꼭 연결해 볼 만한 곳이다. 오십천 절벽 위에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세워진 누각으로 오랫동안 관동의 대표적인 누정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202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박물관에서 삼척의 역사적 흐름을 먼저 이해하고 죽서루에 올라 오십천을 바라보면 풍경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단순히 아름다운 누각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강을 바라보았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삼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이사부도 빼놓기 어렵다. 그는 실직주 군주를 지낸 신라의 장군으로 이후 하슬라주의 군주가 되어 512년 우산국을 복속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삼척이 지금도 이사부를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기억하고 이사 부 독도기념관과 관련 문화콘텐츠를 조성하는 이유도 이러한 역사적 연결성에 있다. 삼척은 동해를 단순히 바라보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바다를 통해 새로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던 지역이었다.
시간을 고려시대로 옮기면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승휴다. 그는 고려 충렬왕 때 『제왕운기』를 지은 인물이다. 『제왕운기』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운문으로 정리한 역사서로 특히 단군을 우리 역사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승휴가 머물렀던 삼척 두타산 일대의 유적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박물관에서 삼척의 역사를 살펴보고 미로면의 이승휴 유적과 천은사까지 이어서 찾아가 본다면 하나의 역사여행 코스가 된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 삼척이라는 도시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인물인 허목을 만나게 된다. 17세기 삼척부사를 지낸 허목은 학자이자 독특한 전서체로 유명한 서예가였다. 당시 삼척에서는 바닷물과 홍수로 인한 피해가 잦았는데 허목은 백성들의 피해가 줄어들기를 바라며 ‘동해송’을 짓고 비를 세웠다. 오늘날 육향산에 있는 척주동해비다. 바닷물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퇴조비’라는 이름으로도 전해지는 이 비석은 단순한 석비가 아니라 자연재해 앞에서 백성의 안녕을 기원했던 지방 수령의 마음이 담긴 문화유산이다.
삼척시립박물관은 오래된 유물을 보는 데서 끝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을 천천히 걷고 나면 죽서루와 오십천, 척주동해비, 두타산의 이승휴 유적, 준경묘와 영경묘, 정월대보름의 기줄다리기까지 서로 떨어져 있던 삼척의 여러 장소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미리 알고 방문하면 조금은 삼척에 대해 익숙해진다.
삼척시립박물관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역사가 왕이나 장군, 학자에게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옛사람들이 사용했던 생활도구와 문서, 민속자료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역사를 만드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바다로 나갔고 누군가는 산에서 나무를 했으며 누군가는 밭을 일구었다. 탄광이 활발하던 시대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땅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가족의 삶을 이어갔다.
삼척기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행해져 온 공동체 민속놀이다. 해안지역인 부내와 산간지역인 말곡이 편을 나누어 줄을 당겼는데, 부내가 이기면 바다에서 풍어가 들고 말곡이 이기면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줄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힘을 겨루었지만 그 안에는 농사와 바다, 공동체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었다. 삼척기줄다리기는 다른 지역의 줄다리기 전통과 함께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오늘날 삼척정월대보름제의 중심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도 기줄다리기를 재현한 작은 모형이 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줄을 당기고 농악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작게 만들어놓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전 삼척 사람들이 한해를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지금은 축제가 관광콘텐츠가 되기도 하지만 그 시작에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절실함이 있었다.
그래서 삼척을 여행한다면 바다로 향하기 전에 혹은 산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 먼저 들러보는 것도 좋다. 여행지의 풍경을 먼저 보는 여행과 그곳에 쌓인 시간을 알고 바라보는 여행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삼척시립박물관은 삼척의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삼척이라는 도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