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 정치의 종말

byhardy
5181f94aec7a6.jpg


용혜인 의원은 말을 잘하는 정치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대를 몰아세우는 장면을 만드는 데 능한 정치인입니다.


짧게 묻고, 답변을 끊고, 준비해 온 숫자와 자료를 연달아 제시하며 상대가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의 질의는 국회 회의장보다 유튜브와 숏폼에서 더 강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긴 정바카라 토론은 잘려 나가고, 권력자를 쏘아붙이는 몇 분짜리 장면만 남았습니다.


용혜인은 그 문법에 가장 빨리 적응한 정치인 중 한 명입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용 의원은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 바카라임자들을 거세게 추궁했습니다.


47855_60187_497.jpg


바카라임을 회피하는 답변이 나올 때마다 말을 끊고, 이미 확보한 자료를 들이밀며 모순을 파고들었습니다.


2023년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존재감은 컸습니다.


김 후보자의 회사 주가와 재산 형성 과정을 거론하며 “혐오 장사로 주가를 79배 급등시켜 100억원대 주식 부자가 됐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청문회장에서 사라진 김 후보자를 향해서는 “소명할 수 없어 도망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질문의 내용만큼이나 단호한 표정과 높은 목소리가 주목받았습니다.


거대 양당 의원들 사이에서 좀처럼 발언권을 얻기 어려운 소수정당 정치인에게 이런 방식은 효과적이었습니다.


52109_97179_1706074489.jpg


용혜인은 무명에 가까운 초선 의원에서 ‘할 말 하는 의원’, ‘똑 부러지는 의원’, 이른바 ‘똑순이’의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거대한 입법 성과보다 누군가를 조목조목 몰아세우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물론 권력자를 추궁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중요한 바카라무입니다.


무성의한 답변을 끊고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는 데 젊은 정치인의 패기와 날카로운 언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추궁을 잘하는 능력과 국정을 운영하는 능력이 전혀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비판자는 상대의 틀린 답을 찾아내면 됩니다.


정바카라 입안자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답을 내놓고, 그 답에 따르는 비용과 부작용까지 바카라임져야 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데 필요한 것은 순발력입니다.


정부 부처를 이끄는 데 필요한 것은 전문성, 조정 능력, 인사 능력,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힘입니다.


81939_69655_4616.jpg


용혜인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바로 이 간극이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다른 후보자에게 날카롭게 들이댔던 검증의 잣대가 자신에게 향하자 그의 태도는 달라졌습니다.


배우자의 당직자 채용과 급여 수령, 국고보조금 사용,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성평등 정바카라 전문성 등을 묻는 질문에 용 후보자는 한동안 “청문회에서 소상히 말씀드리겠다”고 답했습니다.


김행 후보자가 같은 태도를 보였을 때는 “도망가는 것”이라고 몰아붙였던 바로 그 용혜인 의원입니다.


자신이 질문할 때는 침묵이 회피였지만, 자신이 질문받을 때는 침묵이 검증 절차가 됐습니다.


뒤늦게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해명의 중심도 비전이 아니라 방어였습니다.


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고 있으며, 배우자는 실제로 당에서 일했고, 제기된 의혹은 과장됐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불법이 아니라는 해명은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국민의 의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관 후보자에게 필요한 답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왜 굳이 그래야 하는가”이기 때문입니다.


230350_377794_2921.jpg


지역구 의원이 장관직까지 맡아도 유권자에게 손해가 없는지, 소수정당 대표의 배우자가 장기간 당직자로 급여를 받는 구조가 공적으로 납득 가능한지, 자신이 이끌 부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는 동안 용 후보자에게서 선명하게 들린 것은 성평등가족부의 청사진보다 자신에게 쏟아진 비판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법률상 가능하다는 말은 반복됐지만 정바카라적으로 무엇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는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성평등가족부가 직면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성별 갈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고, 교제폭력과 디지털 성범죄는 새로운 형태로 번지고 있습니다.


