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먼 별을 이어가듯

별자리

by미지의 세계

글을 다 쓰고 AI에게 검수를 받을 때가 많다. 과학적인 오류는 없는지, 갑자기 튀거나 안 맞는 내용은 없는지 다시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별자리 해설 스크립트를 쓸 때마다 AI가 반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같은 별자리에 있는 별이라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아시나요? 별자리는 결국 인간의 상상력만으로 묶여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답니다....'


자주 보게 되면서 감동이 덜했지만, 처음에 저 문장들을 봤을 땐 '아!'하고 감탄이 나왔다. 아주 멀리 떨어진 것일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의지만으로 하나로 묶일 수 있다. 그리고 훗날 별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별 이야기를 현실로 가져와보니 스티브 잡스의 명언, 'Connecting the dots'가 떠올랐다. 그는 대학 자퇴 후 우연히 서체 수업을 들었는데, 훗날 그 경험이 매킨토시에 아름다운 폰트를 넣을 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들도 언젠가 연결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연결이 됐을 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독창성이 나온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불안하기도 하고 패기도 있는 대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우연히 한 수업 시간에서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듣곤 묘한 희망을 얻어 이후에는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나서 슬롯 초년생으로 지낼 때는 유독 그런 경험들이 힘에 부쳤다. 경험 자체는 좋은데, 거기에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과 노력 등 모든 리스크를 혼자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취지는 좋지만 보수도 매우 적고, 사실상 갖춰진 것도 없는 행사의 슬롯를 맡은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섭외가 되고 나니 원고도 직접 써야 하고 행사 기획에도 참여해야 했다. 주최 측에선 슬롯자인 내가 행사 홍보를 다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섭외 제안을 한 분은 행사 원고를 쓰자고 불러내선 술을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때 그는 '다 경험이다.', '너도 나중에 알면 좋을 사람들이다'라고 하거나 '나중에 또 행사가 있으면 널 섭외하겠다'는 식으로 회유했었다. 물론 그 말은 나온 순간 허공에 흩어졌다.



처음엔 미숙해서 몰랐고, 나중에는 이런 모든 일이 불합리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하기로 한 것이고, 당시에는 돈보다 행사 경험이 귀하다 여겨 그 모든 걸 감당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도 많은 경험이었다. 그때 경험이 전혀 안 쓰였다는 게 아니라 '굳이 하지 않아도 됐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만약 그때 그 시간에, 그 노력으로 다른 걸 했더라면 더 나은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뭐가 좋고 나쁜지는 직접 느껴봐야 아는 거지만, 아주 나쁜 경험을 할 바엔 차라리 그 시간에 아무 경험도 안 하고 쉬는 게 나으니까. 그러나 이런 깨달음도, 나쁜 경험을 반복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 것들이다.


좋은 경험은 뭐고 나쁜 경험은 뭘까. 교훈을 주는 경험은 좋은 걸까. 어떤 경험이 교훈이 되는지는 훗날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나쁜 경험일지라도 오래 써먹을 수 있는 교훈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과 대가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다 연결된다'는 낙관은 좋은 말이지만, 직접 겪어보니 모든 경험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다. 또 좋지 못했던 시간을 아름답게 미화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모든 시간 중에서 어떤 점을 골라 어떤 선으로 이을지는 결국 지금의 내가 결정한다.



서로 다른 지점을 연결할 때 필요한 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천체 해설을 할 때는 눈에 쉽게 보이게 하기 위해 별과 별 사이를 선으로 긋는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림도 그려준다. 그러나 실제 밤하늘을 보고 별자리를 찾으려면 생각보다 꽤 힘이 든다. 그리고 '저게 어떻게 이어졌지? 어떻게 봐야 그 별자리로 보이지?' 싶을 정도로 의아한 것들도 많다. 별처럼 빛나는 경험을 잇는 것도 비슷하다. 어떻게든 하나의 그림으로 꿰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방송영상학과를 나왔기 때문에 방송 일을 할 땐 수월했지만, 대신 특색이 없다는 생각에 한동안 괴로웠다. 사학과를 나온 사람은 역사 관련 프로그램을 할 때, 체육 쪽 전공을 한 사람은 스포츠 리포팅을 할 때 자신있게 나섰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과학 관련 해설을 할 땐 전공자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더 많은 공부를 해야만 했다. 대신 방송을 위해 가다듬어온 목소리나 관람객과의 소통 방식이 과학 해설사로 일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아주 멀리 떨어진 경험을 잇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지만, 막상 해내고 나면 그 선이 나만의 특색이 된다.



근 몇 달간, 과학 원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내용들을 에세이로 엮어왔다. 나름대로는 서로 떨어진 지점들 사이에 선을 이으려는 노력이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해설사로서 특색을 갖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덕분에 평범하게 흘러가던 해설사의 일상도 전보다 더 행복해졌다. 관람객들의 환한 표정과 반응을 자주 떠올리게 됐기 때문이었다. 서로 먼 별을 이어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듯, 흩어진 경험을 하나의 그림으로 잇는 일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과학과 삶 사이에 선을 긋는 이 노력들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그림으로, 여운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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