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깡을 든 아버지

마음을 깎는 어른

교도소라는 사방이 막힌 세계. 그곳에서 아버지는 매일 150명에서 250명에 이르는 서슬 퍼런 눈빛들을 마주했다. 거친 사내들이 모인 무리에는 어딜 가나 튀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아버지의 구역으로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오는 험상궂은 조폭 한 명이 배정되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자존심이 목숨보다 무거운 사내. 다른 교도관들은 지나칠 때마다 "머리 자르세요", "안 자르면 방 옮깁니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사내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강압적인 명령은 그 세계에서 그저 기싸움의 빌미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말로 싸우지 않았다. 대신 바리깡 하나를 들고 그 앞에 섰다.


"내부 규정에 재소자는 장발을 할 수 없습니다. 몇 미리로 밀겠어요?"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규정 내 최대한도로 자를 테니 가만히 있으세요."


서슬 퍼런 사내의 머리칼 위로 서걱거리며 바리깡이 지나갔다. 반발할 틈도, 자존심이 상할 틈도 없는 명확한 원칙과 단호함. 그러나 "최대한 길이를 남겨주겠다"는 묘한 배려가 섞인 한마디에 사내는 군말 없이 아버지에게 머리를 맡겼다.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는 원칙의 카리스마였다.


재미있는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얼마 후, 그 사내가 멋쩍은 표정으로 다시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교도관님, 머리 좀 다시 잘라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규정을 강제하던 그 손길이, 사내에게는 태어나 처음 느껴본 기묘한 안정감이자 존중이었던 셈이다. 살벌한 교도소 안에서 누군가 제 머리칼을 정성스레 만져주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내는 징벌이 아닌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아버지에게 슬쩍 여쭤본 적이 있다.


"아버지, 근데 이발 기술은 도대체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어디긴 어디냐. 재소자들한테 배웠지."


이발 훈련을 받던 재소자들이 실습할 대상이 없어 쩔쩔맬 때, 아버지가 선뜻 의자에 앉아 당신의 머리를 내어주셨다는 것이다. 권위를 내려놓고 스스로 실습 대상을 자청하며 기술을 익힌 아버지. 그리고 그렇게 배운 기술로 다시 머리 긴 재소자들의 머리를 깎아주며 그들의 마음을 다스렸다.


아버지가 쥔 바리깡은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도구가 아니었다. 서슬 퍼런 규정의 칼날이면서, 동시에 엇나간 삶의 모서리를 다듬어주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진정한 권위는 큰소리나 억압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는 단호함. 아버지는 교도소라는 가장 거친 밑바닥에서, 진짜 어른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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