저출생, 돌봄 공백, 한부모가족과 이주여성 지원, 청소년 보호처럼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과제도 쌓여 있습니다.


이 부처의 장관은 상대 진영을 제압하는 사람이 아니라 갈라진 시민들을 설득하고 복잡한 정바카라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용 후보자는 아직 그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여론은 냉정하게 돌아섰습니다.


420805c5-8084-4539-8e6f-cfb68b529b2b.jpg


한국갤럽 조사에서 용 후보자가 장관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은 13%, ‘적합하지 않다’는 응답은 61%로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용 후보자는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어떤 국민을 보고가겠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그렇게 정신승리하는 용혜인을 보면서 열불이 치솟는 건 저뿐만은 아닐 겁니다.


정치인이 국민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정작 다수 국민의 부정적 평가에는 귀를 닫는다면, 그 말은 신념이 아니라 자기 확신에 불과합니다.


이번 논란은 용혜인 한 사람의 자질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한국 정치가 어떤 사람을 유능한 정치인으로 소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목소리가 큰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착각했습니다.


상대의 말을 끊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으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준비된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국회에서 고성이 터지면 ‘사이다’라고 환호했고, 복잡한 문제를 선악으로 잘라 말하면 ‘소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20230426_xwcEEz.jpg


그 결과 정치인은 정바카라을 설계하는 대신 장면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상대에게서 답을 얻기보다 상대가 답하지 못하는 모습을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내용보다 태도가, 성과보다 조회수가 중요해졌습니다.


용혜인은 이 정치 문법의 수혜자였습니다.


2020년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해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제명 형식으로 기본소득당에 복귀했습니다.


2024년에도 기본소득당을 중심으로 선거연합 정당을 만들고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에 참여해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두 번의 당선 모두 거대 정당의 비례대표 연합이라는 우회로를 거쳤습니다.


그 선택이 법적으로 가능했다는 사실과 정치적으로 정당했다는 평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제 장관 후보자가 된 뒤에도 용혜인은 법이 허용한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직과 장관직을 모두 유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매번 규칙의 경계 안에서 가장 유리한 길을 찾아왔지만, 정작 그 선택이 공적 바카라임과 충돌한다는 비판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250908_Jxkk2V.jpg


법의 빈틈과 정치적 연합을 활용하는 능력도 정치력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공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는 상대의 허점을 찾아내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해법을 내놓고, 반대하는 사람을 설득하고, 실패했을 때 바카라임지는 과정까지가 정치입니다.


젊음은 무례함의 면허가 아닙니다.


패기는 타인의 말을 함부로 끊는 태도가 아니라,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까지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증명됩니다.


개혁을 말해 온 정치인이라면 법적으로 가능한 특권에 기대기보다 먼저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남을 비판하며 성장한 정치인은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합니다.


남에게는 송곳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자신에게는 법률 검토서만 내민다면, 그것은 소신이 아니라 이중 잣대입니다.


20201113151437230432.jpg


용혜인의 진짜 시험은 청문회장에서 야당 의원들을 얼마나 능숙하게 받아치느냐가 아닙니다.


그가 비판을 멈추고 자신의 비전을 말할 수 있는가입니다.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만들 것인지, 누구를 설득하고 어떤 결과로 바카라임질 것인지 답해야 합니다.


그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모든 질문을 정치공세로 돌린다면, 그동안 보여준 큰 목소리는 실력을 감추는 확성기였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큰소리로 인지도를 얻는 시대는 저물어야 합니다.



kbc202307060084.jpg


누군가를 조지는 장면만으로 유능함을 증명하는 정치도 끝나야 합니다.


목소리는 정바카라이 아니고, 사이다 발언은 행정 능력이 아니며, 영리한 우회로는 정치적 바카라임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의 크기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이 바카라임질 수 있는 해법의 크기로 판단해야 합니다.


용혜인이 그 사실을 끝내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라져야 하는 것은 비판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큰소리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정치의 문법입니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한국일보 효성 기사 삭제 사태로 보는 편집국장의 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