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면천에서 만난 영랑의 효심

안샘의 물과 오래된 은행나무가 이어주는 면천의 시간

시간은 흘러서 지나갔지만 남겨진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당진의 아름다움 풍경을 가진 곳으로 면천이라는 지역이 있다. 생각나면 방문해서 머물정도로 이곳에 대한 애착이 있다. 이곳에는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지금도 물이 샘솟는 공간이 있다. 당진 면천에 자리한 두 그루의 은행나무 앞에 서면 시간의 흐름을 결로 느끼게 해 준다. 나무의 굵은 몸통에는 천 년이 넘는 시간이 깊은 골처럼 파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긴 세월 동안 이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은행01.JPG

충남 당진시 면천면 동문 1길 일원에 자리한 당진 면천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1,100년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그루 모두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의 딸 영랑이 심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으며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런데 이 나무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 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무 한 그루의 뿌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술로 이어지고, 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의 효심으로 이어지며 오늘날까지 면천이라는 공간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02.JPG

아버지를 위해 백일 동안 기도했던 딸의 이야기는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에게서 시작된다. 복지겸이 병을 얻어 앓아누웠지만 온갖 약을 써도 병세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병을 지켜보던 딸 영랑은 결국 면천의 아미산에 올라 백일 동안 기도를 드렸다.

은행03.JPG

백일째 되던 날 신선이 나타나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전한다. 아미산의 진달래꽃과 면천의 안샘 물을 이용해 술을 빚어 아버지에게 드리고, 뜰에는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었다. 영랑이 그 말에 따라 술을 빚고 나무를 심어 정성을 들이자 복지겸의 병이 나았다는 것이 면천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다.

은행04.JPG

여기에서 탄생한 술이 면천의 대표적인 전통주인 면천두견주와 연결된다.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부르는 데서 두견주라는 이름이 생겼으며, 오늘날에도 면천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로 그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살리고 싶었던 딸의 마음은 술 한 잔에 담겼고, 두 그루의 나무에 뿌리를 내렸다.


은행05.JPG




노란색과 초록색, 흰색 소원지에는 사람들이 적어놓은 여러 마음이 담겨 있다.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원하는 일을 이루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와 오래 행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은행06.JPG
은행07.JPG

특히 올해는 면천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당진시는 2026년 3월 3일부터 은행나무 소원지 쓰기를 상설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은 면천읍성 관광안내소에서 소원지를 받아 자신의 바람을 적은 뒤 은행나무 앞에 직접 달 수 있다.


아미산의 진달래꽃, 안샘의 물, 영랑의 백일기도, 두견주 그리고 은행나무까지. 전혀 다른 자연의 요소들이 한 사람의 마음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천 년 전의 기도와 오늘의 소원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나무 주변에서 가장 인상적인 풍경 가운데 하나는 울타리에 매달린 작은 은행잎 모양의 종이들이다.

은행08.JPG

사진 속 나무를 자세히 보면 이를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도 곳곳에 설치돼 있다. 이제 이 나무는 스스로의 생명력뿐 아니라 사람들의 보호 속에서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이 나무를 기억하고 보호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 나무 역시 1,100년 동안 면천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 셈이다.

은행09.JPG

어쩌면 효라는 것은 큰 것보다 마음이지 않을까. 아픈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끝까지 해보는 마음 말이다. 직접 가서 보면 그 크기를 온전히 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 가까이 다가가면 굵은 몸통에 크고 작은 상처가 보인다. 일부는 속이 비어 있을 만큼 세월의 흔적이 깊다.


1,100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없이 상처를 입고도 다시 살아왔다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인다. 면천 은행나무는 근현대사의 변화도 몸으로 겪었다. 1910년대 면천초등학교 부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지면이 높아지면서 나무 아래쪽 약 2.3m가 흙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도 보호수로 관리되었으며, 한때는 많은 백로가 나무에 찾아와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은행10.JPG

천 년 전 영랑 역시 한 가지 소원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이 소원을 갖는다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는 딸이 아버지를 위해 아미산에 올라 백일 동안 기도를 드렸고, 오늘날의 사람들은 작은 종이 한 장에 자신의 마음을 적어 나무 곁에 매단다.


사람이 누군가를 걱정하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은 시대와 관계없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면천 사람들은 이 은행나무를 오래전부터 마을의 수호목처럼 여겨왔으며 목신제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건강, 무병장수 등을 기원해 왔다.

은행11.JPG

결국 한 사람의 효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확장되었다. 사람은 지나가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1,000년이 넘는 시간으로 인해 갈라진 나무껍질과 세월을 견뎌낸 흔적, 거대한 몸통을 지탱하는 구조물 그리고 그 앞에 매달린 작은 소원들이다.


영랑의 이야기가 공원이 되어 조성이 되어 있다. 은행나무 주변을 천천히 걷다 보면 이야기는 나무 한 그루에서 끝나지 않는다.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영랑효공원이 조성돼 있다. 푸른 잔디 사이로 산바카라길과 작은 물길이 이어지고, 곳곳에 복지겸과 영랑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놓여 있다. 전설을 글로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을 걸으며 하나씩 만나게 만들어둔 것이다.

은행13.JPG

거대한 1,100년의 시간과 오늘 누군가가 적어놓은 몇 글자가 같은 풍경 안에 있었다. 나는 그것이 면천 은행나무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계속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복지겸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영랑의 효심을 떠올린다. 또 누군가는 두견주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다른 누군가는 그저 은행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작은 소원을 하나 남긴다. 면천의 오래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은행15.JPG

전설 속에서 영랑이 두견주를 빚을 때 사용했다는 바로 그 물이다. 영랑효공원에는 지금도 안샘 물이 흐르고 있으며, 면천에서는 두견주의 맛을 이야기할 때도 이 물을 빼놓지 않는다. 물이 고인 곳을 들여다보면 주변의 나무와 건물이 조용히 수면에 비친다.


1,100년 전 아버지를 살리고 싶었던 딸의 간절한 마음이 오늘날 은행나무 아래 매달린 수많은 소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당진 면천의 여행은 오래된 나무를 보러 가는 여행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효심에서 시작해 나무와 물을 지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원까지 이어지는 사람의 마음을 따라 걷는 여행이 된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하늘 위에서 만난 가을의 청풍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