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닮은 전망대

포도 한 알이 와인이 되기까지, 영동의 모든 것을 만나는 공간

영동을 향해 가다 보면 소리로 빛나는 공간이 나온다. 알록달록한 관들이 악기의 파이프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그 뒤로 언덕 위에 붉은 와인병 하나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국악의 고장이 스스로를 소리로 소개하고 그 곁에 와인 한 병을 세워둔 풍경이 펼쳐진다. 영동이라는 도시가 자신을 무엇으로 번역하며 살아왔는지 이 입구 하나에 다 담겨 있는 듯하다.

0R5A8050_новый размер.JPG
0R5A8053.JPG

영동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레인보우 힐링관광지다. 영동읍 매천리 일대의 넓은 부지를 하나의 관광단지로 묶어 조성한 곳이다. 2017년 과일나라테마공원이 먼저 문을 열었고 이듬해 와인터널이 뒤를 이어 오픈했다. 복합문화예술회관과 웰니스 단지가 차례로 들어섰고 언덕 아래로는 일라이트 CC 골프장과 호텔이 자리를 잡았다.

0R5A8054.JPG

입구를 지나면 인공 암벽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먼저 눈을 시원하게 만들면서 무더운 여름을 식혀준다. 그 앞으로 검은 대리석 좌대 위에 농악대 조형물이 서 있다. 상모를 돌리고 장구를 멘 네 사람이 한창 신명을 올리는 중이다. 좌대에는 레인보우 영동이라는 글자와 함께 이 고장의 과일들이 그려져 있다. 감과 배, 포도가 나란히 붙어 있다. 소리와 과일. 영동이 오래 붙들어 온 두 개의 자산이 이 작은 조형물 하나에 겹쳐 있다.

0R5A8055_новый размер.JPG

단지의 중심 건물 로비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층고가 높은 실내에 오크통을 늘어놓고 그 위로 와인병들을 길게 진열해 두었다. 지역 농가에서 빚은 영동 와인들이다. 병마다 앞에 작은 안내판이 서 있고 당도와 산도, 어울리는 음식까지 손글씨처럼 적혀 있다. 그중 하나에 눈이 오래 머물렀다. 샤인머스캣 100퍼센트로 빚은 화이트와인. 우리가 마트 매대에서 알로 집어 들던 그 포도가 한 병의 술이 되어 여기 서 있다.

0R5A8058_новый размер.JPG
0R5A8061_новый размер.JPG

영동이 와인의 고장이 된 데에는 그럴 만한 내력이 있다. 이 작은 군이 품은 포도밭이 전국 포도밭의 약 7.5퍼센트에 이른다. 2005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도·와인산업특구로 지정됐다. 그 뒤로 서른네 곳의 와이너리가 골짜기마다 들어섰다. 포도를 기르던 땅이 포도로 술을 빚는 땅으로 옮겨가는 데 수십 년이 걸린 것이다. 와인은 결국 시간을 마시는 일이다. 한 알의 포도가 발효라는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와인이 된다.

0R5A8066.JPG

그 얼굴의 가장 새로운 부분이 언덕 위의 와인전망대다. 올해 2월 11일에 문을 열었다. 지상 50미터 높이에 와인병을 그대로 본떠 세운 4층짜리 조망 시설이다. 붉은 병 몸통에 초록과 파랑, 노랑의 띠가 세로로 흘러내리고 꼭대기에는 코르크를 닮은 둥근 전망실이 얹혀 있다. 멀리서 보면 정말로 거대한 와인 한 병이 언덕에 꽂혀 있는 것 같다. 도시의 정체성을 이렇게까지 단순하고 대담하게 형상으로 빚어낸 건축도 드물다.

0R5A8071_новый размер.JPG

계단 앞 안내판에는 이용 시간이 적혀 있다.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아홉 시까지. 매주 월요일과 비 오는 날은 문을 닫는다. 병의 안쪽은 회오리처럼 감아 도는 나선 계단으로 이어진다. 걸어 오르는 사람은 실제로 와인병의 목을 따라 위로 빨려 올라가는 구조다. 다행히 15인승 엘리베이터가 함께 놓여 있어 어르신도 아이도 단숨에 위층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0R5A8074.JPG

가장 높은 층은 바닥을 유리로 깐 스카이워크로 조성이 되어 있다. 발밑으로 아득히 아스팔트 도로와 그 위를 지나는 자동차가 내려다보인다. 난간 유리에는 짧은 문장들이 적혀 있다. 추락 주의. 기대지 마시오. 무심한 경고문인데 아득한 높이 위에서 읽으니 묘하게 서늘하다. 몸은 위험 신호에 반응하지만 머리는 안전하다는 걸 안다. 그 틈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난간에 바싹 붙어 사진을 찍는다.

0R5A807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시선을 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리 난간 너머로 영동의 능선이 겹겹이 펼쳐진다. 발아래에는 일라이트 CC의 초록 페어웨이가 물결처럼 이어지고 연못 위로는 하얀 분수가 솟는다. 그 너머로 나지막한 산들이 층층이 포개지며 하늘과 만난다. 포도밭과 양조장, 골프장과 호텔, 그리고 이 병 모양의 전망대까지. 영동이 오랜 시간 하나씩 쌓아 올린 선택들이 이 한 장의 풍경 안에 모두 담겨 있다.

0R5A8080.JPG

내려오는 길에 다시 로비의 와인병들 앞을 지난다. 아까는 그저 상품으로 보이던 병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저 병 하나하나가 한 해의 볕과 비, 그리고 발효의 시간을 담고 있다. 언덕 위의 거대한 와인병은 그 작은 병들이 품은 시간을 크게 확대해 세워둔 기념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리로 시작해 과일로 이어지고 와인으로 익어간 도시 영동은 자신이 가진 시간을 마실 수 있는 것으로 또 오를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이 언덕 위에 세워두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유령사냥, 고스트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